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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행복한 ‘존자님’ 가까이서 지켜본 18년 ‘큰행운’이었죠”

등록 2015-04-23 19:02수정 2015-04-23 21:00

사진작가 이영자
사진작가 이영자
[짬] ‘달라이 라마’ 어록 사진집 첫 출간 사진작가 이영자 씨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고지대에 자리잡은 다람살라는 티베트 독립 운동의 본거지다. 티베트에서 불과 100㎞ 떨어진 이곳에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다. 한때 휴양지로 유명했으나 지진으로 황폐해진 곳이다. 1959년 중국을 피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온 달라이 라마 등 망명 티베트인들에게 인도가 정착을 허가한 땅이다. 그로부터 세계 각지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불교신도들이 몰려온다. 환생한 부처로 추앙받고 있는 달라이 라마가 대중설법을 할 때는 카메라나 전화기는 지닐 수 없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 달라이 라마를 지난 18년간 유일하게 가까이에서 찍어온 이가 있다. 그의 렌즈는 장난기 넘치는 달라이 라마, 하품하는 달라이 라마도 놓치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 여성 사진작가 이영자(57)씨다. 무슨 특별한 인연일까? 그는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1997년 티베트불교 배우려 다람살라로
버스서 우연히 달라이 라마 ‘비서’ 만나
근접촬영 허가받아 수행하듯 기록

“렌즈 다가가면 천진한 아이처럼 장난”
‘청중 울리고 웃기는 설법’에 늘 감동 느껴
‘항상 행복에 머무르고 있다’ 어록 소개

“그가 신은 신발은 불과 150루피(약 2700원) 정도 하는 슬리퍼입니다. 그가 하는 법문은 어렵고 고상한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쉽고 직설적이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가 가장 감명받은 달라이 라마의 설교는 “제게 종교는 단순합니다. 그것은 바로 친절입니다”였다고 한다. 또 “나는 불교 수행을 하고 있는 한낱 수행승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나의 영적 사명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친절과 형제애, 그리고 진실한 연민의 중요성을 널리 전하는 일입니다”라 했던 설교도 그가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가 마흔을 코앞에 둔 97년 다람살라에 간 이유는 불교를 더 깊게 알기 위해서였다. 부모가 모두 불교신자였던 그는 13살 때부터 ‘물방울이 터지듯 불교의 가르침이 다가왔다’고 한다. 일본 유학을 가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인도 델리대학원에서 티베트불교를 전공했으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다람살라로 향했다. “그때는 달라이 라마의 존재를 몰랐어요. 오직 티베트불교를 알기 위해서 갔어요.”

행운의 시작은 우연한 만남이었다. 버스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12시간 타고 가는 동안 그는 한 스님을 만났다. 차멀미에 시달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던 스님과 인사를 나눴다. 버스가 다람살라에 도착하자 그 스님은 먼저 내려 기다리고 있다가 안내를 자처했다. 그는 바로 달라이 라마의 비서였다. 그가 사원에서 가까운 숙소를 소개해주었고, 불교 공부를 위한 과정도 주선해줬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를 근접촬영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었다.

20대부터 사진을 찍어온 이씨는 그때까지 7번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연 중견 사진작가였다. 그에게 사진은 불교 수행의 한 도구였다.

“아마도 존자님(달라이 라마)은 세계에서 가장 불경을 빨리 읽을 겁니다. 설교 시간에 가르치는 경전을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읽어요. 읽다가 ‘자비’나 ‘보시’ 같은 단어가 나오면 티베트에서 탄압받고 있는 이웃이 생각나시는지 2~3분 동안 펑펑 우십니다. 그러다가 금방 활짝 웃으셔요. 온몸으로 에너지를 청중들에게 전합니다. 도를 깨달으면 아이처럼 되나 봐요.”

그가 곁에서 본 달라이 라마는 유난히 장난을 좋아했다. 렌즈가 자신에게 향할 때면 부러 그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머와 농담도 즐겼다. 설교하다 재채기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크게 울리자 “졸고 있는 분들을 깨우기 위해 마이크에 기침했다”는 재치로 좌중을 웃기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달라이 라마의 설교는 그의 내면 깊숙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은 분노가 아닌 애정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종교의 본질에는 사원도 가르침도 필요없다고 했어요. 당신의 생각과 마음이 곧 사원이고, 당신의 선행이 곧 가르침이라고 일깨워주셨어요. 그리고 기도하라고 했어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힘이 거기에 있다고 했어요.”

최근 이씨는 그동안 찍은 달라이 라마와 다람살라 티베트인들의 일상 모습 130여장을 골라 사진집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라>(운주사 펴냄)를 펴냈다. 한국 사진작가로는 처음이다. 그가 직접 곁에서 들어온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도 함께 실었다.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이 미묘한 외교적 이유로 이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그의 철학을 대신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다양한 종교 활동과 티베트 독립운동 관련 사진집을 계속 낼 계획이다.

“행복은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 아닌 가장 보통의 상태, 즉 평화의 상태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행복에 머무르고 있어요. 그러나 행복의 기준이라 말하는 잘못된 생각이 높은 이상을 좇게 하고, 이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게 된다고 달라이 라마는 이야기합니다.”

달라이 라마를 닮은 듯, 그의 밝은 웃음에서 행복이 묻어난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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