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들떠 있을 줄 알았다. ‘괴물 신인’ 등 온갖 말들이 수식하는 ‘올해의 인물’이지 않나. 그와 작업한 한 드라마 작가는 <한겨레>에 “아시아의 스타가 될 배우의 등장”이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뭐라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부족한 부분, 혼란스러운 마음부터 내비친다. “나 뭐 하고 있지, 내가 잘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2017년을 돌아보면) 막 행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그는 “절대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인기를 느낄 여유도 없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방송 관계자들이 2017년 티브이 최고의 사건으로 꼽은 양세종은 올해 드라마계에 드문 족적을 새겼다. 지난해 11월 <낭만 닥터 김사부>(에스비에스)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데뷔한 이후, 올해 1월 <사임당: 빛의 일기>(에스비에스) 조연을 거쳐, 6월 <듀얼>(오시엔)에서 바로 주연을 꿰찼다. 종영하기 무섭게 두달 뒤인 9월에는 <사랑의 온도>(에스비에스)로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우뚝 섰다. “신인이 단역도 거치지 않고 비중 있는 조연으로 데뷔해, 곧바로 주연을 꿰차는 건 드문 일”이라고 피디들은 놀라워한다.
양세종 특유의 집중력이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하는 배우로 만들었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면 오롯이 드라마 속 인물이 되겠다는 주문부터 건다. “원룸을 얻어서 캐릭터에 맞게 연습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거기서만 살아요. 골방이라고 부르는데 침대, 스피커, 향초, 전신거울만 있어요.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놓고 알람용으로 사용하고 연락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가족, 친구들한테 미안할 때가 많아요.” 일상과 연기를 분리시키지 않고 그 캐릭터로 사는 게 자신한테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시행착오 끝에 터득했다. “처음에는 촬영을 마치고 원래 양세종으로 돌아갔는데 다음날 모든 신을 망쳐버렸어요. 그때 나는 분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캐릭터와 잘 어울릴 것 같은 향수를 골라 사용하는 것도 주문을 거는 행위다. <사랑의 온도> 때는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포 힘 블루 느와르’를 뿌렸다. “잔향이 살짝 어두우면서도 은은한 것이 온정선의 성향과 맞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자신에게 잘 맞는 연기법을 스스로 터득한 덕분에 그는 맡은 배역을 잘 씹어 먹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정확한 발음과 중저음의 목소리, 묘한 여운이 남는 마스크를 그의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듀얼>에서 1인 2역을 맡아 선과 악을 매끄럽게 오간 점을 높게 산다. 쌍꺼풀 없이 가로로 긴 눈, 깊고 슬픈 눈빛 등이 여러 얼굴을 오갈 수 있다고 말한다. <듀얼> 관계자는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는 정신력 또한 양세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악을 오가는 인물을 해낼 수 있을까, 멈칫하기도 했지만 일단 마음을 먹은 뒤엔 앞만 보고 갔다. “그땐 조명도 어둡게 하고, ‘골방’을 난장판으로 해놨다”며 활짝 웃을 때는 20대 청춘의 귀여운 모습이 나온다. 주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포장되는 걸 경계하는 성격 또한 그를 롱런할 배우로 꼽게 한다.
양세종은 나태주 등의 시집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레고리 포터의 재즈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새벽 거리를 수시로 걷기도 한다. 생활 자체가 일본 소설이나 수채화처럼 정적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태권도 시범단을 준비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 <스노우드롭>을 보고 배우를 꿈꿨다.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그 느낌이 심장을 때렸다”는 그는 고3 때 진로를 바꿨고, 어머니의 조언대로 “이 악물고 한” 끝에 지금의 양세종이 됐다. 2017년 큰 사랑 받았지만 바쁘게 산 탓에 “내가 잘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는 양세종은 그래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양세종은 어디 갔지. 나란 애는 누구였지. 돌아볼 시간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좀 쉬면서 천천히 들여다보려고 해요.” 인터뷰 내내 장점보다 단점을 귀 기울여 듣고, 조언을 흘려버리지 않던 그가 ‘내공’까지 쌓이면 얼마나 더 무서운 배우가 될까, 그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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