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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인고의 쇠망치질로 생명 불어넣으니 돌부처도 빙긋”

등록 2014-11-18 20:21수정 2015-01-19 16:51

무심한 돌덩이를 쪼아 자비로운 부처상을 만드는 석장 이재순의 망치질은 끝없는 인내와 정성을 쏟아야 하는 구도자의 길과 같다.
무심한 돌덩이를 쪼아 자비로운 부처상을 만드는 석장 이재순의 망치질은 끝없는 인내와 정성을 쏟아야 하는 구도자의 길과 같다.
[장인을 찾아서] 석장 중요무형문화재 이재순씨

12세 때 중학교 대신 석공으로
양복점·목공소에서도 솜씨 다듬어
‘석조계 대가’ 김진영 선생 문하로
한때 방황하다 석굴암 석불에 ‘개안’
세계기능올림픽 한국 첫 석공 우승
“자연 존중과 겸손한 마음이 시작”
자비스러운 표정을 한 불상의 얼굴과 몸에 무쇠 정을 댄다. 그리고 무쇠 망치로 쫀다. 순간 돌의 파편이 튄다. 하지만 불상은 조금도 찡그리지 않는다. 엄청난 충격이 전달됐지만 불상은 여전히 자비롭게 웃고 있다. 다시 망치에 힘을 가한다. “뚝 뚝”. 그럴 때마다 돌조각의 파편은 사방으로 “팍팍” 튄다. 불상의 표정은 여전하다. 석공의 무심한 듯한 표정도 변함이 없다. 단순한 동작이 오랫동안 계속되지만 돌부처와 석공 사이에 흐르는 헤아리기 어려운, 그리고 범인은 알 수 없는 성(聖)스러운 분위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뾰족한 정을 대고 망치로 쪼는 석공의 표정과, 석공의 손에 의해 돌 위에 새겨지는 부처의 표정은 비슷하다. 굳게 다문 듯 살짝 연 입술과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눈매가 언뜻 보아도 비슷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일까?

이재순 명장의 작품인 해수관음상.
이재순 명장의 작품인 해수관음상.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0호 석장(石匠) 이재순(58)은 전설 속의 석공인 아사달을 우리 민족 최고의 석공으로 친다. 그는 아사달을 결코 전설 속의 인물로 보지 않고, 본받으려 노력한다. 신라시대 불국사를 창건하던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으로 알려진 백제의 아사달을 불렀다. 남편을 기다리던 아사달의 부인 아사녀는 불국사로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그녀에게 스님은 “탑 공사가 끝나면 저 연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고 남편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고 기다리던 아사녀는 기다림에 지쳐 연못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무영(無影)탑’으로 불리는 석가탑을 만든 아사달을 그가 최고의 석공으로 꼽는 이유는 돌을 조각한다는 행위는 인간의 인내와 사랑을 초월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12살 때 돌과 인연을 맺었다. 담양에서 부유한 한학자였던 아버지(이귀섭)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송사에 휘말려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석공 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들과 형의 요청으로 정을 들었다. 남다른 손재주 있던 그는 양복점과 목공소에서도 일을 배웠다. 석공의 일을 하기에 꼭 필요한 재단과 꼼꼼한 손기술을 몸에 익힌 것이다.

다시 석공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 창동에 작업장이 있던 당시의 유명한 석공이던 김부관 선생을 찾아가 일을 배웠다. 돌의 평면을 다듬는 치석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량을 닦았다. 그리고 석공 인생에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김진영 선생을 만났다. 그는 조선 헌종, 철종 시대에 경복궁의 해태상 등을 조각한 이세욱, 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는 석조계의 대가였다. 서울 망우리에 있던 김진영 선생의 작업장을 찾아가 제자로 들어간 것이다. 일본에 수출하는 석공예품을 만들던 공장에서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공장장을 하며 기량을 쌓았다. 내부 갈등으로 작업장을 나와 방황하며 여행을 하던 그는 경주 석굴암에 들러 조상들이 빚어 놓은 석불을 보면서 진정한 석공의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스승을 찾았다.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석불을 조각하리라.”

이재순 명장의 작품인 천록(상상 속 동물).
이재순 명장의 작품인 천록(상상 속 동물).
마침내 기회가 왔다. 앉아서 입적한 대만의 유명한 자항(츠항) 대사를 기리는 자항기념관에 안치할 아미타불상을 조성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당시 대만의 불교 신도들은 세계의 석불을 다 보고 나서 석굴암 본존불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매일 아침 불상에 절을 드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석굴암 본존불의 1.7배가 넘는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1995년 완성된 불상을 배로 옮겨 대만의 절에 안치하는 날, 아미타불이 서쪽을 향해 앉자 구름이 갑자기 걷히며 석양빛이 불상을 비춰 대만 신도들이 탄복을 했다고 한다.

이재순 명장의 작품인 두마리 호랑이(쌍호자).
이재순 명장의 작품인 두마리 호랑이(쌍호자).
그는 21살이던 1977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기능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한국인 최초로 석공예부문 금메달을 차지했다. 당시 석공예 경연의 과제는 기하학적 도형을 만드는 것인데, 재료로 나온 돌이 무른 석회석이었다. 그는 이전 대회에 대리석이 재료로 나왔기에 대리석을 쪼는 데 알맞은 연장만을 준비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여덟시간씩 사흘에 걸쳐 완성하는 과제인데, 그는 첫날 하루를 꼬박 자신의 연장을 석회석에 맞게 가늘고 뾰족하게 다듬는 데 쓰는 침착함을 보인 끝에 정상에 오르는 끈질김을 보였다.

“흔한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자연에 대한 존중과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만든 돌조각만이 인간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삼국시대 성곽 쌓는 기술자로 탄생
내구성 탁월한 화강암 많아 예술로

석장이란

불상, 석탑, 석교와 조각상 등 석조물을 제작하는 석장은 망치와 정 같은 수공구를 사용해 돌이라는 흔하고도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불상, 석탑, 석교와 조각상 등 석조물을 제작하는 석장은 망치와 정 같은 수공구를 사용해 돌이라는 흔하고도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불상, 석탑, 석교와 조각상 등 석조물을 제작하는 석장은 망치와 정 같은 수공구를 사용해 돌이라는 흔하고도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인류가 자연에서 채득한 물질 중 그 연원이 가장 오래된 돌은 여러 문화유산 중에도 연원과 양적인 면에서 가장 풍부하다. 특히 전 국토의 25%가 석재인 우리나라는 그 90% 이상을 화강암이 차지하고 있다. 주로 쥐라기와 백악기 화강암으로 강도와 내마모성이 좋고, 빛깔이 아름다우며 광택이 뛰어나다. 또 흡수성이 작고 돌결이 치밀하며 석질이 굳고 내구력이 있어서 가공했을 때 아름다움도 탁월하다.

우리 석조문화는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찰의 불사와 궁실 건축은 물론 다방면에 걸쳐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유난히도 많았던 시대여서 성곽을 쌓느라 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석장’이라는 기술자 집단이 본격적으로 탄생하고 정착했다. 그 시절 석장들이 지녔던 뛰어난 예술감각과 창의성이 빚어낸 석조문화유산은 오늘날까지 세계 석조문화사에서 보기 드문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석공 작업에는 다양한 도구가 쓰인다. 석재의 길이·너비·깊이 등의 척도를 계측하는 자, 석재의 틈새에 박아서 잘라내는 쐐기와 먹줄, 선을 긋는 데 필요한 먹칼, 석재 표면에 그림이나 글씨를 쓰는 붓, 쐐기를 박거나 석재를 다듬는 메, 돌을 캐거나 다듬는 정, 거친 석재의 표면을 곱게 쪼아내는 도드락망치 등이 있다.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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