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화려한 ‘셰프’ 이름 뒤 열악한 현실…그들이 뭉쳤다

등록 2014-06-01 14:34수정 2014-06-01 15:02

행사를 찾은 이들이 안현민셰프에게서 메뉴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미향 기자
행사를 찾은 이들이 안현민셰프에게서 메뉴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미향 기자
흉선암 투병 장신우 셰프 돕기 자선행사
지난 29일 서울 잠원동의 쿠킹 스튜디오 ‘플레이트 온 더 테이블’. 안현민셰프는 퀭한 눈을 바짝 치켜들고 조리를 한다. 며칠 전에 베이징에서 입국해 밤을 꼬박 샜다. 두부로 만두피를 만들어 그 피에 골뱅이무침을 싼다. 빨간 쇠고기를 밤톨 만하게 말아 파란 중국식 숟가락에 얹는다. 손이 떨린다. 아보카도를 깎는 데만 6~7시간이 걸렸다. ‘힘내자! 정셒’ 행사를 찾은 60여명의 음식을 만들어야한다. 그는 중국국영방송인 <시시티브이>(CCTV)에 출연해 김치찌개 같은 평범한 우리음식을 소개한 스타 셰프다. 베이징의 그의 레스토랑 ‘원 포트 바이 쌈’은 컬리플라워가 들어간 떡볶이 등을 먹으려고 중국인들이 줄 서는 곳이다. 이 행사를 위해 자비를 털어 날아왔다.

안현민셰프의‘표고전’. 박미향 기자
안현민셰프의‘표고전’. 박미향 기자

본래 이 쿠킹 스튜디오의 주인은 정신우 셰프다. 지금 그는 도마와 칼을 들지 않는다. 흰색 요리사복장 대신 하얀 환자복을 걸치고 올해 초 발병한 흉선암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요리업계 종사자 30여명이 뭉쳐 투병중인 그를 돕는 ‘힘내자! 정솊’를 준비했다. 그의 소식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요리사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시작은 단순했다. 행사를 기획한 세계음식문화연구가 강지영씨가 ‘페북을 안하는 사람이 페북을 합니다’란 제목의 장문의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듬뿍 담았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백지원, 박종숙, 김수진, 메이킴, 이보은씨 같은 유명한 요리연구가부터 푸드스타일리스트 홍신애씨, <월간 파티시에>와 <쿠켄>의 이명원 이은숙 편집장, 음식칼럼니스트 유지상씨 같은 글쟁이까지 요리업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뭉쳤다.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이들은 바자회와 안현민 셰프의 디너 행사를 마련했다.

안현민셰프의 ‘두부피에 싼 골뱅이무침’. 박미향 기자
안현민셰프의 ‘두부피에 싼 골뱅이무침’. 박미향 기자

저녁 7시 티켓을 구입한 이들이 하나둘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파티스타일리스트 김채연씨는 “동종업계다 보니 도와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갑자기 세상을 뜬 윤정진 셰프의 지인이기도 한 조경설계사 안상수씨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셰프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에 동참했다. 안씨는 언론에 소개된 ‘땅콩집’의 조경을 한 이다.

좁은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60여명은 안셰프의 ‘모던 코리아 퀴진’을 맛보고 감탄한다. ‘거위간 만두’를 먹고 옅은 안개와 잔잔한 파도를 떠올린다. 낮에는 100여명이 식초, 간장, 전통장, 오븐, 각종 주방기구, 요리책 등 다채로운 바자회 물품을 구매했다.

안현민셰프의 ‘트러플 육회’. 박미향 기자
안현민셰프의 ‘트러플 육회’. 박미향 기자

행사소식을 접한 샘표식품, 매일유업, 휘슬러, 테팔, 죽장연, 농심, 행남자기 같은 업체들과 <에쎈>, <바 앤 다이닝> 같은 잡지사도 제품을 기부했다. 행사를 찾지는 않았지만 기부금을 전한 이들도 있었다. 에드워드 권은 고액을 기부하고 음식관련 동호회 회원들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다. 홍보전문업체 플랜이엘의 강태안대표는 팔을 걷어붙이고 와인을 서빙하고 설거지를 했다.

행사를 찾은 이들이 안현민셰프에게서 메뉴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미향 기자
행사를 찾은 이들이 안현민셰프에게서 메뉴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미향 기자

요리연구가 백지원씨는 “조금씩 힘을 모으면 빛이 보인다. (사회적으로) 이런 일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종숙씨는 “정신우씨가 내가 만든 식혜, 내가 만든 장을 (목에) 넘길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 200여명이 마음을 모아 정신우씨의 쾌유를 빌었다. 강지영씨는 “처음 예상했던 모금액보다 4배 이상이 모였다. 1천만원이 넘는다. 전부 신우씨에게 전달할 예정이고 이후 계좌는 계속 열어 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벽에 걸린 행사 포스터. 박미향 기자
벽에 걸린 행사 포스터. 박미향 기자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