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마니아 최정동씨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발자취를 좇아 최근 책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펴냈다. 사진 최정동씨 제공
[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펴낸 클래식 마니아 최정동씨
직접 찍은 사진 121장 파노라마로
조실부모 뒤 20명 자녀 키운 ‘가장’ 22년 전 바이올린 소나타 듣고 ‘전율’
음반 모아 아침마다 온 가족 음악 교감 책의 표지는 저자가 쾨텐 바흐기념관에서 직접 마네킨을 찍은 것이다. 마네킨에는 아무런 설명이 붙어 있지 않지만 바흐의 아내인 것은 분명하다. “마네킨 여인 옆 소품처럼 놓인 아기침대는 20명 아이들의 울음소리, 비린 젖내, 펄럭이는 기저귀, 떠드는 소리가 음악과 함께 늘 휘돌았을 바흐의 공간”이라고 그는 상상했다. 마네킨의 주인공이 아이 7명을 낳고 남편 출장간 사이 홀로 숨진 첫째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인지, 두번째 부인 안나 마르크달레나인지, 기념관에서는 아무런 표시를 해놓지 않았다. 바흐 전기를 쓰기도 했던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바이올린과 챔벌로를 위한 소나타>가 쾨텐시 절 작곡된 데다 이 시절 바흐의 음악으로는 이례적으로 통렬한 슬픔을 품고 있는 곡이 많은 점을 들어 첫번째 부인인 마리아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최씨도 “이곡을 들으면 어두운 방구석에서 소리죽여 곡을 하는 중년의 사내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이들의 눈을 피해 홀로 흐느끼는 처참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2011년 가을 최씨가 고향 아이제나흐를 출발해 무덤이 있는 라이프치히까지 바흐의 발길과 체취가 담긴 독일 10개 도시를 순례하며 음악인생을 추적한 기행문이다. 400쪽이 넘는 두터운 책장을 넘기면 바흐의 일생이 저자가 직접 찍은 바흐 관련 사진 100여장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 그 사이사이 자신의 바흐에 꽂혀 살아온 저자의 음악인생 20여년도 겹친다. 국내에서 서양 고전음악 거장의 삶과 음악을 기행문 형식으로 담아낸 것은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최씨는 크리스토프 볼프 하버드대 교수의 바흐 전기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비롯해 10권의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자료를 섭렵하며 책을 구상했다. 학창시절 음악과목을 가장 싫어했다는 30년차 저널리스트인 그가 음악가 기행문을 펴내게 된 사연은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2년 전 클래식 음악 입문 초기 회사 근처 레코드가게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처음 들었다. 순간 “얼어붙은 듯 멈춰 버린” 이후 그가 모은 엘피(LP) 2천여장 가운데 30% 이상이 바흐 음악이다. 9살 때 조실부모하고 큰형 집에서 얹혀 살았던 사연까지 바흐의 삶과 비슷한 점도 자연스레 그를 이끌었다. “흔히 바흐 음악은 딱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쾌감을 줍니다. 글랜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는 열락을 느끼게 하고,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랜델이 연주하는 <크로마틱 판타지>는 바흐가 얼마나 폭발적인 열정을 가진 작곡가였는지 알게 합니다.” 결혼과 함께 오디오를 장만한 그는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바흐의 <지(G) 선상의 아리아> 음반을 사면서 클래식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이제는 바흐의 기악곡을 틀어놓고 아침식사를 하며 가족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정도로 바흐 마니아가 됐다. 그는 클래식, 사진과 함께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첫 저서인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를 비롯해 <로마제국을 가다> 1·2권 등 지금까지 펴낸 5권의 책은 주제는 다르지만 유적지를 직접 순례한 뒤 펴낸 기행문이란 공통점이 있다. “바흐를 좋아하는 음악 친구들에게 ‘바흐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직접 보여주마’라는 생각에서 펴냈습니다. 예컨대 바흐가 결혼했던 교회를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바하가 결혼식장인 시골마을의 교회까지 친척들과 행진했던 3킬로 정도 거리를 호젓하게 한번 걸어보는 것도 바하의 음악과 삶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니까요.” 글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사진 최정동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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