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에 판정단 초청을 맡기던 <복면가왕>은 1월부터 제작진이 직접 판정단 신청을 받고 있다.
게시판에 매주 수천건 신청 줄이어
눈물나는 사연? 글발? 비법도 난무
‘불후의 명곡’ 당첨 담당자만 4명
“다 읽어봐…사연은 감성적이어야”
장시간 녹화 등 의외로 ‘극한직업’
눈물나는 사연? 글발? 비법도 난무
‘불후의 명곡’ 당첨 담당자만 4명
“다 읽어봐…사연은 감성적이어야”
장시간 녹화 등 의외로 ‘극한직업’
제이(J)씨의 올해 소원 중 하나는 가요 프로그램 판정단 당첨이다. J씨는 어머니가 <불후의 명곡>을 즐겨보는 것을 알고 방청을 신청하기로 했다. 사연을 적어야 했다. 간단하게 남겼다. 결과는 통보 없음. 한번 더 도전을 했다. 이번에는 눈물겹게 쓰려 노력했다. 어머니가 고생했던 과거와 불충한 자신,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결과는 통보없음. J씨는 인터넷에 ‘불후의 명곡 당첨 방법’ 등이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연이 눈물나야 한다는 글도 있고, 감성보다는 지성을 자극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글도 있다. 무조건 ‘글빨’이라는 글에 좌절감도 느꼈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어머니는 이번에는 <복면가왕>을 열심히 보셨다. <복면가왕>판정단에 도전했다. 결과는 또 실패. 사연을 쓰면서 의심스러워졌다. 게시판 신청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이걸 다 읽을까. ‘운’이라는 생각이 들자 프로그램 판정단의 ‘관상’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다 읽는다.” <불후의 명곡>(한국방송) 우수진 작가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명곡 판정단 500명의 인원과 판정단 외 방청석 초대가 400석 가량 된다. 이 두 유형의 자리에 앉기 위한 확률은 10대 1 정도. 매주 녹화마다 올라오는 게시판 사연은 5000~6000건에 이른다. 이 글을 다 읽는다는 것이다. 우 작가를 포함해 4명이 방청객 초청 관련 업무만 담당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첨되는 사연의 비밀은 무엇일까. 우 작가는 “영업비밀”이라면서도 슬쩍 ‘팁’을 흘렸다.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판정단에 참석하고 싶다, 다음달에 해외로 이민을 간다 등 가족이 뭔가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사연이 있으면 초청하려고 해요. 사연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게 좋겠죠. 판정단이 하는 일 자체가 노래를 듣고 좋은 곡을 고르는 감성적 일이니까.”
판정단은 ‘극한 직업’이다. 평일 오후 녹화를 시작해서 밤중에 끝난다. 한 회 분 녹화에 3시간쯤 걸리는데, 특집 방송일 경우 2회분을 녹화한다. “중간에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지만, 실제 판정단 스스로도 자리를 쉬 뜨지 않는다. “어제(29일)도 2회분 녹화였는데 끝까지 나가시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같이 만든다는 자부심들이 있으니까요.”
방송에 사연을 소개하는 것도 아닌데 사연을 일일이 읽고 고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연이 구구절절하신 분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때로 녹화에 앞서 사전엠씨가 판정단과 방청객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의미 있는 사연을 쓴 관객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업체에 판정단 초청을 맡기던 <복면가왕>은 1월부터 제작진이 직접 판정단 신청을 받고 있다. 하루에만 올라오는 신청 글이 1000여건에 이른다. 격주 녹화의 초대객은 99명뿐, 경쟁률은 막계산으로도 140 대 1이다. 민철기 피디 역시 “사연은 다 읽는다”고 했다.
<복면가왕>판정단의 엉덩이는 더 무거워야 한다. 항상 2회분 녹화에, 연예인 패널들의 추리 시간까지 합쳐져 총 녹화 시간은 10~12시간에 이른다. 중간에 식사까지는 아니고 우유나 빵 등을 나눠준다. <불후의 명곡>관객은 마지막 무대 투표를 한 뒤 퇴장한다. 초대손님들은 누가 우승자인지를 모른 채 나가는 것이다. <복면가왕>(문화방송)은 매순간 지뢰밭이다. 중간중간 탈락한 복면가수의 신상이 공개된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서약서를 받는다. 지금까지 <복면가왕>이 스포일러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없다.
J씨가 올해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게시판에는 “될 때까지 신청한다”는 글들이 가득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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