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은 공통점이 많다. 은하수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다. 좋은 술, 나쁜 술이 없듯이 음악도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 없다.” 지난달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예술가의 술 사용법>을 출간한 조승원(44·<엠비시> 기자)씨는 앉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20여년 넘게 심취한 술과 음악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책 출간은 2004년 가수 신해철과의 약속이 결정적이 계기가 됐다. 그때 <시사매거진 2580>에서 마약을 주제로 방송을 준비하던 중, 취재원으로 신해철을 만났다. 밤 11시에 만나 꼬박 7시간을 음악과 술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돌아서는 등 뒤로 신해철이 “밤새워 한 얘기 아깝다. 책 내봐라”라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부에서만 10년 넘게 있었던 그는 ‘엠비시’가 파업에 돌입하고 비제작 부서로 발령이 나자 그 약속이 떠올랐다. 하지만 진척은 느렸다. 3년 전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나자 작업 속도를 올렸다. “마음 한 곳이 시리고 먹먹했다. 돌아가신 분이 남긴 숙제를 무조건 완성해서 영전에 바쳐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인세를 전액 인디뮤지션 지원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책은 애주가라면 몇 시간 만에 통독을 하고 남을만큼 흥미진진한 얘기들로 풍성하다. 노벨상 수상자인 밥 딜런이 23살에 떠난 음주여행 에피소드나 허름한 미국 클럽에서 만취한 존 레논의 주사나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던 오지 오스본의 비밀 등이 책에 빼곡하다. 외국 유명 매체에서도 좀처럼 보도된 적이 없는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음주 뒷얘기는 조씨가 5년간 수집한 자료, 동영상과 번역 등을 기반으로 한 것들이다.
“넓은 모래 해변에서 작은 보석을 찾는 심정이었다”는 그는 수십 권의 평전을 뒤져 겨우 한 문단을 완성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이런 열정은 음악전문가이자 애주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최루탄이 일상이었던 대학시절에도 음악다방 등교를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던 그였다. 1997년 엠비시 기자로 입사한 후에 애주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2000년 술 공부를 시작해 2010년에는 국가 공인 주류 자격증인 조주기능사를 땄다. 내친 김에 이듬해에는 ‘엠비시’ 창사 50돌 다큐멘터리 <술에 대하여>를 연출했다.
자칭 ‘미주가’(美酒家)인 그는 술도 음식처럼 제대로 음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주가는 미식가란 호칭을 참고해 그가 만든 단어로, 술도 음식처럼 깊이있게 경험하고 즐기는 이들을 뜻한다. “입사 초반, 한 자리에서 수십 잔의 폭탄주를 마셨는데 어느 순간 너무 지겨웠다. 매일 왜 같은 술을 마시는 걸까 의문도 들었다. 술도 음식처럼 즐거움이 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는 대주가가 아닌 ‘미주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술 앞에서 경건하다. 향을 맡고, 수많은 종류의 맛의 차이를 따진다. 술 박사로 소문이 나 강연도 쇄도한다. 강연에서 그는 “오감을 작동시켜 제대로 마시는 법”을 설파한다. “눈으로 빛깔을 보고, 잔의 온도를 만져 촉각의 날을 세우고, 귀를 쫑긋 세워 꿀꺽 넘기는 소리를 듣는 법”이라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위스키 등은 술에서 숙성 통의 향이 난다”며 후각도 맛을 음미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한 방울도 안마시고 그 술의 독특한 풍미를 향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