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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다큐멘터리 감독들 ‘최저활동비’ 확보 나섰다

등록 2017-07-26 15:37수정 2017-07-26 21:24

다큐 제작집단 연분홍치마, 월 600만원 계좌이체 후원자 모집
복지 사각지대 놓인 예술인들의 근본적 생존권·지원책 마련 시급
연분홍치마 페이스북
연분홍치마 페이스북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인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최저 생계비’ 확보에 나섰다.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어주세요!’의 줄임말과, 월 씨엠에스(CMS) 계좌이체 후원 목표액 600만원을 합친 ‘당기다600’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600만원은 연분홍치마에 소속된 다큐멘터리 감독 5명에게 월급 12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지난 10일 시작된 프로젝트는 후원회원을 대상으로 발송한 메일을 한 후원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면서 알려졌다. 17일에는 연분홍치마 쪽에서 공식적으로 ‘당기다600’ 진행 사실을 알렸다. 연분홍치마 쪽은 10월2일까지 100일 동안 프로젝트를 펼칠 계획이다.

2004년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시작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삶을 지향하며 새로운 성적 문화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인 단체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삶뿐만 아니라 치열한 투쟁 현장을 다큐멘터리로 그려왔다. 게이들의 커밍아웃을 그린 <종로의 기적>, 용산 참사 2부작 <두 개의 문>·<공동정범>, 패션 디자이너의 삶을 그린 <노라노> 등 9편의 영화를 제작·감독했고, 4·16 세월호 참사 미디어 위원회·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미디어팀 등에서 활동해왔다.

120만원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한달 활동비’다. 연분홍치마의 변규리 감독은 “(그래도) 그 정도 수준이면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다 해서 설정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연차가 10년이 넘은 감독도 있지만 모두 동일하게 배분받는다. 이들은 산재보험이나 4대 보험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한달 후원비는 140만~150만원. 이 돈으로 사무실 월세와 공과금을 낸다. 한 감독이 작업에 들어가면, 다른 감독들은 아르바이트나 단체 외의 활동을 하며 생계비를 벌어 서로 나눠왔다. 정부 등에서 받은 제작지원비는 영수증이 있는 식비 등으로만 쓸 수 있을 뿐, 다른 용도로는 전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기획·섭외·로케이션 등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2~5년이 걸리지만, 제작지원비 사용은 촬영기간 등에만 한정된다. 변 감독은 “(동료의) 제작기간이 길어서 누군가 편집을 계속하고, 누군가는 계속 아르바이트로 보조를 해야 할 때 마음이 힘들어진다. 내가 편집할 때 버텨주겠지 하고 안심되기도 하지만, 왜 끝나지 않는가 하고 야속함도 쌓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분홍치마는 ‘당기다600’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서로를 착취하는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프로젝트를 알리는 호소문에서 “‘서로의 시간을 착취’한다는 것은 마음의 빚이 쌓이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활동가들의 마음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결국 활동가들의 활동 자체를 가로막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연분홍치마 공식누리집
연분홍치마 공식누리집
문제는 이런 상황이 연분홍치마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변 감독은 “그나마 우리는 단체이기 때문에 계좌이체 수단을 이용할 수 있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는 감독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도 예술가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현재 문체부는 ‘새정부 예술정책 토론회’를 잇따라 열어 예술인금고 등 예술인 지원책에 관한 의견을 듣고 있다. 토론회에서 발표한 통계에서 현재 예술가들의 연평균 예술활동 소득은 1255만원, 겸직 비율은 50%(문화체육관광부 2016년 조사), 고용보험 가입률은 25.1%이다.

그나마 있는 제도는 소수의 예술인에게 ‘시혜’로 베풀어지고 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 뒤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의 창작자 지원은 명칭과 내용 등에서 혼란을 겪다가 2015년부터 1년에 300만원의 ‘창작준비금’으로 정착되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2015년 3500명, 2016년 4천명에게 준비금이 지원됐다고 밝혔다. 2017년에도 같은 규모로 지원된다. 이 지원금의 대부분은 부수입이 없는 ‘순수예술인’이 받는데,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1년에 120만원(3년 360만원)을 넘거나 전체 소득의 50% 이상이어야 한다.

밴드 활동을 하지만 그로 인한 수입이 거의 없다는 정문식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대부분의 음악인들에게 직업을 갖는 건 필수적인 일”이라며 “예술인복지재단에만 예술인 생활을 맡겨둔다는 발상이 문제”라고 말했다. 연습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간주하고, 불규칙적인 예술인의 생활을 보장하는 실업보험 ‘엥떼르미땅’(Intermittent)을 운영하는 프랑스처럼, 예술을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봐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경태 다큐멘터리 감독(<거미의 땅>·<나와 부엉이>)은 “제작비 지원이 프로젝트별로 이루어지는데 프로덕션·제작·후반작업·배급 등 제작 단계마다 세분화된 지원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서바이벌 형식의 판권·소비자 중심 지원은 저작권·생산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인식의 전환’도 강조했다. “다큐멘터리는 거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기억예술가다.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예술가를 ‘사회적 노동자’로 인식해야 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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