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용산구 한강로의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이충연 전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이 요즘 칼국수집 요리사로 변신중이다.
이충연 전 용산철거대책위원장
특별사면 뒤 ‘요리사’로 변신중
‘투쟁 인연’ 두리반서 국수 ‘수업’
“용산참사 기억하는 식당 열 것”
특별사면 뒤 ‘요리사’로 변신중
‘투쟁 인연’ 두리반서 국수 ‘수업’
“용산참사 기억하는 식당 열 것”
“칼국수 한번 맛보세요. 제가 했지만 맛없다고 생각 안 해요.”
음식점 ‘두리반’에서 칼국수를 내놓는 이충연(41)씨의 손은 어색하지만, 얼굴은 웃음가득하다. 이씨는 5년 전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불붙는 망루에서 뛰어내렸다가 중환자실에서 3일 만에 눈을 떴다.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그가 요즘 요리사로 변신중이다. 칼질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그가 노란 요리사 앞치마를 둘렀다. “출소 후 바빴죠. 농성장도 가고. 도움 주신 분들 감사 인사도 다니고. 그러다 1년이 지나가는데 생계를 고민하게 됐어요. 아내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상근자인데 저보다 활동을 더 잘해요. 그래서 생계는 제가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죠.” 보름째 두리반 주방에 출근해 낯선 칼질을 하는 이유다.
아직은 ‘수습 요리사’. 옆에는 ‘두리반’ 주인 안종려(56)씨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씨의 요리선생이다. “칼국수 국물은 더 맑아야 한다.” 타박은 하지만 호랑이 같은 꾸지람은 없다. 되레 “성실한 날라리 학생”이라면서 웃는다.
출소 뒤 그는 여느 40대 명퇴자들처럼 좁고 가파른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손을 쉽게 내밀지 않았다. 맨 먼저 평소 좋아했던 냉면집을 무작정 찾아갔다. 어릴 때부터 지나다녔던 친근한 냉면집이다. 체인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싸늘한 답이 돌아왔다. 가족에게만 체인점을 내준다는 이유였다.
실망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유명한 냉면 체인점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맛도 없고 주는 고기의 질이 너무 좋지 않아” 미련 없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 준 이가 두리반 주인 안씨다. 이씨의 아내 정영신(42)씨가 두리반 강제철거반대 투쟁에 참여해 안씨와 맺은 인연의 끈이 그를 묶어 세운 것이다.
“배우다 보니 정말 재밌어요. 여러 식재료가 모여 하나가 돼서 맛을 낸다는 게 신기해요.” 이씨는 마치 미슐랭가이드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에 첫발을 디딘 요리사 같다. 오전 10시30분께 출근해 채소 다듬고 육수 끓이는 모든 일이 즐겁다. 정오, 손님들이 밀려오면 밀가루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쭉쭉 면을 뽑는다. 열흘 만에 칼국수 담당을 꿰찼다. “면 익힐 때 이제는 시계 안 봐요. 국자 저어보면 금방 알죠. 익었다 싶으면 속도가 느려지거든요. 그러면 바지락 넣어요.” 술술 조리법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왕만두’, ‘김치전골’ 등 갈 길이 멀다. “만두 1개 빚는데 전 40초 넘게 걸리는데 사장님은 10초도 안 걸려요.” 내년 이맘때 용산이나 시청 근처를 두리번거리면 이씨의 ‘두리반 2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꿈은 용산을 기억하는 겁니다. 용산참사 만화나 그림을 벽에 걸 겁니다. 문화공연이나 토론의 장으로도 개방 할 생각입니다.” 착한 식당 주인의 포부도 밝힌다. “음식의 맛은 재료가 좌우해요. 좋은 재료, 제철재료 쓸 겁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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