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준 궁시장이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를 숯불에 쪼인 뒤 졸대를 이용해 곧게 펴고 있다. 화살 하나 만드는 데는 1년의 시간과 100번 이상의 손길이 가야 한다.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궁시장 박호준씨
총이 발명되기 전까지 활은 ‘최종병기’였다. 팽팽히 당긴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활은 정밀한 미사일이었고, 치명적 무기였다. 명궁의 활은 바람을 계산하지 않고 극복했다. 가벼운 대나무 끝에 달린 무쇠 화살촉은 두려움이자 공포였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어두운 밤에 화살로 쏘아 달을 가까이 끌어당겨 들판을 환하게 만들어 왜구를 물리쳤다는 전설을 낳을 정도로 활의 달인이었다. 직립보행을 하며 두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된 인간은 사납고 힘센 짐승을 사냥하는 데 활을 썼다. 멀리 떨어진 적을 물리치는 데 주로 쓰인 활은 이후 신호와 연락에 사용되기도 했고, 선비들의 정신수양 방법으로도 쓰였다. 폭약을 싣고 날아가기도 했고, 화공(불공격) 수단이기도 했다. 활을 잘 사용한 한민족은 동이족으로 불렸다. ‘이’(夷) 자는 풀어쓰면 ‘큰 대(大)’와 ‘활 궁(弓)’이다. ‘동쪽의 큰 활잡이’였던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弓矢匠)인 박호준(71)은 화살을 만든다. 그의 할아버지 박희원은 조선 고종 때 무과에 합격한 무인이었다. 당시 군기감 소속 궁시장이 만든 활을 사용하던 조부는 성이 안 차 직접 화살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과 체력에 맞게 화살을 만든 것이다. 그러길 30년, 아들 박상준(1914~2001)이 17살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70년간 활을 만들었다. 화살의 명산지 장단과 가까운 원당에서 태어난 상준은 젊을 때에는 서울, 경기도, 충청도 등지로 출장을 다니며 몇 달씩 머물며 화살을 만들어 공급했다. 가을 농사가 끝나는 시점부터 이듬해 모내기 전까지 농한기가 되면 활쏘기가 크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1978년 궁시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박상준의 아들인 호준은 15살 때부터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울 배명고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가업에 나선 것이다. 그의 아들 주동(45)도 이미 이수자 경력 20년째이니, 4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는 셈이다.
동이족 위엄 대륙에 떨치던 ‘최종병기’
고종 때 무인 조부 직접 만들기 시작
아버지 이어 15살 때부터 가업 이어 “활쏘는 사람 체형·힘따라 맞춤 제작”
양궁만 인기 국궁도 공장제품 이용
‘장식품’ 전락 불구 아들 20년째 전수 “화살을 만드는 재료는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 별로 없어요. 자연 상태에서 그때그때 구해야 합니다.” 박호준은 화살을 만들기 위해 우선 대나무(시누대)를 구하러 해변가를 헤맨다. 12월~1월 사이에 서리를 많이 맞으면 대나무의 물이 말라 대의 겉부분이 단단해진다. 산죽이나 울타리죽보다는 바닷가에서 해풍을 쐬고 태양빛을 고루 받고 자란 1~3년생 해변죽이 가장 화살대로 적당하다. 아래위가 곧고 가벼우며 형태가 변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나무를 1년 이상 양달과 응달에 번갈아 말려 살을 벗긴 다음 숯불에 구워 반듯하게 편다. 화살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어교(부레풀)는 민어 부레를 이용한다. 귀한 민어 부레를 비싼 돈을 주고 사와 끓인다. 화살촉이 끼워지는 상사 자리와 활시위에 걸리는 오늬 자리는 강한 충격을 견뎌내야 하므로 쇠심줄을 감아준다. 도살장에서 구한 쇠심줄은 일일이 입으로 씹어 부드럽게 만들어 감는다. 화살을 활시위에 끼우는 오늬는 속이 단단한 싸리나무를 써야 한다. 높은 산 바위틈에서 바람을 이기고 자란 싸리나무라야 한다. 오늬는 복숭아나무 껍질(도피)로 감싸야 터지거나 습기 차는 것을 막아 오래간다. 화살대의 끝에는 꿩(장끼)의 날갯죽지에 박힌 깃을 달아 원하는 방향으로 화살이 날아가게 만든다. 화살을 만드는 중간중간에 무게를 맞추기 위해 숱한 저울질을 거쳐야 한다.
“화살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꼭 활량을 만납니다. 같은 활, 같은 화살이라도 활 쏘는 사람의 체격과 힘, 그 사람의 쏘는 습관에 따라 명중률이 달라집니다. 쏘는 사람에게 맞는 화살, 그것이 가장 좋은 화살인 셈이죠.”
이렇게 공들여 만드는 화살이지만 지금은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올림픽 종목인 양궁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국궁 동호인들도 대량생산한 화살을 쓴다. 장인이 만든 화살은 장식용으로 쓰일 뿐이다. 다섯 촉을 액자에 표구해 250만원 정도에 팔린다. 그것도 일년에 1~2점을 파는 게 고작이다. 만들어놓고 팔리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그냥 나눠준다.
매달 문화재청으로부터 받는 전승지원금은 171만원. 건강보험 혜택도 없다. 그러니 박씨의 삶은 고단하다. 전통문화를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야속하게 여긴 지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어떻게 지켜온 전통인데요.” 그런 아버지를 아들 주동씨가 존경하는 눈길로 쳐다본다.
인천/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궁시장이란 조선시대 군기감의 필수 장인
궁인·시인 나누어 특별히 우대
활(궁)과 화살(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냥도구이며 무기였다. 한민족은 전쟁이 빈번했던 삼국시대에 활과 화살을 발달시켰다. 조선 세종 이후 화약무기가 크게 보급됐으나 한계가 많아 활에 대한 의존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왕가와 사대부에서는 문무 겸비가 필수여서 활쏘기는 조선시대에 가장 성행했던 체육활동이었다.
궁시는 무기로서의 기능이 가장 중요했기에, 중앙에 군기감을 설치하고 궁시 제조 장인들을 공조의 공장부에 등록시켜 각종 궁시를 제조하게 했다. 이들은 다른 장인들에 비해 우대를 받았고, 명칭도 궁인(弓人·활을 만드는 장인), 시인(矢人·화살을 만드는 장인)으로 나뉘어 불렸다.
시인은 다양한 모양의 화살을 만들었다. 버들가지로 만든 화살대에 버들잎 모양의 화살촉을 박은 유엽전은 태조 이성계가 전투용으로 사용한 기록도 있다. 유엽전은 120보 정도 멀리 나가면서도 명중률이 아주 높았다고 한다. 또 크기가 작아 아기살로 불리던 편전은 화살대의 길이가 30㎝ 정도로 조선시대 화살 가운데 가장 작았으나, 전용 통이 없으면 되쏠 수 없었던 까닭에 ‘비밀병기’로 선호했다. 편전의 사거리는 200~300보 정도였다. 신전은 왕의 명령을 전달하던 화살로 화살대에 ‘신’자가 달린 작은 깃발을 달고 대나무 겉표면에 염색을 해 무늬와 문자를 넣었다. 쏘면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효시는 신호용으로 사용했다. 뾰족한 화살촉 대신 단단한 나무의 속을 판 둥근 화살촉을 사용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왕의 명령을 하달할 때 쓰던 화살인 신전(信箭)의 화살촉 화살대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갖가지 칼(왼쪽 아래)
고종 때 무인 조부 직접 만들기 시작
아버지 이어 15살 때부터 가업 이어 “활쏘는 사람 체형·힘따라 맞춤 제작”
양궁만 인기 국궁도 공장제품 이용
‘장식품’ 전락 불구 아들 20년째 전수 “화살을 만드는 재료는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 별로 없어요. 자연 상태에서 그때그때 구해야 합니다.” 박호준은 화살을 만들기 위해 우선 대나무(시누대)를 구하러 해변가를 헤맨다. 12월~1월 사이에 서리를 많이 맞으면 대나무의 물이 말라 대의 겉부분이 단단해진다. 산죽이나 울타리죽보다는 바닷가에서 해풍을 쐬고 태양빛을 고루 받고 자란 1~3년생 해변죽이 가장 화살대로 적당하다. 아래위가 곧고 가벼우며 형태가 변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나무를 1년 이상 양달과 응달에 번갈아 말려 살을 벗긴 다음 숯불에 구워 반듯하게 편다. 화살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어교(부레풀)는 민어 부레를 이용한다. 귀한 민어 부레를 비싼 돈을 주고 사와 끓인다. 화살촉이 끼워지는 상사 자리와 활시위에 걸리는 오늬 자리는 강한 충격을 견뎌내야 하므로 쇠심줄을 감아준다. 도살장에서 구한 쇠심줄은 일일이 입으로 씹어 부드럽게 만들어 감는다. 화살을 활시위에 끼우는 오늬는 속이 단단한 싸리나무를 써야 한다. 높은 산 바위틈에서 바람을 이기고 자란 싸리나무라야 한다. 오늬는 복숭아나무 껍질(도피)로 감싸야 터지거나 습기 차는 것을 막아 오래간다. 화살대의 끝에는 꿩(장끼)의 날갯죽지에 박힌 깃을 달아 원하는 방향으로 화살이 날아가게 만든다. 화살을 만드는 중간중간에 무게를 맞추기 위해 숱한 저울질을 거쳐야 한다.
박호준 궁시장이 만든 화살들. 위쪽 두개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효시. 맨 아래 화살은 과녁에 박히지 않도록 만든 도끼날형 화살이다.
궁시장이란 조선시대 군기감의 필수 장인
궁인·시인 나누어 특별히 우대
줄칼은 대나무 마디를 쓸고, 창칼은 대나무를 깎는다. 송곳처럼 뾰족한 오늬칼은 오늬 구멍을 뚫고, 상사칼은 상사를 파고 깃을 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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