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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갈빗집 아닌 ‘가든 디자인’ 알리는 부부 정원생활자”

등록 2017-06-27 20:13수정 2017-06-28 02:02

【짬】 속초 ‘정원학교’ 운영하는 오경아·임종기씨

가든 디자이너 겸 작가 오경아(오른쪽)씨와 목수 겸 교수 임종기(왼쪽)씨 부부가 강원도 속초시 중도문길 빈집을 손수 개조해 가꾼 정원학교에서 함께 했다. 속초/김경애 기자
가든 디자이너 겸 작가 오경아(오른쪽)씨와 목수 겸 교수 임종기(왼쪽)씨 부부가 강원도 속초시 중도문길 빈집을 손수 개조해 가꾼 정원학교에서 함께 했다. 속초/김경애 기자

“그 무렵 친정 부모님이 50대 중반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나셨어요. 휴일 없는 방송작가 일에 맞벌이 주말 부부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상사에 지쳐 있기도 했구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하자’고 결단을 내렸죠.”

최근 방송작가 출신 가든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오경아(51)씨가 2005년 집을 팔아 여비를 장만해 남매와 함께 영국 유학길에 오른 계기다. 7년 만에 런던 인근 에섹스대학에서 조경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가든 디자인을 알리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08년 <소박한 정원>을 시작으로 최근 나온 <정원생활자>(궁리 펴냄)까지 일곱권의 ‘정원 이야기’를 썼다.

그사이 대학교수(문예창작과)이자 ‘기러기 아빠’로 뒷바라지를 했던 남편 임종기(56)씨는 취미 삼았던 목공 기술을 쌓아 목수가 됐다. 2012년부터 함께 정원 관련 종합회사인 오가든스를 차리고 ‘정원학교’를 운영 중인 부부를 이달초 강원도 속초로 찾아가 만나봤다.

부모 잇따라 여읜 방송작가 부인 오씨
“지금 하고픈 일 당장 하자고 결단”
2005년 남매 데리고 영국 유학길에
7년만에 박사 따고 ‘가든 디자이너’로

집 팔아 ‘기러기 아빠’ 헌신 남편 임씨
대학 강의하며 목공기술 쌓아 목수로
“한국형 지속가능한 정원센터 여는 꿈”

글씨 디자이너 강병인씨의 작품을 살려 만든 철제대문이 인상적인 정원학교는 생각보다 아담하고 소박했다. 하지만 자세히 둘러보니 200평 남짓한 앞뒤 뜰에 구석구석 다양한 종류의 동서양 식물과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이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속초에서 오랫동안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부부의 정원 설계 의뢰를 받고 찾아왔다가 설악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네가 마음에 들어 그날로 빈집과 외양간을 가계약해서 정착했단다.

“제발 저한테 무슨 꽃이냐고 묻지는 말아 주세요.” 정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목공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온 남편 임씨는 “오가든스의 원목 리빙·정원 용품을 만드는 노가다 일꾼일 뿐”이라며 지레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부부는 지난 12년 같은 꿈을 키워왔다.

“처음부터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러 간 건 아니었어요. 그저 3년쯤 쉬고 오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사춘기 아이들의 적응 진통을 지켜보면서 도중에 돌아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내친김에 박사과정까지 들어간 거예요. 물론 남편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죠.”

오씨는 부부 모두 도시보다는 시골 생활을 좋아해 ‘정원학교’를 함께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했다.

“해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진해, 부산, 군산 등으로 이사를 다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서울 은평구 문화촌에 정착했어요. 90년 무렵 제 결혼을 앞두고 사위감을 맞으려고 수세식으로 바꿀 때까지 푸세식 화장실을 쓰던 ‘서울 속 시골’ 동네였지요. 식물 가꾸기는 아버지의 취미였어요. 어릴 땐 물 주기, 풀 뽑기 당번이 귀찮았는데, 언제부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당에 풀부터 뽑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더라구요.”

남편 임씨가 ‘한밤중에 대문 여는 소리는 들렸는데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나가보면 풀을 뽑고 있다니까요’라며 거들었다. 그 때문에 꽃가루 알레르기에 기침을 고질병으로 얻었지만, 그런 집중력 덕분에 오씨는 <정원생활자>에 곁들인 식물 삽화 300장을 이틀 만에 직접 그려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가든 디자이너’라고 하면 숯불구이 갈비집 같은 대형 야외 음식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예전에 외국의 유명 가든 디자이너가 방한해서 보길도의 세연정, 담양의 소쇄원 같은 곳을 둘러보고 난 뒤 ‘그런데 한국식 정원은 언제 볼 수 있냐’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어요. 그만큼 서구식 ‘가든 디자인’은 우리에게 생소한 분야란 얘기죠. 그래서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아요.”

오씨가 글쓰기 재능을 살려 ‘가든 디자인’ 개념부터 널리 소개해온 것도 그 하나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1년간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에서 정원사로 실전 경험을 하며 써낸 에세이 <소박한 정원>을 비롯한 에세이 <영국 정원 산책>과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원예 이야기와 가드닝 지식을 담은 <정원의 발견>, 어렵게 느껴지는 가든 디자인의 원리와 실제를 모네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정원 이야기를 소재 삼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가든 디자인의 발견>, 모든 은퇴자들의 로망인 전원생활 안내서 <시골의 발견> 등등 그가 하고픈 이야기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부부가 함께 세운 목표는 ‘정원문화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뉴욕의 하이라인 설계로 이름을 날린 당대 최고의 가든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네덜란드)처럼, ‘다 자란 식물이 아니라 씨앗부터 발아시켜 지속 가능한 자생력을 갖춘 자연 정원’을 도심에서 가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는 최근 개통한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 7017’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속초만 해도 이미 땅값이 많이 올라 엄두를 내기 어렵지만, 한국형 지속 가능한 정원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 우연처럼 운명처럼 나타나기를 기다려요.”

속초/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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