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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성폭력 시인이 낸 시집 번호, 빈칸으로 남겨 치욕 삼으라”

등록 2016-11-04 16:21수정 2017-09-26 22:33

송승언 시인, 문학과지성사에 공개적으로 요구
“출판권력에 기댄 문인 성범죄, 출판사도 책임”
송승언 시인이 3일 온라인 메모장 에버노트에 공개한 ‘문학과지성사에 고합니다’ 글 일부.
송승언 시인이 3일 온라인 메모장 에버노트에 공개한 ‘문학과지성사에 고합니다’ 글 일부.
송승언(30) 시인이 3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에 문단 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문인에게 당한 성폭력 폭로가 빗발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시인 다수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송 시인은 이날 온라인 메모장 에버노트로 공개한 ‘문학과지성사에 고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죄질이 심각한 문인들의 책을 계약 해지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십시오. 특히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번대에서 죄질이 악한 시인들을 제명시켜, 400번대의 몇몇 빈 구멍들을 남겨 반성과 치욕의 사례로 두십시오”라고 요청했다. 1978년부터 나온 문지 시인선은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다.

송승언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송승언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그가 쓴 글을 보면, 피해자들이 폭로와 호소를 쏟아내고 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문인과 문단 동료, 출판사들의 반응이 너무 늦고 적절한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송 시인은 “사안의 심각함에 비해 문지가 직접 사고를 통해 밝힌 ‘사회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입장과 조치’가 너무 늦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의구심은 문지가 이대로 아무런 합당한 결과도 내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침묵하거나 변명하는 데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집니다”라고 썼다.

송 시인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번대의 몇몇 빈 구멍들을 남겨 반성과 치욕의 사례로 둘 것 △사설 강의 기관인 문지문화원 강사들에게 성폭력 관련 문제를 숙지시키고 관련 조항을 강의계약서에 첨부할 것 △문지의 출판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관련 항목을 추가할 것 등을 문지에 제안했다. 특히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번대’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시인 대부분이 문지에서 비교적 최근에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문지 시인선은 491번까지 나왔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습작생들을 성희롱했다는 혐의를 받자 지난달 22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린 뒤 활동을 중단한 박진성 시인은 문지 시인선 451번 시집으로 <식물의 밤>을 출간했고, 문하생들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이어지자 지난달 26일 자신의 블로그에 습작생 성폭행, 금품 갈취를 인정한다는 사과문을 쓴 배용제 시인은 468번으로 <다정>을 냈다. <식물의 밤>과 <다정>은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온라인을 넘어 최근 서울예대 대자보로 성폭력 가해 혐의가 알려진 황병승 시인도 428번 <육체쇼와 전집>을 출간했다.

송 시인은 “가해 지목자 다수가 문지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이라는 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국문학 권력의 중심에 문지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문지가 가진 그러한 권력, 그 권력에 대한 문단 안팎의 이미지가 여러 문인들이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 피해를 입히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었다. 일부 남성 시인들의 성범죄가 메이저 출판사인 문지의 문단권력에 의지한 ‘갑질’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송 시인은 “문지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개 시인으로서 문지라는 권력에 기대지 않는 것으로 개인적인 작은 행동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 공개문에 대해 누리꾼들은 “성폭력 문제 해결은 주변 사람이 증인이 되어 함께 대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side*****) “이 사태와 관련해 손에 꼽을 만한 명문”(@surl***) 등의 반응을 보였다.

2011년 등단한 송승언 시인은 문지 시인선 464번으로 <철과 오크>를 펴냈으며 서라벌문학상(2015), 22세기시인작품상(2015), 박인환문학상(2016) 등을 받았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바로잡습니다

<인터넷한겨레>가 지난해 10월21일 보도한 ‘박진성 시인, 문학지망생 상습 성추행 의혹’ 제목의 기사와 11월4일 보도한 ‘“성폭력 시인이 낸 시집 번호, 빈칸으로 남겨 치욕 삼으라”’ 제목의 기사와 관련해, 박 시인은 자신이 성추행을 시인한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또, 성폭행 여부는 확인된 바 없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박진성 시인과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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