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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비단 꽃잎에 노루털 꽃술 심으니 벌나비도 날아들어 ‘깜짝’

등록 2015-02-10 21:01

문헌에만 있던 궁중채화를 현대에 재현한 황수로 장인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화려한 윤회매의 가지에 새와 나비, 벌 등을 장식하고 있다.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윤회매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밀랍으로 만들어 즐기던 대표적인 가짜꽃이다.
문헌에만 있던 궁중채화를 현대에 재현한 황수로 장인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화려한 윤회매의 가지에 새와 나비, 벌 등을 장식하고 있다.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윤회매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밀랍으로 만들어 즐기던 대표적인 가짜꽃이다.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궁중채화 장인 황수로씨
조선시대 국왕의 잔칫상을 장식했던 대수파련
조선시대 국왕의 잔칫상을 장식했던 대수파련
밀랍은 벌집에서 꿀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끓였다가 찬물에 굳힌 것이다. 이 밀랍으로 매화를 만들어 ‘윤회매’(輪回梅)라고 이름을 지었다. 꽃에서 꿀이 나오고, 이 꽃에서 벌이 꿀을 따와 밀랍이 생기고 이것이 매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윤회매는 그 향과 빛깔이 천연스러워 벌과 나비가 날아들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윤회매를 만들어 벗들에게 매화 한 가지에 10전씩 받고 팔았다고 한다. 윤회매는 조선시대 왕실뿐 아니라 사대부들이 사랑한 전통 공예품이다.

왕실·사대부 사랑했던 ‘가짜꽃’ 문화
살아있는 꽃 꺾지 않고도 화려한 장식
일제·전쟁 거치며 사라진 명맥 되살려

집안 대물림한 고종 하사품 세송이
전공 사학 살려 순조때 ‘의궤’ 발굴
“꽃을 사랑한 여인 ‘수로’로 개명도”

비단이나 종이, 밀랍 등으로 만드는 가짜꽃(가화·假花)은 한때 사라졌다가 중요무형문화재 124호(2013년 지정)인 황수로(80·사진)씨가 궁중채화(綵花)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켰다. 황수로가 궁중채화를 복원한 것은 어릴 때 집에 있던 세 송이의 붉은 조화 덕분이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모친(이복이)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피난했던 이 가짜꽃은 그의 외조부 이수창(1885~1995)이 고종 때 비서실장 격인 궁내부 주사를 하며 고종에게 직접 하사받은 것이다.

비단으로 만든 나비
비단으로 만든 나비
윤회매도 가짜꽃의 하나다. 천연 빛깔이 영롱한 비단으로 만든 국화와 목단, 장미꽃에는 투명한 얇은 날개를 펼친 나비가 앉아 있다. 나비 역시 만든 것이다. 머리는 닭, 턱은 제비, 목은 뱀, 다리는 학, 꼬리는 물고기, 깃털은 원앙, 등은 거북, 발톱은 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용과 학이 교미해 낳았다는 상상의 새인 봉황도 그 화려한 자태를 조선왕조의 상징인 붉은 오얏꽃 위에서 뽐내고 있다. 조선백자에 심어놓은 나뭇가지를 장식한 각종 동식물들은 태평을 기원하고 있다. 예로부터 궁중의 실내 장식에는 생화를 쓰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생명을 꺾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아름다움을 늘 함께하려 한 것이다.

사학을 공부한 황씨는 이처럼 궁중에서 쓰인 꽃의 뿌리를 찾기 위해 고전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마침내 발견한 문헌은 <순조기축진찬의궤>이다. 조선 23대 왕인 순조(재위 1800~34)의 나이 40살, 즉위 3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효명세자가 창경궁에서 올린 잔치를 자세히 설명해 놓은 문헌이다.

고종이 하사해 황수로 장인의 어머니가 보관해온 붉은 어사화
고종이 하사해 황수로 장인의 어머니가 보관해온 붉은 어사화
이 책에선 조선시대 채화 문화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잔치는 두번 열렸다. 왕과 왕세자가 주체가 되어 낮에 명정전에서 조정의 신하들을 대상으로 연 외진찬과 저녁때 자경전에서 대비와 왕비가 주체가 되어 내명부와 외명부를 대상으로 연 내진찬이다. 외진찬에 사용된 채화는 모두 5289송이. 제작비는 632냥 7전 3푼이 들었다고 기록했다. 요즘 시세로는 5천만원 정도. 내진찬에는 이보다 많은 6557송이가 들어갔는데, 비용도 1729냥 6전 3푼이 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요즘 시세로 1억4천만원에 이르니 대단한 규모인 셈이다.

<순조기축진찬의궤>에 기록된 ‘지당판’(연회 무대 장식품).
<순조기축진찬의궤>에 기록된 ‘지당판’(연회 무대 장식품).
황씨는 이 의궤의 그림을 확대해서 보고, 한문으로 쓰인 설명을 직접 풀이해 궁중채화를 재현했다. 그는 “지난 60년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인들이 꽃장식 문화는 한국에는 없는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한국의 전통 꽃장식 문화를 반드시 복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문화혁명 때 관련 기록이 소멸돼 지금은 재현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음식이나 춤, 의상 등과 달리 꽃의 유물은 없지만, 수백년 전 기록이 생생히 남아 있어 재현이 가능했다.” 한 개인의 50년 넘게 이어진 집념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가 끊긴 가화의 전통을 되살린 것이다.

지당판을 그대로 복원한 칠보등롱.
지당판을 그대로 복원한 칠보등롱.
궁중에서 생화로 장식하지 않는 법도는 왜 생겼을까. 임금이 즐겨야 할 꽃이니 절대로 시들어서는 안 됐다. 가짜꽃을 진짜처럼 내놓아야 했다. 종이로만 만들면 오래가기 힘들고 자칫 천박해 보였다. 그래서 비단과 모시로 만들었다. 송홧가루나 밀랍, 촛농이 더해졌다. 아교나 풀 외에 꿀이 접착제다. 녹을 막으려 철사 대신 가는 대나무를 썼다. 꽃에서 우려낸 즙으로 색깔과 향기도 더했다. 여름철엔 얼음으로 만든 빙화(氷花)도 등장했다.

조선 왕실은 궁내에 전문 공예인인 ‘화장’(花匠)을 두고 이들이 만든 꽃으로 연회장을 꾸몄다. 붉은색과 흰색 오얏꽃을 대형 백자 항아리에 꽂은 화준(花樽)을 어좌 양쪽에 세우고, 궁궐 기둥과 연회에 쓰는 촛대, 심지어 요리 위까지 꽃으로 장식했다. 참석자들도 모두 머리에 꽃을 꽂았다.

황씨는 질 좋은 비단을 골라 천연 재료로 염색하고 마름질한 뒤, 일일이 홍두깨로 두드리고 인두로 다려 꽃잎 모양을 만드는 등 전통 기법을 따라 꽃을 만든다. 꽃을 완성한 뒤엔 노루털 끝에 꽃가루를 묻혀 만든 꽃술을 붙이고, 밀랍을 발라 형태를 고정했다. 그는 “살아 있는 꽃을 꺾지 않고도 그 모양은 물론 향기까지 살려내는 배려와 예술혼의 상징이 궁중채화”라고 강조한다.

2004년 덕수궁 야외전시 때 벌과 나비가 진짜 꽃인 줄 알고 날아들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본명은 황을순. 그는 신라시대 향가 ‘헌화가’에 소를 끌고 가던 노인에게 절벽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받은 수로(水路) 부인이 문헌상 최초로 꽃을 사랑한 여인이라고 여겨 개명을 했다고 한다. 수로 부인이 환생한 셈이다.

양산/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궁중채화란

최고급 원단 염색해 만든 ‘비단꽃’
꽃·동물·곤충 진짜처럼 정교·화려

궁중채화(宮中綵花)는 비단을 주재료로 만든 궁중에서 쓰던 가짜꽃(가화)을 말한다.
궁중채화(宮中綵花)는 비단을 주재료로 만든 궁중에서 쓰던 가짜꽃(가화)을 말한다.
궁중채화(宮中綵花)는 비단을 주재료로 만든 궁중에서 쓰던 가짜꽃(가화)을 말한다. 신라능단, 세저포, 고려능견 등 최고급 비단과 모시, 종이, 밀랍, 삼베, 심지어 떡이나 과자 등도 재료로 썼다.

궁중채화는 크게 머리에 장식하는 잠화(簪花), 잔칫상에 올리는 상화(床花), 행사장을 꾸미는 준화(樽花) 등으로 구분된다.

채화를 만드는 작업은 첫째가 ‘염색’이고, 그다음이 ‘설치’, 마지막으로 ‘조립’이다. 황수로 장인은 “채화 할 때 가장 중요한 작업이 염색이다. 염색이 잘못되면 꽃이 빛깔을 내지 못한다. 실제 꽃이 피기 위해 일년의 시간이 드는 것처럼 가화를 만드는 데도 일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연꽃만 해도, 천을 일일이 주름 접어 명주실로 6개월간 잠을 재워야 주름이 풀어지지 않는다.

궁중채화는 주로 화려한 모란이나 연, 매화 등 꽃과 벌, 나비, 새, 무당벌레 등 아름다우면서도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동물·곤충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실제 생물로 착각할 만큼 매우 정교하다.

채화는 동서양 모두 농작물을 생계수단으로 삼던 농경사회부터 생긴 식물숭배사상을 배경으로 비단과 종이가 등장한 이후 발달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엔 전문 장인인 화장이 등장했고, 조선시대에 가장 발달했다. 조선 왕실의 의궤를 보면, 궁중 연회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머리에 왕이 하사한 홍도화(紅桃花)가 꽂혀 있다. 왕의 상에만 장식한 대수파련(大水波蓮)은 연꽃 여덟 송이와 국화, 월계화, 목단화를 함께 장식하고, 꼭대기에 장수를 기원하는 노인 인형을 올려놓았다. 채화는 궁중 의례와 향연에 다양한 구실을 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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