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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긴 건 어색해’…당신도 혹시 스낵컬처 중독?

등록 2015-11-22 20:39수정 2015-11-23 08:28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72초티브이 제작 ‘오구실’ 시리즈, 인스타그램 15초 동영상, 페이스북 ‘스피드 왜건’.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72초티브이 제작 ‘오구실’ 시리즈, 인스타그램 15초 동영상, 페이스북 ‘스피드 왜건’.
‘짧게 더 짧게’ 스낵컬처의 습격
인생은 길어지고 볼거리는 짧아진다. 당신의 눈앞까지 볼거리가 대령한다. 손으로 집어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스낵컬처’라고 부른다. 올해 9월 새로 나온 ‘웹예능’ <신서유기>(나영석 PD)는 회당 짧으면 7~8분, 길어도 20분이 안 넘는 시리즈다. 텔레비전에서 선보였다면 50분이 기본 단위였을 것이다. ‘72초’를 내세운 드라마도 인기다. 이름보다는 길어 실제로는 3분에 가까운 ‘72초 드라마’는 모바일의 주 소비층 2030을 노린 내용과 편집을 선보인다. 음악시장에선 ‘앨범’이 희귀본이 되어간다. 점점 짧아지고 있는 ‘스낵컬처’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모바일에서의 콘텐츠 소비 늘며
짧은 형태의 ‘스낵컬처’ 큰 성장
72초 드라마 등장…29초 영화도
웹예능 ‘신서유기’ 실험 성공
본방사수 대신 하이라이트 영상
음반도 ‘앨범 대 싱글’ 비율 역전

■ 앨범 대신 ‘디싱’ 빅뱅은 8월부터 한 달마다 (M) (A) (D) (E)를 출시했다. 각 싱글에는 두 곡씩이 담겨 있다. (M)(8월)의 ‘루저’, (E)(11월)의 ‘쩔어’,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는 각각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의 ‘베베’는 2위까지 올랐다. 8곡이 발표된 앨범이었다면 8월에 1위를 한 뒤 11월에 1위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달간 1위에 오른 곡 수는 평균 16.75곡으로 ‘이틀천하’에 불과하다.(kt뮤직 음원사이트 지니 자료)

한 달마다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일은 2010년 시작된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익숙한 일이 되었다. 유세윤은 올초 <월세 유세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5장의 싱글을 내기도 했다. 근래의 특이점이라면 싱글이나 미니앨범(EP)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100위 곡에서 정규앨범 대 싱글과 디지털 싱글이 차지하는 비율은 49:41인데 비해 올해 10월은 20:80의 비율이다.(음원사이트 멜론 자료)

“시디(CD)는 어디서 사면 되나요?” 또래를 위한 디지털 싱글을 꾸준히 내고 있는 양희은에게 팬들이 자주 묻는 말이라고 한다. 디지털 싱글은 물리적 형태가 없다. 음반 제작비가 들지 않으므로 인디 뮤지션들에게도 음원 시장 중심의 재편이 불리하지만은 않다. 올해 인디음악계 폭풍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혁오밴드는 미니앨범 두 장을 내고 활동을 하고 있다. 정규앨범을 낼 수 없다기보다는 안 내는 편에 가깝다. 앨범은 아이돌들이 사진집이나 만듦새로 팬들에게 소구하는 전략상품이 되어간다.

앨범을 낼 때도 싱글 방식의 전략을 갖고 오고 있다. 신승훈은 (I AM...& I AM)을 앨범으로 내면서 음원 공개는 두 차례로 나눴다. “12곡 모두가 자식 같은데 시장에 나오고 나면 1, 2곡만 주목받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선을 끌기 위한 전략이라고 신승훈 쪽은 밝혔다. 7년 만에 귀환하는 못(MOT)은 10월14일 ‘먹구름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를 발표한 뒤 11월17일 ‘트라이비아’(Trivia)를 발표했다. 내년 1월 정규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한 달에 한 번씩 싱글을 발표하고 있다.

■ 뉴스는 스피드웨건, 인스타그램은 15초 열풍 10여년 전 긴 기사의 맨 끝에서 “기사 다 읽고 온 사람 손 들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제목만 보고 댓글 다시는 분들 많네요”라는 댓글은 낯설지 않다. 이런 소비자를 위해 등장한 것이 ‘카드뉴스’다. 신문의 인터넷 뉴스팀은 카드뉴스에 골몰하고 있고 카드뉴스를 주로 하는 스브스뉴스(에스비에스)가 2월 시작됐다. 정보 나열형에서 ‘반전’을 감춘 스토리형으로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카드뉴스마저도 길다. 페이스북의 ‘스피드웨건’은 그날 있었던 일을 하루에 두 번 13~14개의 ‘핫토픽’으로 요약해 카드 한 장에 담아 보여준다. 인스타그램에선 ‘15초 뉴스’가 나왔다(2013년). 사진 중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은 비디오 공유를 허용하면서 길이를 15초로 제한했다. <비비시>(BBC) 뉴스의 ‘인스팩트’나 <시엔엔>(CNN) ‘앤더슨 쿠퍼쇼’ 등에서는 인스타그램에 15초 뉴스를 내보낸다. 주로 음식 관련 컨텐츠가 모여 먹스타그램으로 불리던 인스타그램에선 이제 해쉬태그를 이용한 온갖 15초들이 유행이다. #15secondlessons(강의), #15secondsong(노래), #15sec_live 등등. 인스타그램은 10월 1초짜리 ‘움짤’을 만들 수 있는 앱 ‘부메랑’을 출시했다. 앱 ‘비데오’의 자매품 ‘카메오’ 앱은 6초씩 영상을 끊어찍을 수 있다.

■ 초치기…72초, 29초, 59초 올초 나온 ‘72초 드라마’는 불가능할 듯한 드라마다. 이름과는 달리 주로 3분 내외의 영상이다. 프랑스의 초압축드라마 ‘브레프’를 본떠서 만든 이 드라마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빠른 화면전환과 메시지 등을 활용한 신선한 그래픽에 담았다. 짧다 보니 주제를 잘 표현할 에피소드를 담는 게 특징이다. 오랫동안 연애 못한 오구실이 주인공인 ‘오구실’ 시리즈(같은 ‘72초티비’ 제작)는 연애가 시작되는 묘한 순간을 포착해 보여준다. ‘남자 사람 친구’와 음식점에 가서 덮밥과 우동 중 뭘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오구실은 덮밥을, 친구는 우동을 선택하자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식이다. 짧막한 에피소드 하나로 드라마 1편을 채운다. 이런 3분짜리 드라마를 보려면 2분짜리 광고를 보아야 한다. 이 광고들도 ‘15초 후에 건너뛸 수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눈을 잡아끄는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하이트 맥주의 ‘혼맥 시리즈’(혼자 먹는 맥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카카오티브이는 59초 드라마와 39초 리뷰를 자체 생산한다. 59초 드라마는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해 짝사랑을 끝내고 연애하게 된 사연을 감각적으로 연출한 광고다.

2011년 시작한 박카스 영화제의 이름은 ‘29초 영화제’다. 올해는 서울시와 함께 서울을 담은 29초 영화를 모집하고 있다(12월8일까지). ‘29초 영화제’는 경찰, 법무부, 강원도까지 정부에서 동영상 모집할 때의 ‘아이콘’이다. 29초 영화제의 모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30초도 짧다”이다.

포털은 스마트미디어렙(SMR)을 통해 공중파·지상파 8개 방송사의 영상을 공급받는다. 이 영상들은 ‘류혜영, 혜리에 ‘돌대가리’ 독설 작렬’ ‘혜리, 천재 박보검과의 1대1 과외(?)’(<응답하라 1988>의 경우) 등의 제목을 달고 한 회 1~3분 내외로 편집되어 방송된다. 이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도 전편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는 충분하다. 본방사수 하지 못한 사람에게 유용하다. ‘무한도전 혁오’ 등의 검색 기능을 활용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서 볼 수 있어 반복 시청자도 ‘애정’한다. <한국방송> 쪽은 “처음에는 본편 길이와 똑같이 제공하다가 모바일에 맞게 자르게 되었다. 2~3분이 적당한 길이더라. 이 길이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잘게 조각낸다는 비판도 있다.

72초는 에이아르에스(ARS)에서 고객이 화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대기시간, 29초는 최소한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계속 짧아질까 짧아지는 콘텐츠의 원인은 명확하다. “모든 콘텐츠를 모바일로 소비하고 있다. 페북과 인스타그램의 동영상은 아래로 스크롤하면 자동 재생된다. 재생이 원활하려면 동영상 데이타의 양이 적어야 한다. 소비자의 소비 패턴도 큰 영향을 미친다. 버스 타고 출퇴근 할 때 주로 동영상을 감상한다. 집중력을 요하는 긴 영상은 이럴 때 적합하지 않다.”(홍진아, <모바일 트렌드 2016> 공동 집필자)

‘짧은 영상’은 과도기의 것일지도 모른다. <모바일 트렌드 2016>에 따르면 2015년 휴대전화 시장에서 데이터 소비를 촉진한 계기가 동영상이다. 한계에 달한 휴대폰 사업에서 동영상은 ‘먹거리’ 사업이다. 스트리밍 속도를 높이고 카메라의 하드웨어를 향상시키는 것이 휴대폰의 진화 방향이다. 긴 영상을 모바일로 소화해낼 잠재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길든 짧든 대부분의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내 손안의 텔레비전’ 시대는 이미 개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서유기>를 두고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신서유기> 각 회 조회수는 길이와 상관없다. 20분짜리든 8분짜리든 비슷비슷하다. 네이버 홍보팀에서는 “올해 라이브를 통한 긴 영상과, 짧은 동영상 전체 감상 시간을 비교할 때 라이브 감상 시간이 더 길다. 반드시 짧은 영상 소구가 모바일에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짧게 더 짧게’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일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얘기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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