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인 진은숙(56)이 서울시향을 떠난다고 2일 발표했다. 12년간 서울시향에 몸담았던 진 작곡가가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서울시향에 이별을 통보하면서 그 배경을 놓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진 작곡가는 이날 오전 서울시향 단원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2006년부터 몸담았던 시향을 떠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분께 제때에 소식을 알려드리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인 줄은 알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작년 11월 ‘아르스노바’(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정기공연)와 베를린 필 내한공연 때 서울을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또 “가르쳐왔던 마스터 클래스의 학생들이 눈에 밟힌다”면서도 “그들에게도 지난 수업이 저와 만나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리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머무는 진 작곡가의 급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서울시향은 당황한 모습이다. 시향 쪽은 “매해 말 1년 재계약을 맺는데 올해는 아직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였고, (계약하지 않겠다는)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진 작곡가는 2004년 음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를 비롯해 아널드 쇤베르크 상(2005) 등 최고 권위의 상을 잇달아 수상한 유명 작곡가로, 2006년부터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를 맡았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 직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촉발된 일명 ‘서울시향 사태’로 인해 2015년에 박 전 대표와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잇달아 사퇴하고, 공연기획자문역을 맡은 마이클 파인까지 그만두면서 2016년 9월부터는 공연기획자문역을 맡아 1년간 겸임하기도 했다.
한 클래식업계 관계자는 “그간 서울시의회가 국제적 명성과 역할에 상관없이 과도한 급여를 주고 있다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것도 진 작곡가가 시향을 (미련없이) 떠나게 된 배경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진 작곡가가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장기간 활동해온 점, 아르스노바의 투입 예산 대비 유료관객 수가 적은 점 등을 지적해왔다. 서울시향의 한 관계자는 “진 작곡가님이 작곡 외에도 공연기획자문 역할까지 하면서 힘들어하셨다”면서 “서울시향을 위해 아르스노바, 음반 녹음, 책 출간 등을 하며 노력해온 만큼 서운함도 쌓여 재계약을 고민하신 걸로 안다”고 말했다.
진 작곡가는 이메일에서 당분간 외국에 머물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985년에 유학길에 올라 2006년 다시 한국에서 활동하기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고 말한 그는 “서울시향을 떠남으로써 국내 활동을 접으면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 없지만 조속한 시일 내 한국음악계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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