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에 대한 해명이 비판을 불러오자 18일 창비가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은 2011년 8월 1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귀국해 소감을 말하는 신 작가의 모습. 연합뉴스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가 신경숙을 옹호하는 보도자료를 내어 물의를 일으켰던 출판사 창비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창비는 18일 저녁 강일우 대표이사 명의로 발표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글은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앞선 보도자료에) 담아야 했다”며 “이로써 창비를 아껴 주시는 많은 독자들께 실망을 드렸고 분노를 샀다”고 적었다. 성명은 이어 “한국문학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출판사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지 못한 점은 어떤 사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현재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작가와 논의를 거쳐 독자들의 걱정과 의문을 풀어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등) 필요한 후속조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신경숙 단편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을 표절했다는 작가 이응준의 주장에 대해 ‘창비 문학출판부’는 17일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표절 논란에는) 대응하지 않겠다”는 신경숙의 입장을 대신 전하는 한편, “표절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했다.
발표 직후 창비 게시판에는 작가와 출판사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독자들은 “이 말을 하고 싶어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작가 신경숙에 대한 실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비호하는 창비의 태도에 가슴 깊은 실망과 비애를 느낍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창비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졌습니다” “창비가 아니라 창피” 같은 말로 실망과 분노를 표현했다. ‘창비직원Z’라는 아이디를 쓴 누리꾼은 17일 트위터 글을 통해 “회사의 입장이 너무 부끄럽다. 하루빨리 회사가 입장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성명은 이런 부정적 여론에 떠밀려 나온 것이지만 앞선 보도자료에서 보인 ‘문학권력’으로서 면모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개선할지, 무엇보다 ‘전설’ 표절 시비에 대해 작가와 출판사가 어떤 진정성을 보일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번 표절 논란은 주요 출판 자본들이 성역을 만들어 놓고 그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던 그동안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작가 신경숙은 거꾸로 그런 문학·출판 권력이 만든 희생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연합뉴스>는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전설’은 명백히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한 문학평론가 정문순의 글이 이미 실렸었다고 전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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