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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공방도 윤이상 생가터도 지키는 게 소명입니다”

등록 2016-09-21 18:58수정 2016-09-27 16:42

강제철거 맞서 110일 넘게 천막농성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가치 인정
정치권 국정감사 추진 등 ‘압박’에
통영시 최근 ‘새 전수관 이전’ 제안
세계음악도시 총회서 ‘윤이상’ 홍보도
“원형보존하기로 하고 왜 없애려는지?”
통영소반 인간문화재 추용호 장인

추용호 장인이 지난 16일 통영시 도천동 자신의 공방과 오른쪽 윤이상기념관 사이 골목길 안쪽으로 보이는 근린공원이 최근 통영시가 제안한 공예전수관 신축 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추용호 장인이 지난 16일 통영시 도천동 자신의 공방과 오른쪽 윤이상기념관 사이 골목길 안쪽으로 보이는 근린공원이 최근 통영시가 제안한 공예전수관 신축 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방을 지키려는 것은 남들처럼 번듯한 공방을 보상받으려는 게 전혀 아닙니다. 통영 12 공방 가운데 마지막 남은 원형이고, 통영은 물론 온 나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사라지게 할 수 없지요.”

지난 5월30일 통영시의 소방도로 건설 계획에 따른 강제집행으로 폐쇄당한 자신의 도천동 공방 앞에서 ‘나홀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추용호(66·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장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 노숙 생활 110일째, 한가위 황금연휴를 맞아 인근 강구안에 관광객이 넘치는 16일에도 그는 홀로 공방을 지키고 있었다.

연휴 직전인 13일, 통영시는 공방 바로 옆 근린공원에 전통공예 전수관을 새로 신축해 입주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형평성 논란을 고려해 추 장인만이 아니라 지역 장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전수관을 짓겠다는 것이다.

이는 농성 100일째를 넘기며 지역 시민과 예술계는 물론 정치권에서까지 ‘전국적인 공방 살리기 운동’이 퍼지자 뒤늦게 나온 중재안이다. 앞서 9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현장을 방문해 추 장인을 격려하고 통영시와 문화재 당국에 보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공예애호가이자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온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이날 “시가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이 문제를 국감 의제로 채택하고 통영시장을 국감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건물 자체로 근대문화유산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문화재청장까지 찾아와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공방을 그대로 이전 복원한다 해도 못 미더운 노릇인데, 아예 없애고 새로 지어 방 한칸 내주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것도 주민들 편의시설 자리에 짓는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추 장인은 애초 공방의 문화재 등록 추진 의지를 보였던 문화재청과 몇몇 야당 의원들마저 ‘신축 이전 중재안’을 타진하고 있지만 타협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영시와 문화재청은 철거와 농성 사태가 전국으로 알려져 여론의 압력이 높아진 지난 6월 중순, ‘공방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 영구보존하는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윤이상평화재단도 “윤이상 선생 생가터와 추용호 장인 공방을 함께 보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윤이상 선생 기념관인 도천테마파크 터 일부를 편입해 우회도로를 개설하는 데 적극 찬성한다”고 호응했다. 공방과 폭 3m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도천테마파크 터 일부와 골목길을 합쳐 새 도로를 내면 통영시가 추진하는 폭 8m 소방도로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통영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절차 이행을 회피했고, 문화재청 역시 통영시의 협의 거부를 빌미로, 직권으로 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20평 남짓한 공방은 추 장인의 조부가 약 150년 전인 1868년 지을 때 써넣은 상량문을 비롯해 기본 구조와 흙벽 내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자체로 근대문화유산 가치가 충분하다는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특히 나주반·해주반과 더불어 3대 명반으로 꼽히는 통영소반의 인간문화재인 추 장인은 소목 도구인 연장까지 조선시대 그대로 물려받은 유일한 계승자다. 어릴 적부터 선친(추을영)의 어깨너머로 터득한 솜씨에 나전칠기 김봉룡 선생, 옻칠 천상원 선생 등 선친과 함께 활동했던 1세대 인간문화재 어르신들로부터 음양으로 배운 덕분이다.

톱물리개 좁집이 탕개톱 내리거지톱 평대패 혹대패 부판대패 귀돌이대패 가로지기대패 뒷치기 도랭이개탕…, 선친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무려 250개가 넘은 연장들은 안타깝게도 지금 174개 상자에 담겨 전주 국립무형유산원과 통영시 용남면 법원 관할 창고 등에 흩어져 있다.

“이제 곧 찬바람이 불면 노숙하기도 힘들어질 테고, 밀린 주문을 더 미룰 수도 없으니 연장들을 새로 만들어서라도 소목 작업을 다시 시작할 작정입니다.”

추 장인이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 추석 연휴 동안, 마침 통영시장(김동진)을 비롯한 지역대표단은 스웨덴 외스테르순드에서 열린 ‘제10회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연례총회’에 참석해 통영의 전통문화 자산과 윤이상 선생의 유산인 통영국제음악당, 통영국제음악제 등을 널리 알렸다고 일부 언론들이 전했다. 이어 17일(현지시각)에는 오스트리아 린츠 브루크너하우스에서 윤이상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통영전시관 개관 행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영시는 지난해 12월 국내 처음이자 세계 열번째로 유네스코 지정 음악창의도시에 선정됐다. 때문에 통영시가 이처럼 윤이상 선생의 국제적 명성을 대외적으로 활용하면서 그 생가터와 선생 부친(소목장 윤기현)의 유산이기도 한 공방을 한사코 없애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정력 남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년 전 삼수 만에, 아버지가 공방 작업장에서 소반을 만들고 계시는 꿈을 꾼 다음날 인간문화재 인정 전화를 받고, 남몰래 참 많이 울었다”는 추 장인은 “배고픈 소목일을 ‘업’으로는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선친께서 ‘공방을 지키라’는 소명을 남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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