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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내 영웅은 동성애자였다-주다스 프리스트

등록 2017-12-29 20:32수정 2017-12-29 21:32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주다스 프리스트

주다스 프리스트 음반 표지. <한겨레> 자료사진
주다스 프리스트 음반 표지. <한겨레> 자료사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향기를 언어로 묘사하기도 어렵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답하기 어렵다. 재즈가 뭐냐는 질문만큼이나, 헤비메탈이 뭐냐고 물어봐도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노래를 들려줄 수는 있다. 들어보라고. 바로 이게 헤비메탈이라고. 메탈리카를 위시한 수많은 헤비메탈 밴드, 또 그들의 명곡 중에서 내가 최고의 헤비메탈 결정체로 꼽는 노래. 바로 주다스 프리스트의 ‘페인 킬러’다.

1974년 1집 <로카롤라>로 데뷔한 주다스 프리스트는 수십년 동안 메탈의 신으로 군림해왔다. ‘메탈 갓’이라는 그들의 노래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겠지만, 그 노래가 아니었다 해도 메탈의 신이라는 칭호는 조용필 앞에 붙는 가왕이라는 칭호만큼이나 합당하다. 날 선 트윈기타와 박력 넘치는 드럼, 호쾌한 리듬과 선명한 멜로디로 꽉 찬 그들의 노래는 헤비메탈의 교본이었다. 수많은 메탈 밴드 중에서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영향받지 않은 밴드가 과연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주다스의 노래는 ‘비포 더 돈’이다. 리듬 파트 없이 아름다운 기타 아르페지오 반주에 얹힌 처연한 가사가 인상적인 록발라드. 이 노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100곡’ 같은 편집앨범에 실릴 정도로 80년대 아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과격함을 존재의 본질로 삼았던 헤비메탈 밴드의 노래 중에서 하필 가장 말랑말랑한 노래가 최고 히트곡이라니! 나 같은 메탈키드들에겐 통탄할 일이지만, 헬로윈의 ‘어 테일 댓 워즌트 라이트’나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포에버’처럼 발라드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흔한 일이기도 하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위대함은 질기기도 질긴 생명력 때문에 더욱 찬사받을 만하다. 상당한 육체적인 힘이 필요한 음악적 특성 때문인지, 헤비메탈 밴드의 수명은 길어야 10년이 고작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역사는 40년을 훌쩍 넘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것도 추억 팔이가 아닌, 새 앨범 발표와 투어를 병행하는 정력적인 활동으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10대의 에너지를 불태웠던 메탈키드들이 40대, 50대 아재가 되어 정년퇴직을 걱정하는 동안 그들은 변함없이 전력 질주하는 헤비메탈을 연주해왔다.

기타, 베이스, 드럼 각 부문에 있어서 멤버들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들이 메탈의 신으로 불릴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목소리 때문이다. 보컬리스트 롭 핼퍼드는 단언컨대 메탈계에서 가장 강력한 고음의 소유자다. 그가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높고 강한 음을 구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의 패션이란! 근육질 몸매에 온통 가죽으로 빼입고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타는 모습은 헤비메탈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남성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는 실로 80년대 소년들의 마초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동성애 선언을 했으니, 나를 비롯한 팬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20세기 말에 터진 그의 커밍아웃 뉴스를 접한 뒤에 나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진짜 세상이 망하려나보다.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 주다스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짜 신을 모시다 뒤통수를 맞은 신도의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랬다. 20대의 나는 동성애를 혐오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나의 편견은 수정되었다. 동성애를 대하는 요즘의 내 입장은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내 허벅지를 더듬는 동성애자는 성희롱으로 신고하겠지만, 가족 외식을 하는 식당의 옆 테이블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게이 커플에 대해선 마음으로 축복해주거나 최소한 못 본 척해줄 것이다.

지금도 20대의 나처럼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이성애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성애자들이 다수인 사회이기에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퀴어 축제를 보도하는 기사에는 게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린다. 그러나 다수가 불쾌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소수를 탄압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임이 분명하다. 원래 민주주의는 불편한 제도가 아닌가. 이제 같은 생각을 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모두가 나아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는 끝났다. 새해인 2018년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제각각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어울려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름과 틀림 사이의 간극을 알 만큼 성숙해졌을 즈음, 나는 옛 영웅을 용서했다. 그리고 요즘은 아주 즐겁게 주다스의 노래를 듣는다. 지금 다시 들어보니 역시 주다스가 짱. 속이 다 시원하다. 헤비메탈의 신이 게이면 어떤가.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연륜과 기교가 아닌 초고음의 보컬로 수많은 관객을 전율케 한 이가 또 누가 있었던가?

마초처럼 글을 맺어보겠다. 닥치고 들어보라. 주다스 프리스트의 ‘페인 킬러’. 메탈 신의 목소리를. 이것이 헤비메탈이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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