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배경으로 한 미국 드라마 ‘나이트 폴: 신의 기사단’ 시사회. 히스토리 제공
‘들어가도 되는 걸까.’
입구에 서서 한참을 쭈뼛거렸습니다. 창을 들고 방패를 든 중세시대 기사가 떡하니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가 콘셉트지만 그냥 오셔도 된다”는 말에 정말 그냥 왔는데, 입구부터 후덜덜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몸은 더 움츠러들었습니다. 왕관을 쓴 왕과 드레스 입은 왕비가 돌아다니고 기사들이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보내준 사진을 본 친구는 “사이비 종교 행사에 간 거냐”고 했지만, 아닙니다. 7일 전세계 동시에 방영을 시작한 중세시대 배경의 미국 드라마 <나이트폴: 신의 기사단>(히스토리) 시사회 자리입니다. 드라마 내용에 맞춰 중세시대 분위기를 낸 것이지요.
무슨 드라마 시사회 자리가 이렇게 요란하냐고요? 한국 드라마도 방영을 앞두고 제작발표회를 엽니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장소만 조금 다를 뿐 형식은 같습니다. 보통 서울 강남의 어느 호텔이나, 영등포의 어느 웨딩홀 등 장소도 늘 엇비슷합니다. 제작발표회 진행 구성도 같습니다. 포토타임을 두고, 하이라이트 잠깐 보여주고, 감독과 주요 출연진이 나와 인사를 하고 기자의 질의에 대답하면 끝입니다. ‘시사회’라고 못박고 이벤트를 열 경우는 영화관을 빌리는 게 일반적이죠.
이게 뭐가 문제냐고요? 아무 문제 아닙니다. 수십년간 늘 이렇게 해왔고, 제작진도 기자들도 당연히 이렇게 할거라고 예상하고 갑니다. 그런데 <나이트폴: 신의 기사단>은 예상을 깬 것이죠. 솔직히 적응, 힘들었습니다. 망토를 두르는 것도 민망해서 싫고, 배우들이 진짜 기사와 왕처럼 말을 하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참 좋더군요. 홍대의 어느 술집을 빌려 중세시대처럼 꾸몄는데 유명 호텔을 빌리는 것에 견주면 비용도 훨씬 덜 들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색깔이 한눈에 들어왔고, 드라마를 기다렸던 팬들도 초청하고, 유튜버들도 초청해 입소문에도 효과적일 것 같았습니다.
미국 드라마는 현지에서 방영을 앞두고 이런 이벤트를 자주 한답니다. <워킹 데드>는 좀비(분장의 배우)들을 트럭에 태워 도시 곳곳에 풀어놓는 게릴라성 이벤트로 유명하죠. <슬리피 할로우>는 극중 머리 없는 기마 경관이 시민들과 칼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워킹 데드>가 2015년 방송을 앞두고 시사회를 열면서 영등포 거리에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을 풀어놓기는 했지만, 한국 드라마는 이런 시도가 아직 없습니다.
호텔에서 배우들을 세워놓고 사진 찍고 몇마디 질문하는 천편일률적인 행사가 아니라, 정말 드라마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고 팬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특색 있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는 찰나, 왕이 다가옵니다. 그대여 망토를 두르소서. 망토를 두르고 오글거리는 대사에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뭐, 생각만큼 민망하지는 않았답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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