“어휴, 승준이 또 철없이 구네. 요즘 좀 달달하다 싶었더니.”
“작사(작은 사장, 극중 이승준 별명)가 철은 없어도 착하고 영애를 많이 사랑하니 잘 극복해낼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영애 결혼 안 시키려고 유산시키는 건 아니겠죠?”
“막영애가 그 정도로 막장드라마는 아니에요.”
새해에도 혼자서 <막돼먹은 영애씨> 보는 당신은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영애 말 안 듣는 승준에게 분노하고, 산호 때처럼 또 결혼이 파토 날까 함께 걱정해주는 ‘동지’들이 곁에 있다. 어디에? 집에? 직장에? 아니 인터넷의 바다 속이다.
<투깝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모바일 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화면 갈무리.
점점 더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가 시작하면 컴퓨터 혹은 휴대폰부터 켠다. 드라마를 보면서 함께 채팅할 수 있는 ‘톡(talk)방’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본방송이 나가는 화면 옆에 채팅창이 뜨거나, 드라마방마다 채팅창이 떠서 티브이를 보며 모바일로 채팅하는 식이다. 톡방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2015년 2월 시작한 이후 ‘에스비에스 온에어’, ‘케이비에스 온에어’, 씨제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티빙’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확대되고 있다. 드라마를 넘어 시사프로그램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 쪽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하루 평균 10만명 정도(모바일 기준)가 톡방에 들어온다”며 “티브이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시청 패턴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2일만 해도 <막돼먹은 영애씨> 2만4823건(이하 네이버 기준), <투깝스> 3만3673건, <의문의 일승> 2만4823건 등 월화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쉬지 않고 채팅이 이뤄졌다. 톡방은 취향을 공유하는 애청자들끼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끈다. <화유기> 2회 방영 당시 컴퓨터그래픽(CG·시지) 작업이 되지 않은 화면이 나가자 “저게 뭐냐”며 함께 분노하거나, <사랑의 온도> 당시 달달한 키스 장면에 “키스 장인 양세종” 등 폭발하는 팬심을 함께 터놓기도 했다. 놓친 장면이나 이전 회까지의 줄거리를 묻기도 하는 등 궁금증 해소의 장도 된다. 2일 <투깝스> 방영 때는 톡방에서 “방금 나간 장면에서 배경음악이 뭐냐”는 등 질문이 쏟아졌다. “함께 보는 것처럼 소통하는 재미가 있다”는 시청자들이 많다. “드라마보다 톡방이 더 재미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감상과 채팅을 합쳐서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것과 같다. 상호 소통이 재미있어 강한 참여를 이끌어 낸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넘어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도 톡방이 활발하다. ‘케이비에스(kbs) 온에어’에서 2일 방영한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채팅이 이뤄지는 모습. 프로그램 갈무리
처음에는 이게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채팅하는 게 수고스러운데다, 드라마에 집중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 티브이를 보면서 채팅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우려를 뚫고 톡방이 인기를 얻은 데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연관된다. 엘티이(LTE) 서비스 확대로 모바일을 통해 티브이를 시청하거나 참여하는 이들이 늘면서 나타난 변화다. 광고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젊은 세대가 많이 보면서,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는 새로운 지표로도 부각되고 있다. 한 드라마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인터넷의 화제성이 중요해진 요즘은 톡방을 켜놓고 실시간으로 반응을 모니터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관심이 높았던 드라마가 누적 채팅 건수가 많으면서, 화제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네이버가 집계한 역대 톡방 메시지 누적 수를 보면 톡방 인기는 실제 시청률 순위보다는 인터넷 화제성과 맞물린다. 평균시청률 7.6%(닐슨코리아 집계)에 그쳤던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년)가 2위(255만327건)에 올라 있다. <내딸 금사월>이나 <언니는 살아있다>는 중장년이 주요 시청층이었지만 방영 당시 이른바 ‘막장’ 드라마 특유의 극단적 장면 등이 인터넷 등에서 ‘짤방’ 등 젊은층 중심으로 재생산되며 화제를 모았는데 각각 6위와 8위에 올랐다. 궁금한 게 많은 장르드라마가 활발할 것 같지만, 의외로 멜로드라마에서 손가락은 바쁘다. <구르미 그린 달빛>(1위 297만4534건), <태양의 후예>(7위 64만4741건) 등 10위 안에 멜로드라마가 6개나 차지한다. 네이버 쪽은 “요즘 시청자들의 기호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짜정보 제공이나 욕설 등 부작용도 있다. 새로운 시청 패턴이 효과적으로 자리잡으려면 건전한 환경 조성을 위한 감시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재근 평론가는 “기존의 댓글 문화에서 나왔던 부정적인 부분이 더 강화될 수 있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쪽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또는 비하 단어는 자동으로 표시가 제한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답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