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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유기’ 역대급 방송사고 뒤엔 ‘빨리빨리’ 드라마 제작 관행

등록 2017-12-25 17:54수정 2017-12-27 13:39

24일밤 2회 방송때 CG작업 안 거친 원본 영상 나가고
드라마 중단·중간광고 계속 내보내다 결국 방송 중단
tvN “앞부분 방영되는 동안 뒷부분 작업될 줄 알아”

2011년 ‘시크릿가든’ ‘싸인’ 마지막회도 방송사고
“시청률에 목매다 사전제작 정착 안된 탓” 분석도

tvN “4회 방송 한주 연기”
드라마 <화유기>(티브이엔)가 24일 2회 방송에서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촬영 원본 영상이 공개되는 대형 사고를 냈다. 프로그램 갈무리
드라마 <화유기>(티브이엔)가 24일 2회 방송에서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촬영 원본 영상이 공개되는 대형 사고를 냈다. 프로그램 갈무리
차승원·이승기 등 스타 배우를 내세워 떠들썩하게 출발했던 <화유기>(tvN·티브이엔)가 방송 2회 만에 역대급 대형 사고를 냈다. 지상파를 위협하는 ‘드라마 왕국’이 된 티브이엔의 어이없는 사고를 계기로 ‘속도전’으로 치닫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밤 시청자들은 전날 첫 방송을 한 드라마 <화유기>를 보며 눈을 의심해야 했다.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날아다니더니 곧 중간광고와 <윤식당> <막돼먹은 영애씨> 등 티브이엔 프로그램 예고 영상 등이 10분 넘게 나오는 상황이 반복됐다. 컴퓨터그래픽(CG·시지) 작업을 거쳐 스턴트맨을 악귀로 변환시켜 내보내야 했는데 아예 원본 영상이 나간 것이다. 액자가 넘어지는 장면에서도 액자를 당길 때 사용한 실이 노출됐고, 시지 작업을 위해 배경으로 촬영한 블루스크린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사고가 계속되자, <화유기>는 2회를 다 내보내지도 못하고 밤 10시40분께 급하게 방송을 종료했다.

티브이엔 관계자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화유기>는 요괴 등 시지 작업이 필요한 장면이 많은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작업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시지는 한 회를 몇십분씩 분량별로 나눠 작업하는데 사고가 난 2회도 몇십분씩 쪼개어 시지 작업을 했다. 앞부분이 방영되는 동안 뒷부분의 작업이 완성될 줄 알고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상 유례없던 사태를 두고 사실상 한국 드라마 시스템의 고질병이 부른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많다. <화유기>처럼 시지 요소가 많은 등 후반 작업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드라마였다면 애초 사전제작이나 반사전제작 등 충분한 여유를 두고 방송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화유기>는 지난 10월초 촬영을 시작했고, 현재 6회분을 찍고 있다. 사고가 난 2회 장면은 11월 중순께 촬영했다. 촬영부터 방송까지 한달 넘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2회 시지를 마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지상파 출신의 한 드라마 피디는 “보통 드라마들이 2~3개월 전부터 촬영을 시작하는 것에 견주면 촉박한 일정은 아니지만, <화유기>처럼 시지 작업이 많아 후반 작업이 복잡했다면 차라리 방영 시기를 늦춰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방송사고는 심심찮게 일어났다. <시크릿 가든>(2010) 마지막회에서는 스태프의 음성이 나갔고, <싸인>(2011)의 마지막회에서는 화면조정용 컬러바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부분 후반부로 갈수록 촬영 시간에 쫓겨 편집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그럴 때마다 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한 케이블 드라마 피디는 “4회 정도 여유를 두고 시작해도 대본을 고치는 등 수정을 하다 보면 결국 시간에 쫓겨 긴박하게 내보내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스태프들은 연일 밤을 새기 일쑤다. 지난해 한 드라마 피디는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는” 현장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런 드라마 제작 환경이 싫어서 영화를 고집하는 배우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제작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결방하기도 한다.

시청률에 목매다 보니 드라마 사전제작이 정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태양의 후예>(2016)를 제외하곤, <내 인생의 스페셜>(2006)부터 <비천무>(2008),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2016) 등 대부분의 사전제작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저조했다. 지상파 간부 출신의 한 드라마 피디는 “한국 시청자들은 드라마 방영 중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이 드라마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사전제작 드라마 시청률이 낮은 이유를 설명했다. 반응이 좋지 않으면, 조기종영하면 되지만 사전제작 드라마는 끝까지 내보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사전제작을 하면 드라마 방영 시점과 제품 홍보 시기가 달라서 피피엘(PPL)을 받기 어려워 제작비 충당이 잘 안 되는 단점도 있다. 제작진은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였지만 제작진의 열정과 욕심이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라는 큰 실수로 이어졌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작품의 완성도보다 시청률과 돈을 먼저 고려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제2의 <화유기> 사건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편, 티브이엔은 31일 방송 예정이던 <화유기> 4화를 한주 연기해 1월6일 방송하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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