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를 열어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등의 용어 사용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2차 가해’ 같은 용어의 사용은 가능한 지양해야 한다. (이 용어의 사용으로 인해)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지 못하게 되면서 원래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공동체 내 토론이 불가능해지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성폭력 사건 뒤 1차 피해 조사 과정에서 사법기관, 의료기관, 언론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야한 옷을 입었다” 또는 “화간이었다”라고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거나 원치 않았음에도 피해자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을 ‘2차 피해’라고 한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등 이른바 ‘도덕적인 올바름’을 지향하려는 공동체의 경우 구성원들간에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려 공론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언급 자체가 ‘2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2차 가해’라는 용어가 원칙 없이 오남용되는 것에 부작용이 크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상임대표 김민문정) 성폭력상담소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400여명이 모여 4시간 넘게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공동체에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가 특히나 예민한 의미를 내포한 용어라는 데 공감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2차 가해’라는 개념이 피해자에 대한 역공격을 줄이는 데 기여했지만 사건의 해결보다 행위자를 잡아내고 처벌하는 데만 집중하게 되는 사례도 있었다”며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라는 개념을 지금보다 전략적으로 사용하거나 새로운 언어와 개념들을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는 지난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실명 고발이 이뤄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위원회 운동’(100인위)도 함께 검토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전희경씨는 ‘100인위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 발표하면서 “당시 운동사회의 가부장성을 폭로하는 ‘공론화’를 목표로 했고 성과를 거뒀지만 점점 피해자 보호가 중요해지면서 피해자는 ‘싸우는 사람’이기보다 ‘보호받아야 할 고통스런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밝혔다. 성폭력 사건은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고통스런 피해자에게 추가로 해를 입힌다면서 ‘2차 가해(자)’를 ‘지목’하고 ‘처벌’하는 데 집중한다면 이야기하기 자체를 두려워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씨는 나아가 ‘2차 가해’라는 개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냈다. 그는 “‘2차 피해’라고 할 때는 어떤 사회적 통념들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2차 가해’라는 말은 누가 어떤 가해를 했는지에 집중하게 한다”고 말했다. ‘2차 가해(자)’에 주목함으로써 1차 피해에 대한 조사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법적인 영역이라기보다 피해자 치유와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연구자 오혜진씨는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특수성과 2차 가해 담론’ 발표에서 “현재 고발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에는 실제 성폭력과 ‘작품을 매개로 한’ 폭력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더욱 까다롭다”며 “‘2차 가해’ 개념이 전보다 훨씬 폭넓은 일종의 ‘금언령’이 돼 침묵의 알리바이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2차 가해’ 규정이 여전히 효과를 지닌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2차 가해’ 개념은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강력한 규제방안이 되고 있으며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의 방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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