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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설문대할망 같은 수많은 설화는 제주문화의 보고죠”

등록 2015-06-03 19:19수정 2015-06-03 21:10

백운철 단장
백운철 단장
[짬] 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 백운철 단장
“한라산 영실 분화구에 있는 오백장군(오백나한)은 실은 499명입니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은 마지막 차례로 죽을 뜨려다 어머니의 몸인 줄 알고 먹지 않은 채 홀로 떠나 바위섬 차귀도가 됐으니까요. 제주돌문화공원은 ‘9’(아홉)라는 숫자와 여러가지로 인연이 많습니다. 1999년 1월19일 북제주군과 협약을 맺었고 옛주소도 조천읍 교래리 119번지죠. 그래서 설문대할망제의 제관도 9명으로 정한 겁니다.”

지난 5월 내내 제주돌문화공원 일대에서 펼쳐진 ‘제9회 설문대할망제’를 총괄기획한 백운철(71·사진) 단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제주문화의 지킴이’다.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대모’ 이효재 선생이 특별제관을 맡아 화제를 모은 이번 축제는 25가지의 다채롭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 성황을 이뤘다. 올해 처음으로 한달간 무료 개방까지 하면서 예년보다 50% 이상 증가한 5만3천여명이 참여했다.

“제주도 탄생 설화인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통해 제주문화의 원형을 되살리고, 왜 이 땅을 지켜야만 하는지 공감대를 넓힌다는 축제의 취지에 따라 공원을 개방했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1978년부터 혼자서 설문대할망제를 지내온 백 단장은 남다른 감회와 더불어 독특한 내력을 들려줬다.

나무·돌멩이 모으다 문화지킴이로
1971년 탐라목석원 열어 ‘관광명소’
1999년 북제주군과 협약 2만점 기증

20대때 ‘무병’ 계기 홀로 설문대할망제
2005년부터 제주도 공식 문화행사로
“세계 유일한 돌문화공원 30년 대역사”

제주 출신인 그는 서울예전에서 연극 연출을 전공하다 입대했다. 1969년대 말 제대 전 마지막 휴가를 나온 그는 우연히 만난 대학 동기로부터 제주지역 극단을 만드는데 창단 작품 희곡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왕이면 제주의 토속신화를 소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는 민속학자인 제주대 김영돈 교수(작고)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그때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를 처음 듣고 무릎을 쳤지요.” 하지만 무대 설치가 어려워 작품 공연은 포기해야 했고 이야기도 곧 잊혔다.

군 시절 설악산에서 화목병으로 복무하며 나무 조각 수집 재미에 빠진 그는 제대한 뒤에도 제주 특산 고사목 등을 찾아다니다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는 아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어느 날 한라산 영실로 올라가 ‘굿’을 지냈다. “어쩌면 무병 같은 거였는지, 신통하게도 몸이 회복됐어요. 그런데 그때 불현듯 설문대할망께서 나를 살려주신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1971년 1천점의 고사목과 희귀한 돌들을 모아 탐라목석원을 개원한 그는 오백장군 위령탑을 하나둘 쌓기 시작했다. 공간이 모자라 100개밖에 세울 수 없자 섬 구석구석에 위령탑 쌓기 운동을 벌여 마라도까지 500여개를 채웠다. 78년부터는 ‘오백 아들이 어머니의 희생을 알고 흘린 피눈물이 철쭉으로 피어난다’는 설화에 맞춰 그는 5월15일 철쭉 개화기를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위한 위령제일로 정해놓고 제사를 올렸다. 그사이 목석원은 프랑스의 유명 건축잡지에 아시아의 대표적 정원으로 인정받고, 제주의 돌문화를 기록한 그의 사진은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국제적인 상을 받기도 했다. 80~90년대 목석원은 해마다 120만명이 찾아오는 제주의 필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혼자 그러기를 20여년, 할망께서 그 정성을 갸륵하게 여긴 듯 내 뜻을 알아주는 ‘귀인’이 나타났어요.” 그 귀인은 99년 당시 ‘문화군수’로 정평이 났던 북제주군수 신철주(2005년 작고)씨였다. 그는 평생 모은 수백 수천억 가치의 자연석과 민속품 등 목석원의 소장품을 기증할 테니 군에서 30만평의 터를 제공해 세계적인 돌문화공원을 짓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신 군수는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줄 문화의 터전을 지으려면 100만평은 있어야 한다”며 흔쾌히 용단을 내려 ‘협약’을 맺었다.

“2020년까지 2천억(1850여억원) 가까운 거액을 들이는 대역사가 그렇게 시작됐어요. 믿기지 않은 순간이었지요.”

소규모 군단위 지자체에서 주도하기엔 벅찬 예산이어서 진행은 더뎠지만 2005년 마침내 제주돌문화공원은 착공했고 이듬해 1차 개관을 할 수 있었다. 설문대할망제도 2005년부터 제주도에서 지원하는 공식 문화행사로 탈바꿈을 했다.

그는 2009년까지 2만여점의 문화자산을 제주도에 무상으로 기증하고 탐라목석원은 아예 정리를 한 뒤 돌문화공원 2단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자연석은 물론이고 돌조각품, 돌민속품 등 ‘제주 돌의 모든 것’을 보여줄 이곳은 단순한 돌전시장이 아니라 돌미술관이자 돌문화박물관이다.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질학적 돌전시장은 있지만 돌과 문화예술, 민속과 역사까지 아우르는 개념의 문화공원은 없다.”

특히 설문대할망 박물관은 그가 30년 전부터 구상한 것으로 옥상과 옥내에 조응하듯 자리잡은 400평짜리 2개의 연못이 인상적이다.

“제주의 각종 설화에는 설문대할망을 비롯해 무려 1만8천명의 신이 등장한다지요. 설문대할망의 모습과 정신을 돌문화공원에 투영했듯이 제주 설화들의 문화적, 예술적 승화가 끊임없이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제주돌문화공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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