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심상정 대선후보는 송인서적 부도 등으로 타격을 입은 국내 출판시장 활성화와 공공지원 강화에 한목소리를 냈다. 연초 부도를 낸 송인서적의 경기 파주시 본사 앞에 유통되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는 모습.
출판계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공작으로 현실비판적 도서들에 공공지원이 끊기면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 연초 서적도매업체 송인의 부도사태까지 터져 출판시장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도서판매량 감소로 불황 늪에 빠진 서점·출판사들의 공공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술·문화재 동네도 정책 난맥상 아래 삐져나온 진·위작 시비와 고도 경주의 졸속 복원 등이 논란을 빚었다. 특히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지라며 신라 천년 궁터인 경주 월성의 속도전 발굴, 황룡사터 급속 복원 등을 추진하다 기존 유적을 훼손하는 등 무리수를 빚어 학계의 우려를 샀다. 정치논리를 앞세운 유적 복원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겨레>는 이런 현안들과 관련한 출판·미술·문화재 분야 정책·공약 질의서를 각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보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후보 쪽 답변을 받았다. 세 후보는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시장과 도서관 정책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송인 부도 대책과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 등 구체적인 개선방안에는 답변을 달리했다. 미술·문화재 분야의 경우 작품 감정제도에 대한 신중한 보완과 정책 신뢰 회복, 고도 복원 재검토 등을 내놓았지만 대체로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쪽은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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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 부도대책은? 온도차가 느껴진다 현재 출판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현안은 송인서적 부도사태다. 1월초 부도가 난 송인서적과 거래해온 출판사 2000여 곳의 피해 규모는 300억~600억원으로 추산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 뒤 피해 업체들에 긴급 운전자금 등으로 출판기금 50억원을 1%대 금리로 빌려주고, 3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시행 중이나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후보들은 좀 더 강화된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큰 틀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구체성은 부족했다. 문재인 후보는 “출판계의 어려움은 국가사회적 문제다. 정부가 콘텐츠공제조합의 건실한 재정 자립과 지원 확대를 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답했으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안철수 후보는 “유통정보통합시스템 구축과 공정경쟁 환경 조성 등은 정부 몫이고, 과도기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출판계 몫”이라고 답했다. 심상정 후보는 “빚을 내 잠시 어려움을 참아내라는 게 아니라 긴급 자금 지원과 정부와 민간기관의 도서 구입 같은 실효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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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도서관 확충엔 동감 완전 도서정가제 등 출판·서점계의 여러 숙원 사업에 후보들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3월말 한국출판인회의·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등 20개 출판·문학·도서관 단체들은 △15% 할인, 신용카드 우회할인 없앤 완전 도서정가제 시행 △세액공제 혜택 도입 △공공도서관 3천개로, 도서관 도서구입비 연 3천억원으로 확대 △문체부 독서출판정책국 신설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또 도서관 대출로 신간도서 판매가 줄어드는 만큼 저작권료를 주는 ‘공공대출권’과 도서 복제 보상금을 저자뿐 아니라 출판사에도 주는 ‘판면권’ 도입도 제안했다.
가장 적극적인 건 심 후보였다. 심 후보 쪽은 이런 요구에 대부분 동의하면서 “공공대출권과 판면권을 법제화해 출판이 지속가능하도록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안 후보 쪽은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 후보 쪽은 “원칙적으론 동감하나 완전 도서정가제는 온오프라인 등 출판계의 합의가 전제돼야 하며, 창작기금 등 재원은 다른 분야와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안 후보 쪽은 “현행 도서정가제를 유지하면서 공공대출권 도입, 도서구입비 세제 혜택은 문화비 예산과 묶어 검토하고 판면권 도입은 이해 관계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결정하되 정부는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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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제도 개선은 국가불신부터 걷어야 천경자, 이우환 위작 논란으로 촉발된 미술품 감정제도 보완책에 대해서는 민간 협의 혹은 민간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었다. 문 후보 쪽은 “국가감정기구 설립은 민간과 협의해야 할 부분이나 민간 감정도 100%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감정 전문인력 양성 등 장기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화랑, 감정, 경매 등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화랑협회의) 주장을 존중한다”며 국가감정기구 설립과 관련해 국가에 쌓인 불신을 지목했다. “천경자 위작 논란은 공공부문이 문제를 야기한 당사자다.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상황 정리가 이뤄지지 않아 국가기구 설립 구상을 불신하는 것으로 본다”는 견해였다. 심 후보 쪽도 논지는 비슷했지만, 진단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위작 문제는 기본적으로 판 사람 대 산 사람의 문제이므로 민간 감정과 법원 등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된다. 블랙리스트로 불신을 산 문체부가 민간 감정에 개입한다는 데 대한 국민 불신이 더욱 클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당선 뒤 미술시장 관계자들과 토론해 대안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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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복원 속도전 안 돼 속도전식 발굴과 부실 고증으로 논란을 빚은 고도 경주의 월성, 황룡사 복원사업에 세 후보는 ‘재검토’, ‘전면중단’ 등의 단어를 쓰면서 우려와 반대 태도를 분명히했다. 문 후보는 “국정교과서 같은 하나의 관점을 정부가 주도해 세우는 것은 절대 없어야 하며, 문화재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성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안 후보는 “당선 뒤 전면 중단하고 재검토를 비롯한 보존 복원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심 후보 쪽은 “형식적 절차가 되면 안 된다. 경주 복원사업은 황룡사탑 복원 등 고증이 검증되지 않은 부분의 재검토가 필요하며, 지역·학계의 심도 있는 검토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 후보는 공연, 전시, 유적답사 등 취임 뒤 문화생활 구상을 묻는 질문에 “솔선수범해 각 부처 공무원들과 동행하며 문화 감상을 실천하겠다”(문 후보), “만기친람과는 확연히 다른 원칙과 형식으로 문화가 있는 삶을 실천하겠다”(안 후보), “문화생활은 국민들의 권리이니 문화예술 현장을 더욱 누비고 다니겠다”(심 후보)고 응답했다. <끝>
노형석 김지훈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