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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녀 “예순다섯살, 지금이 내 인생의 전성시대랍니다”

등록 2015-04-27 19:05수정 2015-04-28 10:17

배우 김성녀 씨.
배우 김성녀 씨.
[짬] 자서전 ‘벽 속의 요정’ 펴낸 배우 김성녀 씨
무대는 나를 남에게 보여줘야 하는 공간이다. 밝은 조명 아래 그대로 벗겨진다. 그래서 긴장되고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그에겐 무대가 너무 편했다. “난 뼛속 깊이 무대 체질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무대를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다. 아장아장 걸음을 걸을 때부터 무대는 놀이터였다. 다섯살 때부터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들뜨고 어수선한 분위기, 북적거리는 관객들 사이로 피어오르는 뽀얀 먼지, 무대 위 배우들의 열정적 연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무대를 감싸는 터질 것 같은 흥분….” 그에겐 그것이 일상이었다. 배우들의 무대의상을 담아둔 바구니가 요람이었다. 자다가 누군가 깨우면 바로 무대에 올랐다. 잠을 깨지 않으면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입에 얹어졌다. 혓바닥 위의 차가운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60년간 무대를 떠나지 않은 배우 김성녀(65·사진)씨는 스스로 생각해도 여러가지 직업을 거쳤다.

부친 국극 작가·모친은 여성국극 스타
‘예인의 끼’ 타고난 뼛속까지 무대체질
의상바구니에서 자며 5살 때부터 연기

연극 ‘한네의 승천’ 흥행하며 배우 인정
남편 손진책 만나 마당놀이 30년 활약
“늘 도전하고 개척해온 삶 자랑스러워”

연극과 창극, 마당놀이, 영화와 드라마, 가수까지 그가 지난 60년간 끼를 마음껏 뿜어내며 살아온 삶은 다양하다. 그는 유전자 탓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국극의 작가이자 연출가였고, 어머니는 1950~60년대 여성 국극의 최고 스타였다. 말이 국극이지 유랑극단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다. 한겨울 큰 천막 안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 김치죽을 끓여 먹었다. 가난했지만 따뜻한 정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 박옥진은 열두살 때부터 창극단에 들어가 예인의 삶을 살았다. 인간문화재 김연수에게 판소리를, 이매방에게 춤을 배우며 여성 국극의 최고에 올랐다. 아버지 김향은 한량이었다. 평생 바람을 피웠으면서도 ‘다른 곳에서 자식을 낳지는 않았다’며 당당했다. 아버지는 국극을 해서 번 돈을 영화 <대춘향전>에 모두 투자했다가 흥행에 참패했고,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6남매의 학비와 살림은 어머니의 몫이 됐다.

그러다 어머니마저 병으로 쓰러지자, 큰딸인 그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서울 삼양동 산꼭대기 집에서 살았다. 대학 진학은 사치였다. 가수로 나섰다. 돈 벌기 위해서였다. 동생과 ‘비둘기 시스터즈’를 만들어 음반도 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웃으며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일은 행복하지 않았다. 2년 만에 가수를 접었다. 가야금과 창을 인간문화재 박귀희에게 배웠다.

그런데 운명의 바늘은 그를 연극판으로 잡아끌었다. 연출가 손진책씨는 “오디션도 필요없어요. 이 배역을 맡아주세요”라며 그에게 자신의 입문작인 <한네의 승천> 대본을 건넸다. 사랑의 슬픔을 몽환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한국 전통 제례와 연희 양식을 녹여낸 음악극인 ‘한네의 승천’은 흥행에 성공하며 배우 김성녀의 이름을 한번에 각인시켰다. 손씨와 결혼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방송국 분장실에서 함께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분에게 커피를 뽑아드리려고 지갑을 열다가 동전이 쏟아졌어요. 누군가 ‘어머, 구멍 뚫린 동전이 있네’ 하며 신기해했어요. 그는 버스 토큰을 처음 본 거였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쉼없는 공연에 지쳐 스테로이드 주사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무대예술은 관객과의 약속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대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배우로 나선 김씨는 <에비타>의 주인공 ‘에바 페론’ 역을 맡았으나 당시 군사독재 정권은 사흘 만에 강제로 막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 뒤 마당놀이는 새로운 시도였다. 무대를 객석의 한가운데에 만들었다. <허생전> <심청전> 같은 옛날이야기를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각색했다. 배우들끼리 대사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향해 말을 걸어 배우와 관객이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생생한 생명력이 넘치는 공연이었다.

30년간 한결같이 손씨가 연출을 맡았고, 그는 배우 윤문식·김종엽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군사독재시대 마당놀이는 해학과 저항의 출구였다. 한때 관객 절반이 대학생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그대로 데모하러 가곤 했다. “가장 한국적인 무대를 만들었어요. 우리만의 독특한 연극 형태죠. 내 생애 가장 보람있는 것이 바로 마당놀이를 만들어 정착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2010년 김씨는 마당놀이를 접었다. “관객에게 고독한 배우의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아 정통 창극의 부활에 전념했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새롭게 재해석했고, 세계 명작을 우리의 정서와 감각에 맞는 창극으로 만들었어요.” 그가 처음 기획한 창극 <장화홍련>은 창극 사상 처음 전석이 매진되며 변방에서 벗어나 공연예술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35살에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그는 지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지금이 자신의 전성시대라고 말한다. “여배우는 일찍 사라지기 마련이죠. 전 동기생들에 비해 모든 것이 늦었어요. 비록 늦지만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노력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그는 최근 자서전 <벽 속의 요정>(문학세계사)을 펴냈다. ‘끊임없는 도전의 기록’이었던 자신의 삶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한다.

“혀가 꼬부라져 발음이 흐려지고, 힘이 없어 무대에 오래 서 있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배우이고 싶어요. 관객이 한사람밖에 없더라도 기꺼이 무대에 서고 싶어요. 배우이니까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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