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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막장 없는 따뜻함에 매료…시청률 효자된 ‘옛날 드라마’

등록 2017-11-22 05:01수정 2017-11-22 12:16

KTV ‘고전 프로젝트’ 인기
장노년 주요 시청층 겨냥해
‘전원일기’ ‘서울의 달’ 등
1980~90년대 인기작 재방영

막장없는 희망적 얘기에 반응
결방 땐 항의 전화 빗발치고
‘보고픈 드라마’ 편성 요구도
‘밤 9시 <서울의 달>→9시45분 <전원일기>→10시30분 <상도>→11시 <순풍산부인과>….’

1980년대 편성표가 아니다. 2017년 방영 중인 드라마 편성표다! 요즘 매일 밤 9시부터 티브이에서는 80~90년대가 펼쳐진다. <케이티브이>(KTV)가 과거 드라마를 원본 그대로 다시 내보내는 이른바 ‘고전 프로젝트’다. <상도>(2001년), <서울의 달>(1994년), <전원일기>(1980년), <순풍산부인과>(1998년)까지 멀게는 30년도 더 된 드라마들이 다시 방영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케이티브이> 관계자는 “채널 주요 시청층인 장노년층이 좋아할 만한 프로젝트를 고민하다가 옛날 드라마를 선택하게 됐다”며 “채널 시청률이 갑절 가까이 뛰는 등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순풍 산부인과>. 한겨레 자료 사진
<순풍 산부인과>. 한겨레 자료 사진
고전 프로젝트의 시작은 단막극이었다. 1980년에 방영한 <티브이 문학관>과 1983년 방영한 <베스트셀러극장>을 2010년 차례로 선보이며 반응을 살폈다. 채널을 돌리다가 뜬금없이 찾아온 ‘샴푸의 요정’(베스트셀러극장)에 눈이 동그래진 시청자들이 하나둘 챙겨보기 시작했고, 2015년 10월5일부터 <여명의 눈동자>를 주 1~2회 편성한 것을 시작으로, <세 친구> <사랑이 뭐길래> <한지붕 세가족> <아들과 딸> <허준> <대장금> 등 장편을 내보내며 고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케이티브이> 관계자는 “<전원일기>를 월~금 매일 내보내기 시작한 2016년 2월8일 이후부터 반응이 폭등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달>. 한겨레 자료 사진
<서울의 달>. 한겨레 자료 사진
작품은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1992~2005년, 2006~2015년 드라마 시청률 순위표를 중심으로 선택한다. 화질도 안 좋고, 봤던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게 뭐가 재미있을까 싶은데, 시청자들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빠져든다. 개인 누리집 등에는 “지금 <서울의 달>이 방영되고 있는 것을 아느냐”는 등 정보 공유가 한창이다. 긴급 브리핑 등으로 결방되면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케이티브이> 관계자는 “옛 드라마를 보며 희망을 갖고 살았던 젊은 날을 추억하는 것 같다. 아이돌 위주로 어른들이 마땅히 볼 드라마가 없는 것도 장노년층을 옛드라마에 빠져들게 한다”고 말했다.

보고 싶은 드라마를 방영해달라는 요구도 쏟아진다. <상도>는 애초 방영 계획에 없었는데 시청자의 요청으로 편성했다. <수사반장> <티브이 손자병법> <여로> <아씨>를 보고 싶다는 요청이 가장 많지만, 아쉽게도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케이티브이> 관계자는 “1970년대는 자료를 축적하는 기록보존의 개념이 없어서 한번 사용한 필름을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수사반장> 등은 몇회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전원일기>. 한겨레 자료 사진
<전원일기>. 한겨레 자료 사진
채널 자체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지만, <케이티브이> 고전 프로젝트는 의외로 요즘 드라마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말초신경을 자극해 시청률 높이는 데 혈안인 막장드라마와 달리 보고 나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드라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내용이 대부분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옛 드라마에는 엉뚱하고 사고 치는 인물도 있지만 근본 없는 악인은 없다. <전원일기>에서 동네 노총각 응삼을 장가보내려고 온 마을이 나서고, 복길 할매의 환갑잔치를 열려고 돈이 없어 며느리가 반지까지 판 사실을 알자 마을 사람들이 도와 잔치를 여는 모습은 각박한 현실을 곱씹게 한다. 시청자 윤남윤(47)씨는 “복길 할매 환갑잔치 편을 보면서, 저게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나 슬퍼졌다”며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전원일기>를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는 연기, 연출 등 촘촘한 만듦새는 현 제작자들을 반성하게도 한다.

고전 프로젝트는 한번 방영된 드라마는 ‘다시보기’를 할 수 없었던 시절에 쌓였던 의문을 푸는 열쇠도 된다. 시청자들은 <전원일기>의 응삼이 결혼한 적이 있는지 등 처음부터 챙겨보지 못해서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다시 확인하며 개인 블로그 등에 일일이 소개하기도 한다. 스타의 옛모습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서울의 달>에는 한석규와 최민식의 초창기 모습과, <순풍산부인과>에는 신인 시절 송혜교도 나온다. 자신의 과거 모습이 생소한 연예인들은 감추고도 싶어한다지만, 시청자들은 재미있다. 방송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한 중년 배우는 “내가 저랬었나 싶은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방송인 <케이티브이>가 옛 드라마를 재방영하는 것에 대해 안일한 편성이라고 문제제기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잊혔던 추억의 드라마를 꺼내 시청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또한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책이 아닐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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