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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보이스피싱 중

등록 2014-01-14 15:23

이병헌·탕웨이·김C처럼 목소리가 좋은 이들은 광고에 직접 나오든 내레이션만 하든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팬택 제공, 코오롱스포츠 제공, 벼룩시장 제공
이병헌·탕웨이·김C처럼 목소리가 좋은 이들은 광고에 직접 나오든 내레이션만 하든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팬택 제공, 코오롱스포츠 제공, 벼룩시장 제공
[문화] 다른 일을 하다가 소리를 듣고 이게 뭐지 하면서 보게 되는 시대
소리는 눈감을 수 없는 선천적 소구력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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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얼굴을 무조건 썼죠. 돈 들어가는 건 비슷하니까.”

지난해 ‘단언컨대’로 대박을 터뜨린 휴대전화 베가 광고를 만든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손윤수 국장은 그렇게 말했다. 엄청난 돈을 주는 ‘빅모델’을 쓰는 광고의 지상 과제는 무조건 노출, 최대한 노출이었다. 광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빅모델이 나오고 또 나오고. 최대한 매력적으로 모델을 보여주려 애쓰고. 그런데 최근엔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가 주인공이 되는 광고가 늘었다. 베가 광고도 제품을 집중해 보여주고 이병헌의 목소리만 얹는 경우가 적잖다. 비주얼에 견줘 ‘올드 매체’라 여겼던 목소리의 귀환이다.

‘올드 매체’ 목소리의 귀환

1월9일 오후 2시8분, 한 케이블 채널을 보고 있었다. “당신만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도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벼룩시장 광고가 나오더니 다음은 굶주리는 어린이를 돕자는 유니세프 광고가 나온다. 벼룩시장은 김C, 유니세프는 김연아의 내레이션이었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나 보통 사람이 제품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여기에 유명인의 목소리를 더하는 광고가 많아지고 있다. 광고인들은 남녀노소 외국인의 따뜻한 일상이 한참 나오다 끝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당신의 마음은 긴 여행을 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을 더한 현대자동차 광고를 이런 흐름의 ‘중간 시조’쯤으로 꼽는다. 돌아보면, 하정우는 “나는 1974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로 시작하는 초코파이 광고의 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았다. 팬들은 ‘2분짜리 다큐 작품’이라고 불렀다. 그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광고, “만약 당신이 달리기를 좀 하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나이키 광고의 내레이션을 했다. 왜 얼굴을 쓰지 않고 소리만 썼을까? 이것은 일종의 보이스피싱?

잠시 더하면, “빨라진다오~ 빨라진다오~” 하는 올레(Olleh) LTE 광고도 소리로 히트를 쳤다. 그러고 보면 비주얼 쇼크로 화제를 모으는 광고가 한동안 없었다. 박진희 이노션 국장은 “광고주와 광고회사 사람들만 비주얼에 집중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웃었다. 그는 “다른 일을 하다가 소리를 듣고 이게 뭐지 하면서 보게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점점 바빠진 일상,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는 방식이 일반화된 시절, 목소리 좋은 배우들이 호시절을 맞았다. 빅모델의 포화상태에 비주얼로 차별화하기 힘들다면, 목소리의 정서로 접근하는 편이 효과적인 것이다. 어차피 유명인들이 나와서 제품을 쓰고 어쩌고 해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비주얼은 좀 떨어져도 나 같은 이들이 나오고 친숙한 유명인의 목소리를 얹는 편이 설득력이 있다.

‘기억하느냐’에서 ‘긍정적으로 느끼냐’로

스토리텔링이 강화되면서 목소리는 더 중요해졌다. 안주아 동신대 교수(광고홍보학)는 “광고가 짧은 시간에 인상을 남기려면 감동과 여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엔 얼마나 기억(리콜)하느냐가 중요했다면, 요즘엔 얼마나 긍정적으로 느끼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교수는 “기억을 높이기 위해 예전엔 로고송이나 슬로건을 많이 썼다면, 요즘엔 스토리와 맞물려 읊조리듯 얘기한다”고 지적했다. 스토리텔링을 쓰는 광고 폭도 넓어졌다. 예전에는 커피와 음료수 같은 기능성이 덜 중요한 저관여 제품 광고에 이 기법이 많이 쓰였다면, 이제는 자동차같이 고관여 제품에도 쓰인다. 이런 흐름에서 라디오 광고를 떠올린 사람도 있다. 이재록 청주대 교수(언론정보학부)는 “소리만 있는 라디오 광고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듯, 인물이 직접 나오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는 광고도 그 인물의 캐릭터와 연결돼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근원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목소리를 통해 정보의 47%를 얻는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리에는 눈감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현우 한양대 교수(광고학부)도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7%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비언어적 정보인데, 목소리는 비언어에 속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한국은 감성적 광고가 많은 나라다. 황장선 중앙대 교수(광고홍보학)는 “미국 광고가 제품 중심이라면, 한국은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다”며 “감성적 메시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늘면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는 유명인도 늘었다. 이렇게 친숙해진 유명 배우들이 내레이션을 하던 성우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배명진 소장은 “성우의 목소리에는 캐릭터가 부족하다”며 “성우에 비해 배우의 목소리는 더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전달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최대의 히트작 ‘단언컨대’는 사실 생경한 단어다. 달리 말하면 문어체. 그런데 이런 말이 통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손윤수 국장은 “알지만 낯설어 귀에 걸리는 단어”라고 표현했다. 이병헌을 모델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그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선두가 아닌 베가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줄 남성적인 목소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배명진 소장은 이병헌의 목소리에 대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목소리”라며 “치아와 목젖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섞여 있다”고 했다. 배우 김수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김C에 대해선 “‘마이 웨이’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배 소장은 “고지식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평범하지만 독창적”이라며 “시장통 사람들이 나오면 이병헌보다 김C의 목소리가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시청각에서 청각이 절반은 된다

한국어가 아닌데도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목소리가 있다. 코오롱스포츠 광고를 했던 중국 여배우 탕웨이의 목소리에는 비주얼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광고는 모델인 탕웨이와 장동건이 서로에 대해 말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장동건이 나오는 광고에는 탕웨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탕웨이가 나오는 편에는 장동건의 목소리가 얹혔다. 장동건은 “그거 알아요?”, 탕웨이는 “두 유 노?”(Do You Konw?)로 시작해 브랜드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광고는 끝난다. 이렇게 그냥 말하는 것 같지만, 여기엔 치밀한 전략이 있다. 이 광고를 제작한 박진희 국장은 “탕웨이는 목소리 자체도 좋지만 연기를 잘한다”고 말했다. 유명인의 녹음은 짧게는 30분 안에 끝나는데, 탕웨이는 광고에서 어떤 내용이 어떻게 전달돼야 하는지 2시간 동안 질문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녹음에 3시간이 걸렸다. 박진희 국장은 “목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음악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서 배경음악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주아 동신대 교수는 “소리를 없애는 것도 소리를 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끝으로 방송 광고에서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냐는 질문을 던졌다. 안 교수는 “시청각 매체지만 청각이 절반은 된다”고 답했다. 우리는 사실 보는 것 같지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뮤직드라마 같았던 <응답하라 1994>에서도 실은 지나간 유행가에 실린 목소리에서 얻는 위안이 가장 중요했는지 모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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