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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축구장 구석에서 퍼지던 기타 소리에 이거야! 야호”

등록 2015-01-21 19:32수정 2015-01-21 21:00

함신익 지휘자.  사진 심포니 송 제공
함신익 지휘자. 사진 심포니 송 제공
[짬] 한국인 첫 예일대 음대 교수
함신익 지휘자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저녁 무렵, 강원도 태백시 산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축구경기가 열렸다. 조기축구회 회원들의 친선경기였다.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강원도까지 갔지만 축구보다는 기타 연주를 좋아한 초청 회원의 친구는 운동장 구석에서 기타 연습을 했다.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는 이들 가운데는 지휘자 함신익(57·사진)씨도 있었다. 몸은 공을 따라다녔지만 그의 감각은 잔잔히 들리는 친구의 기타 선율에 집중됐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가 풀릴 듯했다. 기타 소리는 마치 수준 높은 공연장에서처럼 좋았다. ‘야외에서 하는 연주인데 어찌 저리 좋을까?’ 그는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야. 야호!” 운동장 한구석에서 시작된 기타 선율은 나지막한 학교 건물을 감싸고 돌아 뒷동산에 부딪친 뒤 다시 운동장에 흘러 다녔다. 그가 꿈꿔온 ‘한국형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순간이다.

이동 오케스트라 ‘심포니 송’ 꾸려
즉석 무대 설치 가능한 트럭 장만
3월 발대식 뒤 전국 방방곡곡으로

미국 유학때도 ‘학생 악단’ 성공시켜
고정관념 깨트려온 ‘클래식 이단아’
“무대-객석 좁히는게 음악인생 목표”

미국 예일대 음대 교수이자 외모가 베토벤과 비슷해 ‘함토벤’으로 불려온 함씨는 그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주변 지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가 구상해온 한국형 오케스트라의 요체는 전국 방방곡곡 어디서든 멋진 교향악 하모니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연주할 공연장이 중요했다. 무대가 있어야 했고, 조명이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수십명의 단원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대형 트럭을 떠올렸다. 트럭이 변형되어 멋진 무대가 되고 더불어 악기를 싣고 다닌다면 장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이동 공연장’은 5.5t 윙보디(적재함 문이 날개처럼 측면으로 열리는 트럭)를 개조해 만들었다. 적재함 문을 열면 길이 8.5m, 너비 6.5m, 높이 2.5m의 무대가 완성된다. 음향 반사판과 조명 그리고 음향시설도 갖췄다. 지휘자와 연주자 45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 이 기상천외한 트럭은 그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전해 들은 노루페인트에서 후원해줬다.

오케스트라 이름은 ‘심포니 송’. 송(S.O.N.G)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오케스트라’(Symphony Orchestra of the Next Generation)의 첫 알파벳을 따서 만들었다. 지속적인 개인 오디션을 통해 정예 단원 30여명을 우선 선발했다. 70여명이 필요한 단원의 나머지 인원은 차차 충원하기로 했다. 앞으로 3년간 운영할 기본적인 비용도 취지에 감동한 한 독지가가 지원했다. 서울 강남 한 건물의 지하실에 연습장과 사무실도 마련했다. 상설 연습장이 생긴 것이다.

오는 3월 발대식을 하고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전남 소록도에서 장애인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첫 콘서트를 연다. 충북 음성 꽃동네와 농촌 마을회관 앞, 고속도로 휴게소 등 문회소외지역에서 연주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한 달에 최소 1주일, 하루 1~3회 공연으로 1년에 100~150회 연주한다는 목표다.

“어렸을 때 가난해서 음악을 좋아했지만 비싼 입장료 탓에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직접 듣지는 못했어요. 다음 세대에는 그런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어요.”

함씨는 서울 삼양동의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그는 건국대 음대를 졸업한 뒤 단돈 200달러를 쥐고 미국 유학을 갔다. 웨이터와 지압사, 냉동차 운전기사 등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명문 이스트먼 음악학교에서 지휘과 박사 과정을 전공하던 시절에도 학생들을 설득해 지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성공시킨 그였다. 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피텔버그) 국제지휘대회에서 입상하며 프로 지휘자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그는 고정관념과 형식을 파괴한 기발한 기획과 운영으로 ‘오케스트라의 부흥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미국 오케스트라를 이끌 차세대 지휘자 5인에 꼽히기도 했던 그는 95년 15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교수로 임용됐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한국에서도 잠깐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과 대전 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한국의 음악계에서 그는 이단아였다. ‘댄스, 댄스, 댄스’ 제목으로 춤곡만을 모아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광장에서 댄스파티를 열기도 했다. 독일의 허름한 다락방 악조건 속에서 불멸의 작품을 남긴 베토벤을 기리기 위해 ‘다락방의 베토벤’이라는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퀴즈, 퀴즈! 가족음악회’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작곡가와 제목을 맞히는 퀴즈를 곁들여 진행하기도 했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도 청중이 없으면 살아날 수 없어요.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금 낮아져 잠재적 고객을 확보해야 합니다. 무대와 객석의 간격을 좁혀야 합니다. 이것이 남은 제 음악 인생의 최대 목표입니다. ‘음악은 즐겁고 쉽고 신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갈 겁니다.”

함씨는 “클래식 음악을 일단 들어보면 누구나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건 모두 음악을 하는 사람들 책임이다”라고 단언한다.

심포니 송은 오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문화소외계층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천원짜리 콘서트’를 연다. 공연장 로비에는 ‘악기야 놀자’ 체험 코너도 마련해 코스모스 악기사의 후원으로 다양한 악기를 청소년들이 직접 연주해볼 수 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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