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철가방극장’이 위치한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1리는 2008년 저수지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수몰마을이다. 마을을 살려야겠다는 의지로 뭉친 마을주민들이 청도에 자리잡은 개그맨 전유성씨를 삼고초려해 시작한 사업이다. 2011년부터 문을 연 코미디철가방극장은 ‘전유성’이라는 이름의 유명세를 타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코미디 공연을 본 사람들에게 지역의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팔고, 저수지 주변 자전거 일주나 뗏목 타기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2012년 1억3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이제는 청도 하면 떠올리게 되는 특색 있는 명승지가 되어 ‘철가방마을’이라 불릴 정도다. 전 대표는 2009년부터 개그학교를 열어 전국에서 몰려든 개그맨 지망생들을 가르쳐왔으며, 신봉선·박휘순 등 개그 인재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개그 인재들은 방송계로 진출하기도 하지만, 철가방극장의 무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전 대표는 이들이 땀 흘려 준비한 무대에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며 꿈을 지켜갈 수 있도록 스스로 사회적기업으로 탈바꿈해 개그 지망생들에게 급여도 지급하고 있다. 지난 9월5일 청도를 ‘개그 메카’로 만들고 있는 사회적기업 대표 전유성씨를 만났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1리 외딴 산골에서 한 해 8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렇게 지역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무언가 뜻을 갖고 내려온 건 전혀 없다. 원래는 조용히 낮술 마시면서 여행 다니며 살아야겠다고 내려왔는데, 이곳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이 동참해달라고 간곡히 청해왔다. 이 지역은 댐으로 저수지가 생기면서 내몰린 수몰마을이다. 이 마을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열심이다. 그래서 코미디 전용 극장을 제안했는데 색다른 지역사업이라고 인식되었는지 각광을 받은 것 같다.”
코미디공연장은 도시에 있어야 하나
-평소에도 코미디 전용 극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나?
“지방을 다니다 보면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잘 대해주는 편이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그분들께 코미디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좋아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농어촌에서 그분들이 코미디를 접하는 건 오로지 텔레비전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코미디 공연장이 꼭 도시나 대학로에만 있어야 하나? 그럼 코미디도 짜장면처럼 배달하면 어떨까? 배달의 상징은 철가방 아닌가. 그래서 건물도 철가방 모양으로 짓고 이름도 ‘철가방극장’이라고 정했다.”
-코미디철가방극장이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코미디의 미덕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수가 없다는 데 있다. 코미디를 설명하면 그 특유의 쾌감은 사라지고 만다. 코미디를 접하는 그 순간 환하게 웃는 현장을 말로 전달하는 일이 가능한가. 그러니 보고 온 사람들에게 ‘어땠어?’ 하고 물어보면 ‘재밌어~ 가봐!’ 답할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호기심에라도 직접 찾아온다. 하지만 매회 누가 올까 기다리는 게 처량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티켓링크에서 예약을 해야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관객들도 이왕이면 설레는 맘으로 볼 수 있는 게 좋지 않나. 설레는 맘으로 날짜를 손꼽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개그맨 지망생 꿈 지키는 데 도움 되길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사단법인 청도코미디시장’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12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기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철가방극장에서 개그맨 지망생에게 무료 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도 5기를 모집 중이다. 코미디를 무료로 배울 수 있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조건을 갖춰주고 싶었다. 예전엔 핸드폰 비용 정도밖에 주지 못했는데, 그나마 이 제도 덕분에 이 친구들이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대학로에선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는 개그맨 지망생이 태반이다. 자신의 꿈을 지켜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을주민들에게 전 대표는 본인은 가져가는 것 없이 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들었다. 코미디를 아끼는 선배의 마음이 특별하다. 최근 <개그콘서트> 등 코미디의 붐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우선 난 봉사 같은 거 잘 모른다. 단순하다. 제일 먼저 시작한 선배가 처음 시작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만들어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다. 그 행사에 초청하는 기준의 하나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는 형식의 코미디를 소개하는 것이다. 적자 상태지만 지치지 않고 갈 생각이다. 코피를 쏟고 있는데, 언젠가 코피 막을 솜값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최근엔 코미디 창작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웃기는 일들도 많아졌다. 코미디의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가는 일도 중요하다.”
애들처럼 생각하면 재밌게 살 수 있어
-철가방극장뿐 아니라 ‘개나 소나 콘서트’ 등 재치있고 신선한 기획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발상이 자유롭다. 이렇게 자유로운 발상의 비결은 무엇인가?
“세상살이에 불만이 많아야 한다. 불만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내면 아이디어가 된다고 생각한다. 왜 공연장은 서울에만 있어야 하나. 지방에도 보고 싶어하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런 불만이 철가방극장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개나 소나 콘서트’ 역시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은 늘어나는데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왜 반려동물과 함께 공연을 보는 곳은 없는 건가. 올해로 6회째다. 한 해 반려동물 700~800마리, 관객 3000~4000명 정도가 함께 야외에서 클래식 공연을 즐기게 됐다.
요즘엔 어디 가서 주례라도 서면 하는 말이 있다. ‘애들처럼 살아라. 유치하게 살아라’는 말이다. 애들처럼 생각하면 재미있게 다르게 살 수 있다. 이 나이에 빨간 옷을 입는다고 핀잔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같다고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청도에 코미디박물관이 들어서는 코미디창작촌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콘셉트인가?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코믹한 박물관’이 되기를 바란다. 박물관 하면 과거를 담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가족이 왔을 때 코미디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웃음을 녹음해서 기록으로 보관할 수도 있지 않겠나. ‘웃음납골당’이라는 걸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도 있다. 박물관이 코믹한 곳이었으면 한다. <유머 일번지> 연출을 맡았던 김웅래 피디를 관장으로 모실 예정이다. 코미디창작촌이 건립되면 서울 일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시골에 내려오고 싶은 개그계 후배들에게 일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생이 궁금하면 11월 전생축제 오세요
-성곡저수지 몰래길 바위에 ‘구라치기 없기, 큰소리 안 내기, 각종 소원 환영, 분실물 환영,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글을 보고 많이 웃었다. 전 대표의 색깔이 물씬 풍겨나온다. 이것 말고도 지역에서 전 대표의 색깔이 묻어나는 기획이 여럿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소개한다면?
“길이라면 영월, 봉화, 영양, 청송 4개 군에 걸친 ‘외씨버선길’도 있다. 라디오 방송에서 광고로 나가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강원도와 경북 오지의 4개 군이 협력해 길을 조성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경북북부연구원 권오상 원장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10월25~26일 ‘외씨버선길 걷기축제’에서 함께 걷기로 예정되어 있다.
11월1일 청도에서 전생(前生) 축제도 기획 중이다. 관객이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전생 체험 극장이 마련될 예정이다. 전생이 궁금한 사람들은 청도에서 열리는 전생 축제에 참여해보시길 권한다.”
청도/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