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미슐랭’이 욕쟁이 할머니를 이해할까요?

등록 2016-03-11 19:14수정 2016-03-12 13:0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친기자’에 세 번째 등판하는 음식담당기자 박미향입니다. 지난 10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접전이 펼쳐진 ‘포시즌스호텔 서울’에 갔습니다. 바둑기사도 쓰느냐고요? 아닙니다. <미쉐린 가이드>(미슐랭 가이드) 서울편 출간 관련 기자간담회가 그곳에서 열렸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갔지만 올해 몇 월에 발표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더군요.(2016년 3월10일 온라인 기사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유력한 식당은?’)

<미쉐린 가이드>는 116년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식당 평가서입니다. ‘별’을 받은 셰프는 세계적인 ‘별’이 됩니다. 부와 명예, 돈을 거머쥐게 되죠. 딱히 공신력 있는 식당 평가서가 없는 한국에서 100년 넘는 권위와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의 입성은 결과와 상관없이 셰프들에게는 ‘최고의 핫 이슈’였습니다. 서울에도 별이 뜬단 말인가!

이미 지난해 서울의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 식당을 중심으로 한 외식업계가 요동쳤습니다. 정부가 벌써 계약을 했다더라, 셰프 누구는 그릇과 집기를 다 바꿨다더라, 벤치마킹하러 출국했다더라 등 각종 소문으로 시끄러웠죠. 2000년대 들어 도쿄판을 둘러싸고 상업성이 제기되고, 미국의 유명한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가 편파적이라고 비난했음에도 말이죠.

<미쉐린 가이드>를 바라보는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아마도 별점을 받은 식당은 전세계 식도락가들의 관심 대상이 될 겁니다. 더구나 지금 한식은 세계적인 트렌드입니다. 강남이나 이태원동 등지의 고급 다이닝 식당의 실력 있는 셰프들은 기대감이 큽니다. 그들의 식당은 화려한 외양에 비해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입니다. 식탁의 회전율이 높은 설렁탕집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막상 주판알을 굴려보면 설렁탕집보다 적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파리나 뉴욕, 런던처럼 고급 레스토랑 접대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이들 식당의 맛을 즐기는 층은 매우 얇습니다. 그들은 <미쉐린 가이드>를 계기로 한국도 미식가들이 늘고, 식문화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며 음식관광객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과연 프랑스인 심사위원이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의 냉면과 시장통의 순댓국을 제대로 이해할까요? 욕쟁이 할머니 맛집은요? 욕을 듣고도 헤헤거리면서 밥을 먹는 우리 식문화를 이해할까요? 음식은 이제 문화라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쉐린 가이드>가 가져오는 것은 평가 잣대만이 아니라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식 사고방식, 프랑스 식재료에 대한 호감 등인 거죠. 일본은 도쿄판이 나오고 난 다음 푸아그라(고급 프렌치요리에 쓰는 거위 간)와 와인 판매가 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시선은 지금 우리 현실에 필요한가입니다. 식당 창업자 10명 중 8명이 망하는 게 우리 외식시장의 현실입니다. 돈만 내면 왕이라고 생각하는 진상손님, 위생이나 서비스는 여전히 70년대 수준인 식당 등 우리 식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임대료로 문을 닫아야 하고, 좀 장사가 된다고 하면 대기업 자본이 치고 들어옵니다. 종업원은 낮은 급여와 고된 노동으로 이직을 밥 먹듯 합니다. 프랜차이즈 왕국인 서울은 해결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입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나라, 프랑스는 프랜차이즈가 없는 나라로 유명하죠.

박미향 라이프에디터석 esc팀 기자
박미향 라이프에디터석 esc팀 기자
다시 도쿄판으로 가볼까요? 도쿄판이 나온 2007년도 도쿄는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장인정신을 가진 요리사들의 작은 가게들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도쿄는 <미쉐린 가이드>에 먹히지 않고 잘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로 평가받습니다. 작은 가게들은 별을 통해 살아났고, 일본의 사케, 스시나 가이세키(일본의 고급 연회요리) 문화는 역으로 세계로 퍼졌습니다. 와규(일본의 소고기 품종)도 질 좋은 고급 식재료라는 인식이 열도 밖으로 퍼져갔습니다. 자국 식문화의 기반이 단단했던 거죠. <미쉐린 가이드>의 기준만 쫓기보다는 그 기준을 참고로 독창적인 맛을 창조해낸 겁니다. 제가 경험한 스페인의 <미쉐린 가이드> 스타 요리사들도 비슷했습니다. 우리에게 <미쉐린 가이드>라는 공이 던져졌습니다. 공이 어디로 튈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겠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박미향 라이프에디터석 esc팀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