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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기자의 마음을 훔친 2015 문화계 최고의 순간들

등록 2015-12-30 21:22수정 2016-01-03 15:12

<국제시장>이 1400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시작된 2015년 문화계는 뜨거웠다. 대중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킨 숱한 화제작과 함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흥순 작가의 도전이 결실을 본 해이기도 했다. 비틀스 팬들은 오랫동안 소원했던 폴 매카트니 공연 성사에 행복했다. 영화팬들은 노감독이 만든 전설적인 액션에 연극 팬들은 <조씨고아>라는 단비와도 같은 작품에 전율했다. 2015, 빛났던 작품은 우리의 기억 속에 담겼다. 2015년 문화계 최고의 명장면들을 <한겨레> 기자들이 ‘주관적으로’ 꼽아봤다.

다큐영상작가 임흥순의 순간
다큐영상작가 임흥순의 순간

1. 여성노동자 그린 ‘위로공단’으로 베네치아 은사자상

“은사자상 수상자는 임흥순!”

올해 5월9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한국 미술계를 한껏 달뜨게한 이름이 울려퍼졌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5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시상식에서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은 다큐영상작가 임흥순(46)씨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본상인 은사자상을 받았다. 그동안 35살 이하 젊은 작가들에게 주어졌던 상이란 점에서 그의 수상은 이변이자 파격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임 작가의 출품작은 <위로공단>.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의 소외된 노동 현장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퍼포먼스가 녹아든 시적인 영상 속에 풀어낸 95분짜리 장편영화였다. 해설 없이 여성 노동자들의 육성과 함께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담담하게 비춰보여준 이 작품에서 작가는 “노동과 삶, 일상은 예술과 항상 함께 한다”는 신념을 전했다. 공동체미술과 독립영화를 거쳐 미술과 영화를 넘나들게 된 그의 가시밭길 작업 인생은 국내 청년작가들에게 적잖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 “40여년 봉제공장 ‘시다’로 일한 어머니와 백화점 매장 등에서 일한 여동생에게 영화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는 수상소감 또한 울림이 깊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논버벌 퍼포먼스 그룹 옹알스의 순간
논버벌 퍼포먼스 그룹 옹알스의 순간

2. 개그맨 최초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아기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큰 절을 하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꿈에 그리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마도 그 순간 그들은 마음으로 울고 있었을 거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도 벅찼다. ‘세상을 웃기는 것. 그리고 예술의 전당에 서는 것.’ 말 없이 몸짓으로 웃기는 논버벌 퍼포먼스 그룹 옹알스가 2007년 의기투합할 때부터 품어온 꿈이다.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한국 개그맨이 어떻게 세상을 웃기고, 개그맨이 어떻게 예술의 전당에 선단 말인가.

데뷔 8년 만에 그들은 해냈다. 6월2일~14일 꿈에 그리던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다. 개그맨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그들을 보며 지난 4월 예술의 전당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 옹알스는 “우리 공연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인정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옹알스가 예술의 전당에 선 이후 한국 개그 흐름도 바뀌고 있다. 티브이 프로그램에 올인하던 개그맨들이 공연장으로 무대를 넓혔다. 옹알스는 2014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아시아 최초로 ‘디렉터 초이스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3대 코미디 페스티벌에 연이어 초청되고 있다. 말 없이 세상을 웃긴 그들이 2016년엔 더 빛나길!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순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순간

3.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조성진 신드롬’

청중의 심장마저 쿵쾅대는 그 순간,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의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연주가 시작됐다. 지난 10월18일, 쇼팽 콩쿠르 본선 심사를 통과한 10명의 결선 진출자 중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자리, 조성진이 첫 번째 참가자로 무대에 올랐을 때였다. 그 동안 ‘세계 3대 콩쿠르’(쇼팽·차이콥스키·퀸엘리자베스) 우승은 한국 피아니스트에게는 미답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 조성진은 마치 자신의 개인 연주회 무대에 오른 듯 자신감 넘쳤다. 뒤이어 나올 9명 경쟁자의 연주를 듣기 전부터 확신이 섰다. 조성진은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이탈리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폴란드) 같은 쟁쟁한 거장들과 나란히 역대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엔 ‘조성진 신드롬’이 생겼다. 그의 콩쿠르 연주 실황 음반(도이체그라모폰) 출시 당일 음반매장 앞에 200명 넘는 인파가 줄을 서는 진풍경도 나타났다. 2016년 2월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역시 예매 시작 1시간 만에 전석 매진됐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의 순간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의 순간

4. 빗속에서 끝없이 이어진 ‘헤이 주드~’

지난 5월2일 저녁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이 설레는 공기로 가득찼다. 폴 매카트니 첫 내한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비틀즈가 그려진 티셔츠나 아예 비틀즈 앨범 표지 모습 그대로 분장하고 온 사람들, 노래 가사가 쓰인 팻말을 들고 단체로 고속버스를 타고온 사람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운동장을 가득 채운 4만5000여명 관객들은 우비도 걸치지 않은 채 사전 영상이 상영될 때부터 들썩였다.

50년 만에 이뤄진 폴 매카트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여러 번 찾아왔다. 노래 ‘더 롱 앤 와인딩 로드’가 울려퍼지자 1층 객석에선 갑자기 일제히 1만6000개의 하트가 그려진 손팻말이 올라갔다. 폴 매카트니는 노래를 멈추고 가슴을 움켜쥐며 몇번이고 감동했다는 몸짓을 해보였다. 나중엔 객석을 향해 구애하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리브 앤 렛 다이’에서 폴 매카트니 야외 공연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공연을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팬들이 두고두고 이야기 하는 장면은 폴과 관객이 노래 ‘헤이 주드’ 후렴구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떼창을 이어가던 대목이다.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60대부터 10대까지 연령도 다양한 비틀즈 한국팬들은 이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남은주 기자


영화 ‘매드맥스’의 순간
영화 ‘매드맥스’의 순간

5. 올해의 가장 미친 순간, 올해의 가장 미친 배우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는 불뿜는 기타 굉음과 귀를 때리는 북소리로 먼저 관객들의 혼을 빼놓고 기선 제압하려 든 영화이므로 ‘2015 가장 시끄러웠던 영화’로 명명하고자 한다. 묵직한 인트로 곡 ‘서바이브’부터 세상이 뒤집어질 듯한 ‘렛 뎀 업’까지 마치 한곡의 헤비메탈처럼 이어지는 영화음악은 황폐한 세상을 빠르게 달리는 전혀 다른 액션물이 나왔다는 예고편과도 같았다. 수십분 동안 사막과 협곡, 모래폭풍 한가운데로 관객들을 몰아대며 숨도 못쉬게 한 자동차 추격전은 ‘2015 가장 미친 순간’이라고 해야 한다. 영화를 기억하려 들면 어김없이 눈앞에 잔상처럼 나타나는 ‘빨간 내복 기타리스트’는 올해 최고의 미친 배우였다. 핵 전쟁 이후 자원을 독점한 독재자에 맞서는 여전사 퓨리오사의 전복적 이미지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조지 밀러 감독은 2015년 가장 빛난 감독이다. 그가 처음 <매드맥스> 1편을 만든 때가 1979년. 그뒤엔 주로 애니메이션과 가족영화를 만들다가 <매드맥스> 3번째 시리즈인 이번 영화로 칠순의 나이에 새로운 성취를 이루고 거장 반열에 올랐다. ‘분노의 도로 ’ 성공에 힘입어 밀러 감독은 최근 속편 제작을 위한 각본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남은주 기자


연극 ‘조씨고아’의 순간. 사진 국립극단 제공
연극 ‘조씨고아’의 순간. 사진 국립극단 제공

6. 전석 매진 부른 무대 위 ‘절정의 비극’

시골 의사 ‘정영’(하성광)은 역적으로 몰려 300명이 죽임을 당한 조씨 집안의 유일한 혈육 ‘조씨고아’를 떠맡는다. 이 핏덩이를 살려내는 과정에서, 정영은 모든 것을 잃는다. 자신의 늦둥이 갓난아이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아내는 절명한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각색·연출 고선웅)은 삶의 비극성에 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연극의 막바지, 늙은 정영 앞에 앞서 먼저 죽어간 사람들이 걸어나온다. 비극은 완성됐다. 한바탕 나비의 꿈인가. 무대는 이런 말로 끝난다. “금방이구나, 인생은. 부디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지난달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진 연극은 공연 후반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연극계 전체의 큰 화제를 낳았다. 흔한 복수극일 터인데, 고선웅씨의 뛰어난 연출과 배우 하성광의 빛나는 연기는 ‘연극이란 이런 것’이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연극은 28일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의 하나로 선정됐으며, 고선웅 연출은 지난달 이 연극 등에 힘입어 제1회 ‘올해의 연출가상’을 받았다. 공연 후반부 ‘공손저구’를 연기하던 배우 임홍식(1953~2015)씨가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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