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인 유창 씨.
명창 묵계월 선생 계승자 유창씨
그 옛날 할머니는 손주를 품에 안고 낮게 읖조렸다. 은근한 석유 등잔의 불빛 아래 방안을 가득 메우던 할머니의 중얼거림은 잠을 보채던 손주를 곧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가 있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홍길동전> <사씨남정기>의 구슬픈 이야기는 할머니의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맑게, 때로는 구슬프게 읊어대던 그 소리는 경기잡가 가운데 ‘족보있는 소리’였다. 바로 <삼설기>였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전통 소리 ‘삼설기의 대가’는 지난해 별세한 명창 묵계월이었다. 그런데 그를 계승한 이는 여자가 아닌 남자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인 유창(56)씨다. 남성다운 성량과 기교, 그리고 독특한 창법을 개발한 소리꾼인 유씨는 묵계월로 부터 “타고난 소리꾼인데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려 애쓴다”며 칭찬을 받았다.
‘송서’(誦書)는 산문으로 된 고전을, ‘율창’(律唱)은 오언율시나 칠언율시의 한시를 노래조로 읊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책을 보며 읽는 것이 아니라 모두 외워서 해야 한다. 송서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때 ‘배강’(背講)이란 과목으로 채택됐다. 시험장에서 책을 앞에 놓고 수험생은 뒤돌아 앉아 책 내용을 줄줄 외워야 했다. 성균관과 향교, 서원, 서당 등 모든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시했다. 위로는 임금과 세자부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글을 읽고 외었고, 입신출세를 마음에 둔 선비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리내어 글을 읽고 외웠다.
유씨는 선비들이 그렇게 긴 글이나 시를 줄줄이 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송서의 비결’ 덕분이라고 말한다. “곡조를 붙여서 외우는 겁니다.”
“송서율창은 문장이나 시에 세련된 율격을 넣어 멋과 맛을 살리는 낭독의 예술입니다. 예로부터 아기 울음 소리, 다듬이 소리와 함께 책 읽는 소리는 삼희성(三喜聲), 즉 세 가지의 듣기 좋은 소리였습니다. 글 뜻은 몰라도 소리를 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까닭입니다.”
유씨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지만 시조를 자주 읊었다. 어릴 때부터 그는 아버지의 구성진 창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한 그는 박태여·황용주·이은주로부터 경기소리를 배웠고, 묵계월로부터 삼설기와 12잡가를 전수받았다. 1998년 전주대사습 민요부문 장원을 차지하며 명창에 오른 그는 송서율창의 대중화를 위해 서울 종묘 옆 송서율창보존회 전수관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 중년의 남녀 30여명이 그를 따라 창을 힘차게 뽑는다.
유씨는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내니 건강에도 좋다”며 “선비들이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앉아서 공부할 수 있었던 비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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