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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1단벽 깨기’의 지혜 / 성한표

등록 2014-01-23 21:01수정 2014-01-24 14:17

성한표 언론인
성한표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나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같은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이를 수습하는 일에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그의 말과 조처들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그의 안이한 시국 인식에서 나오고, 그 책임의 큰 부분은 언론에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시국집회의 초점은 국정원 개혁과 철도 및 의료 등 기간산업 민영화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시정 조처를 촉구하는 데 있다. ‘정권 퇴진 운동’은 이런 시정 요구가 끝내 거부되면 벌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집회의 성격은 ‘정권 퇴진 운동’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거의 볼 수 없고, 간혹 보도되더라도 ‘대통령 사퇴’ 등의 피켓을 든 장면을 부각시킨 사진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거리에서는 노동자들이 연일 집회를 계속하고 있고,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모든 것’을 걸고 싸웠던 1970~80년대 민주화 투쟁 시대의 ‘투사’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지난 20여년 동안 민주적 시민운동을 이끌어 온 8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 종교계의 시국선언과 집회가 줄을 잇는다. 올해 내내 조용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징표들이다. 하지만 신문만 보고 있으면 시국은 조용하다.

한국 언론자유의 위축에 대해 국내외에서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자들이 자기 특유의 관심거리에 집착하고, 특별한 소재를 쫓아다니는 빗나간 ‘열심’ 때문에, 사회의 큰 흐름을 놓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벌어지는 대규모 집회가 아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시국집회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그렇다.

실개천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는 것처럼, 시국의 결정적 순간도 끊임없이 진행되는 작은 집회들이 모여 이뤄진다. 집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편집 간부들은 이와 같은 관점으로 집회들을 주목해야 시국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보도 기술상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씩 보면 ‘작은 사건’일 뿐인데,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신 시절 기자들의 경험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 학생 시위는 무조건 1단 기사로 처리되었다. 시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면 이를 묶어 큰 기사로 다루는 것이 편집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럴 때도 대학별로 1단의 토막 기사를 만들어 신문 지면의 여기저기에 흩어버리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권력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이 펼친 운동이 ‘1단벽 깨기’였다. 1단의 토막 기사들이지만, 이들을 신문 1면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촘촘히 나열하여 머리기사만큼 주목도를 높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국의 흐름에 대한 언론의 기능은 흐름을 바꾸는 일이라기보다는 예보에 가깝다. 언론이 태풍이나 폭설의 예보처럼 시국의 큰 흐름을 짚어주면, 권력이 적절한 후퇴와 양보를 함으로써 파멸적인 어려움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박근혜 정부가 정치·사회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여, 시대정신과 맞서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들의 올바른 사태 인식을 가능케 할 언론의 역할이 매우 크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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