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실씨
일본서 ‘치유 카페’ 연 정현실씨
원전사고 보며 음식치유에 관심
한국어 교실 통해 문화 전파도
원전사고 보며 음식치유에 관심
한국어 교실 통해 문화 전파도
“한국의 약선요리로 일본인들을 힐링합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3년, 방사능의 공포 속에서도 굳굳히 살아왔다. 남들은 지옥의 도시인 양 두려워하지만 삶의 터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일본인들의 불안과 아픔을 한국 전통요리로 치료해주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사고가 난 핵발전소로부터 60㎞ 떨어진 후쿠시마 시내에서 ‘이야시(일본어로 치유)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정현실(53·사진)씨는 와세다대학에서 한-일 비교신화를 연구하던 학자였지만, 지금은 요리사 차림으로 한-일 문화교류의 선봉에 서 있다.
1984년 일본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왔다가 일본인과 결혼한 그는 남편이 후쿠시마로 전근하는 바람에 2000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교류를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후쿠시마 한국어·한국문화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2006년에는 ‘후쿠칸넷’이라는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했다.
3년 전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많은 이재민이 피난소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정씨는 이웃들에게 “프라이팬과 식용유를 가지고 마을회관으로 모이자”고 권했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식 부침개를 만들어 피난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주먹밥 등 비상식량에 지쳐 있던 일본인들은 한국의 정감 있는 음식에 감동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일본인들의 다친 마음을 한국 전통의 약선요리로 치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한의사 할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익숙한 각종 약재를 이용한 음식을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냈다. 토란 잎, 고구마 줄거리, 도라지 뿌리 등으로 나물을 만들고, 생강을 갈아 차를 끓였다. 2년 전부터는 80년 된 일본 고가옥을 개조해 이야시 카페를 열었다. 후쿠시마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어 교실도 열어 한국말을 가르치고, 음악회 등을 열어 한국 문화를 전파했다. 카페 곳곳에는 한복과 인형 등 전통 소품들로 장식했다. 지난해에는 18차례에 걸쳐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가설주택을 돌며 김치를 담가 나눠 주기도 했다. 오는 21일에는 한국 그룹 오션(5tion)의 공연도 연다. 한-일 문화교류의 명소가 된 것이다.
지난 2일 이야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손수 두릅꼬치 요리를 하며 “요즘은 한국인들의 과도한 걱정이 오히려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외부의 방사능에 대한 왜곡되고 과장된 정보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요. 끝까지 삶의 터전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세요.”
후쿠시마/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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