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해변의 비키니 여성들. <한겨레> 자료 사진
여름이 왔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해변에서 여성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 그 기원이 남태평양에서 열린 미국의 핵실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7월, 미군은 남태평양의 비키니섬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 폭탄의 성능을 더욱 높이기 위해 핵폭탄 실험을 했다. 바로 ‘크로스로드 작전’이다. 비키니섬은 태평양 서부 마셜 제도 서북쪽에 있는 산호초로 이뤄진 섬으로 미국의 신탁 통치령.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실험장이 되었다. 면적은 5㎢.
7월1일과 25일, 21킬로톤급의 원자폭탄 ‘에이블’과 ‘베이커’가 남태평양 바다에 떠 있는 군함에 떨어졌다. 실험용으로 사용된 옛 일본제국의 해군 순양함 사카와와 나가토는 2일과 29일 각각 침몰했다.
<허핑턴포스트재팬>은 지난 6일 “옛 일본 해군전함 두 척이 1946년 7월에 있은 핵폭탄 실험으로 침몰했다”며 그 실험 장소가 수영복 이름의 유래가 된 ‘비키니섬’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핵 실험에 성공했다는 보도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프랑스인 루이 레알은 같은 해 7월5일, 노출 수위가 높은 투피스 수영복을 파리에서 발표했다. 크로스로드 작전에 사용된 원폭의 파괴력에 비견될만큼,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견해 수영복 이름을 ‘비키니’로 명명했다. 이후 비키니는 일반인들한테 널리 퍼졌다.
크로스로드 작전 이후, 비키니섬에서 미군의 원폭·수폭 실험이 잇따랐다. 1958년까지 12년간 총 67회에 달했다. 1954년 수소 폭탄 ‘브라보’ 실험에서는 섬주민뿐만 아니라 제5후쿠류마루 등 근해에서 조업하고 있던 어선의 승무원들도 피폭당했다. 핵실험이 끝난 뒤에도 방사능 오염이 너무 심해 섬주민은 귀환할 수 없었다. 핵실험 뒤 60년이 지난 올해까지 비키니섬에는 시설의 유지 관리 등을 위한 근로자 5명만 살고 있을 뿐이다.
여름철 해변이나 수영장에서 아름다운 비키니 수영복을 발견하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실시된 처참한 원폭실험도 한번쯤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이충신 기자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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