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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거세지는 한한령, 얼어붙는 한류

등록 2017-04-02 13:58수정 2017-04-02 20:29

취소 취소 취소…
중, 사드 보복에 한류 최대 시장 위태
대중문화 넘어 클래식·뮤지컬 ‘한파’
잇단 계약 해지…미술·웹툰도 직격탄
한국 문화계, 험난한 출구찾기 고심
“취샤오.”

“취샤오.”

“취샤오.”

….

온통 취샤오(‘취소’의 중국 발음)다. 대개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 내 한류를 두고는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만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 한류의 최대 소비처로 떠오른 중국 시장이 위태롭다. 지난해 7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국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처인 ‘한한령’(한류 제한 명령)의 충격파다.

베이징 한 식당에 붙은 '한국 손님 거부' 안내문. 연합뉴스
베이징 한 식당에 붙은 '한국 손님 거부' 안내문. 연합뉴스
■ 전방위 공세 한한령은 한국 문화의 부문과 단위를 가리지 않는다. 한류의 대명사인 대중문화를 넘어 클래식, 뮤지컬, 미술 등의 분야에도 직접적 타격을 가하고 있다.

지난 1월 소프라노 조수미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중국 공연 무산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뒤이어 발레리나 김지영의 중국 공연과 베이징심포니 한국 방문이 좌초됐다. 3월 들어선 한국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영어권 배우들을 불러와 제작비만 110억원을 들여 만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의 중국 공연이 최종무산됐다. 정인석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장은 “케이팝 같은 시장은 원래부터 중국 의존도가 컸지만, 뮤지컬은 지난해 가을부터 중국 진출을 모색하면서 이제 막 사업을 펼치려는 단계였다. 지금은 시장이 중단된 상태다”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미술 쪽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2011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가였던 이용백(51) 작가는 4월29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미술품장터(아트페어) ‘아트베이징 2017’의 출품작가로 초대받았다가 이달 중순 취소됐다. 아트베이징 집행위는 지난 17일 보내온 취소 메일에서 “한-중간 정치적 긴장이 최근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작품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성악가 조수미씨 또한 1월 중국 공연이 무산된 바 있다. 한국 예술인의 공연 취소는 이제 클래식, 뮤지컬, 미술 등 각 분야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고 있다.
성악가 조수미씨 또한 1월 중국 공연이 무산된 바 있다. 한국 예술인의 공연 취소는 이제 클래식, 뮤지컬, 미술 등 각 분야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올해 상반기 국내 지방 공립미술관 5곳이 참여하는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전을 열기로 하고 중국 쪽과 협의를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각 미술관이 전시 개최 의향서를 보내자, 갑자기 중국 쪽이 어렵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하이의 사립 유즈미술관도 올해 9월로 예정했던 한국 원로들의 1970년대 ‘단색화’ 전시를 갑작스레 무기연기했다. 미술관 터를 상하이 시정부로부터 무상임대받고 있어 한한령 정부 지침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빙산의 일각 드러난 것만으로도 한한령의 위압감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이조차 아직 시작일 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 공동 운영하는 ‘중국사업피해 신고센터’에는 3월28일까지 17건의 한한령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방송 5건, 애니메이션 4건, 게임 3건, 연예엔터테인먼트 2건, 캐릭터 1건, 기타 2건 등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월16일 부랴부랴 신고센터를 만든 지 12일 만이다.

신고 내용은 익명으로 가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것만으로도 사례는 차고 넘친다. 드라마 <화랑>은 중국 미디어그룹 <엘이티브이>와 동시방송 계약을 체결했지만, 2회 방영된 뒤 이유없이 중단됐다. <후난티브이>에서 방송하려던 <사임당>도 중국 심의가 흐지부지됐다.

이미 판권이 팔려 시즌제로 방영되던 예능프로그램은 한국색 지우기에 나섰다. <후난위성티브이>의 중국판 <나는 가수다>는 시즌5부터 제목을 <가수>로 바꿨다. 매 시즌 황치열, 더원 등 한국 가수들이 출연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단 한명도 없다. <저장(절강)위성티브이>는 중국판 <런닝맨>의 제목을 <달려라 형제>에서 <달려라>로 바꿨다.

배우들의 예능 섭외도 잦아들었다. 중국 대표 예능프로그램 <쾌락대본영>에는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한국 스타가 거의 출연하지 않고 있다. 송중기, 김수현 등 한류 스타들이 출연했던 광고도 모델이 교체됐다.

지난해 그룹 ‘엑소’의 중국 공연 연기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대중음악 쪽도 점점 더 거센 폭풍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을 겨냥해 만든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려던 찰나 한한령 때문에 접어야 했다. 대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프로듀싱, 작곡 등에서 활발했던 중국 진출도 전면 중단됐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인 작곡가’가 만든 곡이라고 홍보했던 데 비해, 지금은 곡을 받아 가더라도 ‘이름 쓸 수 없는 것 알죠?’라고 한다”고 했다.

■ 설상가상 2015년 이래 새롭게 중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한류 차세대 주역으로 기대를 모았던 웹툰 등의 신한류 콘텐츠는 막 싹을 틔우려는 시점에 한한령 한파에 얼어붙고 있다. 3월 중순 중국 만화 앱 ‘대각충’, 중국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시나웨이보 등에서는 한국 웹툰과 웹소설이 일제히 사라졌다. 중국 전자책 플랫폼 1위인 아이리더 서비스 화면에서도 한국 소설들이 모두 사라졌고, 웹툰은 즐겨찾기를 해둔 독자들만 읽을 수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회수 70억을 넘기며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한 한국 웹툰은 지난해 8월 중국 업체들과 한국 웹툰으로선 최고 가격에 판권이 팔렸지만 제작 취소됐다. 이 웹툰 영화화를 추진했던 중국 업체 쪽은 “지금은 방법이 없다”고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혔다.

한창 불붙기 시작했던 한-중 영화 합작·교류도 막막해진 상태다. 이민용 감독은 윤봉길 의사 의거를 다룬 영화 <강철무지개>를 한·중 공동 제작하기로 했으나, 중국 광전총국이 무기한 심의 보류를 통보했다. 하정우가 장쯔이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던 영화 <가면>도 하정우의 비자발급이 무산되면서 최근 제작이 취소됐다. 4월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엔 한국 영화가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지난해엔 다섯 편의 한국 영화를 상영하고 한류 스타들을 초청했다.

드라마 <화랑>의 한 장면. 중국 미디어그룹 <엘이티브이>와 동시방송 계약을 체결했지만 2회 방영 뒤 이유 없이 중단됐다. <후난티브이>에서 방송하려던 <사임당>도 중국 심의가 흐지부지 됐다.
드라마 <화랑>의 한 장면. 중국 미디어그룹 <엘이티브이>와 동시방송 계약을 체결했지만 2회 방영 뒤 이유 없이 중단됐다. <후난티브이>에서 방송하려던 <사임당>도 중국 심의가 흐지부지 됐다.
■ 험난한 출구찾기 한국 문화계는 다양한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1월 한국의 콘텐츠 수출 중 중국 비중이 2015년 기준 27%로 일본(26%)보다 조금 높은 1위라고 집계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도 현지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한국 콘텐츠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며 “양질의 콘텐츠와 다양한 경로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시장 안정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쪽에선 여전히 중국 내 적극적 한류 소비층의 선호는 유지되고 있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음원시장의 경우, 씨엔블루가 3월20일 발표한 미니앨범 <7℃N>은 아이치이, 쿠거우 등 음원 사이트에서 일간 차트 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도 신곡 ‘봄날’이 2월 큐큐뮤직에서 주간차트 1위를 차지했다. 핵심 팬층 사이에선 한한령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한령이 장기화할 경우 한류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 문화연구가는 “현재 많은 한류 팬들이 ‘팬심’과 ‘애국’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온라인상으로는 여전히 팬심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소수 핵심 팬층 이외 전반적인 한류 팬덤에서는 후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력한 킬러 콘텐츠의 개발과 더불어, 동남아시아 등으로 진출을 확대해 중국 시장의 축소를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에스비에스>는 인도네시아 채널 <에스비에스-인>을 개국했고, <한국방송> <문화방송> <씨제이 이앤엠>도 홍콩, 동남아 등 진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도깨비>의 공유와 이동국은 아시아 투어 팬 미팅 때 중국 대신 다른 지역을 찾았다.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류는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국력 전반의 상승을 뒷받침하는 ‘소프트 파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 만큼 한류를 국력의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이고 사드 배치에 대한 손익계산의 한 항목에 포함시킴으로써, 사드 배치의 효과와 역효과를 포괄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손원제 손준현 노형석 구둘래 남은주 남지은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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