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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드라마, 분통 터지는 현실을 저격하다

등록 2017-11-08 05:01수정 2017-11-08 08:58

‘마녀의 법정’ ‘블랙’ 등 수사물
세월호·아동폭행·몰카·교수갑질…
섬뜩한 부조리 스토리에 녹여

불편한 진실애 시청률 떨어져도
‘정의는 결국 승리’ 통쾌한 결론
맘졸인 시청자에 대리만족 선사
세월호 선주 유병언의 의문의 죽음, 부모의 아동학대(1,2 <블랙>), 갑질 교수 조교 폭행 사건(3 <당신이 잠든 사이에>, 몰래카메라로 찍은 동영상 불법 유포(4 <마녀의 법정>) 등  요즘 드라마들이 실제 사건을 연상케 하는 내용을 소재로 내세워 화제를 모은다. 각 방송사 제공
세월호 선주 유병언의 의문의 죽음, 부모의 아동학대(1,2 <블랙>), 갑질 교수 조교 폭행 사건(3 <당신이 잠든 사이에>, 몰래카메라로 찍은 동영상 불법 유포(4 <마녀의 법정>) 등 요즘 드라마들이 실제 사건을 연상케 하는 내용을 소재로 내세워 화제를 모은다. 각 방송사 제공
지난 4일 밤 포털 사이트에선 잊혔던 인물 ‘유병언’이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 8위에 올랐다. 그날 밤 11시15분에 방영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SBS)가 세월호 소유주인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큰아들 유대균씨를 인터뷰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아버지가 자연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살해 의혹을 제기하거나 “(내가) 체포됐을 때 변호사 중 한명이 아버지에게 죄를 몰자고 말했다”는 등 그동안 음모론으로 떠돌던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같은 시각, 케이블 채널 <오시엔>(OCN) 드라마 <블랙>에서는 유씨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라도 한 듯, 그의 주장과 흡사한 내용이 방송됐다. 극 속에선 300명이 희생되는 대형마트 붕괴 사건이 일어났는데 부실공사 주범으로 쫓기던 우병식이 자살한 채 발견되면서 사건이 일단락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살아있었다. 우병식의 뒤를 봐주는 배후세력이 존재했고, 그들은 우병식이 살아있다는 게 발각되자 이번엔 진짜로 그를 살해한다. 마트를 소재로 했지만 누가 봐도 이는 세월호였고, 우병식은 유병언이었다. 유대균씨의 주장처럼 드라마는 우병식(유병언)에게 죄를 몽땅 덮어씌웠고, 그는 살해됐다. 시청자들은 “소름 돋는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유병언이 나오다니 정말 뭔가 있는 거 아닌가” 등의 반응을 보이며 드라마의 ‘예지력’에 감탄했다.

<블랙>에 나온 유병언을 연상케 하는 우병식.
<블랙>에 나온 유병언을 연상케 하는 우병식.

드라마가 ‘무당 빤스’(<블랙>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주인공의 별명)를 입은 걸까. <마녀의 법정>(KBS2), <당신이 잠든 사이에>(SBS) 등 수사물이 늘면서 마치 앞날을 내다보기라도 한 것 같은 장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수 최시원의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물린 이웃이 이후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진 날 밤, <블랙>에서는 재벌 2세가 키우던 개가 주인공의 다리를 무는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했다. <블랙> 관계자는 “대본은 오래전에 나왔기 때문에 (최시원) 사건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드라마가 이처럼 ‘용한 점쟁이’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스토리가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최근 5년 동안 발생 건수가 3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마녀의 법정>은 의붓아빠에게 성추행당한 10살 아이를 조명하며, 화장실에 감금돼 학대당하던 아이, 배가 고파 맨발로 탈출해 슈퍼에서 빵을 훔쳐 먹던 아이 같은 가슴 아픈 사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의 모순이 고스란히 담긴 ‘교수 갑질’도 다뤄졌다. 자신의 갑질 행위를 고발하려던 조교를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뜨리게 하는 교수(<당신이 잠든 사이에>),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남자 조교를 성폭행하려고 하는 여교수(<마녀의 법정>) 등이 그렇다.

부조리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현실을 빼닮았다. <마녀의 법정>에서 아이를 오랫동안 괴롭힌 의붓아버지는 “동종 전과가 없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작 징역 5년을 선고받는다. 그는 형을 마치고 출소하자마자 중학생이 된 딸을 다시 찾아가 아내를 죽이고 딸을 납치해 예전과 같은 짓을 벌인다. <블랙>의 주인공은 아이의 불행을 예감하고 경찰과 아이 엄마에게 잘 보호해달라고 신신당부하지만, 결국 아이는 죽임을 당한다. 물론, 시청자들은 이처럼 괴로운 현실을 닮은 드라마를 다소 불편해하기도 한다. 어린이를 학대하고 성추행하고 죽이는 장면은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블랙>의 경우 아동학대와 세월호를 다룬 회차가 코미디 라인을 강조한 이전 회보다 시청률이 떨어졌다.

그러나 드라마는 결국 정의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맘 졸이던 시청자들을 다독인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갑질 교수’는 마침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블랙>에선 3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배후가 밝혀진다. 드라마는 현실의 거울처럼 비극적 현실을 촘촘하게 보여주고 그를 극복하는 과정의 지난함을 짚지만, 동시에 희망찬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드라마처럼 현실도 변화할 수 있기를.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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