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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선비의 기품 뽐내는 합죽선에 박쥐를 그려넣은 까닭은?

등록 2015-08-11 22:52수정 2015-08-12 13:54

여름 더위를 나는 생활 필수품이었던 부채는 14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까다로운 공예품이다. 선자장 김동식 장인이 전주에 있는 공방에서 합죽선의 부챗살을 다듬고 있다. 그는 “좋은 부채는 모양이 좋아야 할 뿐 아니라, 편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름 더위를 나는 생활 필수품이었던 부채는 14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까다로운 공예품이다. 선자장 김동식 장인이 전주에 있는 공방에서 합죽선의 부챗살을 다듬고 있다. 그는 “좋은 부채는 모양이 좋아야 할 뿐 아니라, 편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선자장 김동식씨
박쥐다. 자세히 보니 단순화시킨 박쥐 문양이다. 합죽선의 40개 대나무 부챗살 아래쪽에 하나하나 인두로 곱게 새긴 문양이 박쥐라니?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 부채는 여름을 나는 생활필수품이었다. 누구나 부채를 손에 들고 다녔다. ‘부채’라는 이름도 바람을 ‘부쳐서 만들다’에서 ‘부’자와, 대나무나 도구를 이야기하는 ‘채’를 붙여 만든 말이다. 특히 양반들은 둥근 부채보다, 접다가 폈다가 하는 합죽선을 사랑했다. ‘스스르~ 쫙’ 소리와 함께 폼나게 펴서 수염이 날리게 합죽선을 부치다가, 순식간에 접어 도포 자락에 집어넣는 신공을 필수적으로 지녔다. 부채의 종이에 각종 그림을 그려넣어 휴대용 화첩의 구실도 했고, 등이 가려울 때는 효자손이 되기도 했다. 위급할 때는 무기로도 쓰였고, 버릇없는 손주의 머리에 일침을 가하는 회초리도 됐다. 박쥐 문양도 합죽선의 다양한 기능에 답이 있다. 한밤중 남녀가 은밀히 만날 때 얼굴을 가리는 데 부채가 필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행성 동물인 박쥐가 합죽선에 등장한 것이다.

부채 장인촌 전주 가재미마을서
8남매 맏이 초등학교 겨우 마치고
고종 진상품 만든 외갓집 대물림

선풍기에 밀려 농한기 부업으로
합죽선 140번 공정 혼자서 체계화
지난달 ‘선자장 1호’ 인정받아

김동식 장인이 만든 각종 합죽선들.
김동식 장인이 만든 각종 합죽선들.
중요무형문화재 128호 선자장(扇子匠) 김동식(72·사진) 장인이 합죽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였다.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목공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힘들고 적성에도 안 맞았다. 마침 김씨가 태어난 전북 전주시 인후동 가재미마을은 부채 장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마을로 1960년대까지 30호 정도의 가구가 모여 부채를 생산했다. 대나무도 많았고,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도 있었다. 그런 부채를 전문으로 만드는 집안 가운데 김씨의 외갓집이 있었다. 외증조부(라경옥)부터 합죽선을 가업으로 이어왔는데, 외조부인 라학천은 고종 임금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빼어난 솜씨를 갖고 있었다. 또 외숙부와 외숙모들도 합죽선 제작의 장인들이었다. 어린 그는 도시락을 싸 외갓집으로 다니며 부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당시에는 부채 한개가 쌀 한말 값이었어요. 부녀자 일당이 1000원 하던 시절에 부채 한개가 900원 했으니 배울 만한 셈이죠.”

8년을 열심히 배웠다. 처음엔 허드렛일만 했고, 연장엔 손도 못 댔다. 어깨너머로 따라 하기 시작했고, 손재주가 있었는지 대나무를 예쁘게 힘도 안 들이고 깎자 외삼촌들이 칭찬해줬다.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부채 만드는 일에 몰두했지만, 이미 선풍기 등 현대 문물이 생활에 파고들며 부채 수요는 크게 줄었다. 부업으로만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살다가 10월께부터 다음해 하지 전까지 부채를 만들었다. 여름엔 습기 때문에 접착제로 쓰는 민어 부레풀이 제구실을 못했고, 부챗살이 삐뚤어질 수 있어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합죽선이 완성되기까지는 140~150번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먼저 대나무를 잘라서 합죽선의 속살이 될 대나무를 껍질만 남기고 1㎜ 두께로 깎아내는 ‘기죽’ 작업과, 0.35㎜ 두께로 부채의 목과 꼬리 부분을 깎아내는 ‘초조’ 작업을 한다. 대나무는 양잿물로 삶아 때와 진을 없애야 한다. 민어의 부레를 삶아 고아서 만든 전통 부레풀로 붙여 부채의 형태를 완전하게 만들어 말린다. 부채의 골격이 만들어지면 불에 달군 쇠붙이로 대나무에 무늬를 새겨넣는다. 그다음 속살과 대껍질을 매끄럽게 다듬고 광을 낸 다음 한지 종이를 붙인다. 마지막으로 백동, 황동, 은 등의 금속 장식으로 고리를 만들어 부채의 머리를 고정시키면 비로소 한개의 합죽선이 만들어진다.

선비들은 합죽선 종이에 그림과 시구를 넣어 풍류를 자랑했다.
선비들은 합죽선 종이에 그림과 시구를 넣어 풍류를 자랑했다.
과거에는 이 과정을 6개로 나눠 분업을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작업을 다 한다. 그러니 그의 뭉뚝한 손에는 상처가 그칠 날이 없다.

부채 만들기 4대를 잇는 김씨는 합죽선을 문화재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3년간 문화재 지정을 위해 기록을 정리하고, 합죽선 만드는 과정을 체계화해 마침내 지난달 문화재청으로부터 선자장 1호로 지명됐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배워 이제 60년 가까이 만들어온 합죽선의 진실한 기술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아들 대성(40)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챗살을 빚고 있다.

전주/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선자장이란

정교·세련미 갖춘 합죽선 공예 ‘여름 생색은 부채, 겨울엔 달력’

부채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갖가지 도구들.
부채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갖가지 도구들.
선자장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이다. 우리의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둥글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그중 접부채인 합죽선(合竹扇)은 현재까지 전승되는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세련미를 갖춘 부채로서, 고려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공예 등과 접목되어 나라를 대표하는 공예품이었다. 부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공작 깃으로 만든 둥근 부채인 공작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합죽선은 대나무 겉대와 속대를 어교와 아교로 붙여 만든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에 매년 100자루 이상이 공물로 전해졌다고 한다. 대나무의 주산지인 전남 담양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접부채는 가벼운 소나무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대나무로 교체됐다. 조선시대의 합죽선은 단옷날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했고, 전라도와 경상도에 선자청을 두어 국가에서 부채를 제조, 관리했다. 민간에서는 ‘여름 생색에는 부채가 최고요, 겨울 생색에는 달력이라’라는 말이 생겼다.

왕실에 진상하던 대나무 살이 50개인 ‘50살 백첩선’과 한지에 옻칠을 하는 황칠선과 옻칠선, 한지와 부채만의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선 등 다양한 합죽선이 있다.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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