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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눈 내린 산사, 둥치 위 부처

등록 2016-01-12 20:32수정 2016-01-13 09:39

행복사진관
올해는 눈이 귀하네요. 어느 해던가. 그해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도 내렸습니다. 온 산이 흰 눈으로 뒤덮인 날, 산길을 뽀득뽀득 걸어 겨울 산사를 찾았습니다. 눈이 내려도 금방 녹아 추적거리기 마련인 도시의 눈을 보다가 가만히 온통 새하얀 눈 세상을 만나니 그저 좋더군요. 발밑에서 뽀득거리는 눈의 촉감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소리도 마냥 좋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눈이 내리면서 세상의 소음을 먹어버리는 걸 혹시 아세요? 눈이 오면 신기하게도 일상의 소음들이 한꺼풀 잦아듭니다. 산에서는 특히 더 그래요. 눈이 오는 밤, 고요한 밤거리를 내다본 적이 있으신 분은 아마 이해하실 거예요.

그렇게 세상의 소음은 잦아들고 제 발걸음 소리만 들리던 겨울 산사. 스님들은 동안거에 드셨는지 절은 텅 비어 있고 오가는 이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텅 빈 절 마당에서 제가 오로지 만났던 것은 나무둥치 위의 시루떡 두어개와 과자였습니다. 겨울철 먹이가 궁한 산속 동물들을 위한 누군가의 배려였지요. 다람쥐일까. 산새일까. 저걸 물어다가 새끼들을 먹일 어미의 마음은 또 얼마나 포근하고 뿌듯할까요.

겨울바람은 여지없이 차가웠는데 그걸 본 순간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나 아닌 누군가를 한번 더 생각하는 마음, 그게 배려이고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흰 눈이 온 산을 뒤덮었던 그날.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지만 제가 만난 것은 분명 또 하나의 부처였습니다.

글·사진 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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