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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블랙리스트 청와대 공식문서 아닌 메일 팩스로…기록 감추기”

등록 2016-11-07 19:18수정 2016-11-07 22:37

예술인 블랙리스트 전파과정 ‘충격’
“2014년 여름 개략적 작성, 11~12월 수차례 추가 전달
나주 예술위까지 가져가 ‘지원 제외’ 지시”
문서전달 사무관 “달갑지 않지만 윗선서 시켜” 발언도”

국내 문화예술 정책을 총괄하는 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조윤선 장관과 정관주 1차관이 청와대 정무수석과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있을 당시, 정무수석실이 예술인들을 옥죄는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문체부 내부 관계자들의 폭로 내용은 충격적이다. <한겨레>와 만난 문체부·문화예술위원회 쪽 인사들은 당시 주요 정책 과정에 관여했던 관료들로, 이들의 폭로 내용은 당시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 전파, 시행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담고 있다.

이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처음 하달된 것은 2014년 여름(7~8월)께다. 홍성담 작가가 그린 박근혜 대통령 풍자화의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뒤이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이후 본격적인 리스트가 이메일 등으로 수차례 하달됐다는 것이다.

전달 경로는 박 대통령, 김기춘 실장과 지근거리에 있던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어버이연합 지원’ 의혹이 일었던 정관주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 협의 아래 작성을 주도했고, 그 문안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받아서 관할 문체부 예술국에 내려보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들이 리스트 작성 실무자로 지목한 이는 정 국민소통비서관이다. 그가 교문수석실 비서관, 행정관 보고라인을 경유해 지원 배제 예술인 명단을 문체부로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당시 교문수석실에서 문화 분야를 담당했던 비서관·행정관은 김소영 현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와 문체부에서 파견된 용호성 영국 런던문화원장, 김낙중 미국 엘에이문화원장이었다. 이에 대해 용호성 원장은 “상상할 수 없는 얘기”라고 부인했고, 김 교수, 김 원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리스트 전달은 공식기록이 남지 않는 방법을 썼다. 정무수석실에서 교문수석실을 거쳐 메일, 팩스 등을 통해 문체부로 명단이 전달됐다. 문체부 전직 관계자는 “처음에는 인쇄되어 전달됐으나 양이 많아지면서 종이 형태를 벗어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예술정책과에서 이 명단의 대조작업을 맡았던 ㅇ사무관은 양심의 가책 등으로 심한 중압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위 쪽에 블랙리스트가 하달된 과정도 비슷했다. 문체부 ㅇ사무관이 지원 배제 예술인 명단이 담긴 약식 문건을 들고 전남 나주의 예술위 청사를 찾아가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예술위 관계자가 이후 문체부를 오가거나 전화로 지원 배제 대상을 놓고 협의했다고 당시 예술위 관련부서 관계자는 증언했다.

문화예술지원공모 심의는 보통 매년 12월 중순 지원 대상이 확정되고 연말이나 다음해 1월 발표한다. 그러나 2014년 연말 갑자기 문체부에서 리스트 명단을 갖고 내려와 반영시킬 것을 요구하면서 혼란이 일어나 다음해 3월말에야 최종 명단이 확정, 발표됐다. “원래 심의에서 확정된 지원예술인과 블랙리스트에 거명된 인사를 대조하면서 지원 대상을 축소해야 했다. 기존 책임심의위원이 재심의를 해서 대상을 조정해야 하는데, 리스트 인사를 뺄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위원들을 설득하고 재조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당시 예술위 쪽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실천문학>이나 한국작가회의 등 주요 문인 그룹이 대부분 블랙리스트에 망라된 문학 분야의 경우 지원 대상에 올랐던 이들을 명단에서 빼는 명분을 찾을 수 없어 실무자들이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각 장르를 담당한 직원들의 전문적 식견 정도에 따라 블랙리스트 명단을 최종 지원 대상에 반영하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미술계의 대안공간 풀 등 일부 리스트에 언급된 단체, 작가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 것은 이 과정에서 지원 액수를 줄이는 정도로 절충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런 진술은 도종환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2015년 5월29일치 예술위 회의록의 정황과도 일치한다.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은 그날 회의에서 “(기금 지원) 책임심의위원을 선정해놓고 보니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 “심의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윤선 장관과 정관주 차관은 그동안 블랙리스트 논란에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조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고, 지난달 31일에는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부처 사업에 대해 점검 뒤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정 차관을 팀장으로 하는 ‘문제사업 재점검 검증 특별전담팀’을 구성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문체부 안에서는 이런 조치가 과거 블랙리스트 및 최순실씨 국정 관여에 부역했던 국장급 간부들의 책임 회피와 꼬리 자르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세 차은택씨가 개입한, 트레이너 정아름씨의 늘품체조 보급 사업의 경우 당시 담당과장이 선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다 해외연수자로 좌천당했지만, 사임한 김종 전 2차관의 측근이던 몇몇 국장급 간부들이 해당 과장을 정씨에게 거짓증언을 하도록 강요한 당사자로 몰아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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