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교수
2014년 ‘미디어 전망대’ 첫 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매개한다는 ‘미디어’(media)의 원래 뜻대로, 올해는 미디어가 찢어지고 갈라진 한국 사회의 소통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바로 기능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공영방송과 사영언론 모두 권위적 체제로 기울어진 한편, 미디어의 사회적 기능보다는 경제적 기능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방송 공정성을 위하여 가동되었던 국회의 ‘방송 공정성 특위’는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지난해 11월 말 끝났다. 이어서 12월에는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는데,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것은 제목처럼 방송의 산업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소통’과 ‘창조경제’가 국가적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소통은 진작에 사라지고 창조경제만 남았다. 소통이 전제되지 않은 미디어는 창조적일 수 없고, 경제적일 수도 없다. 익숙해진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익숙하게 하는 순환 과정이 창조이다. 기존 방식에 도전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바에 의문을 품는 것이 장려되지 않는다면, 아니 도리어 제한된다면 창조성은 발현될 수 없다. 자유로운 소통의 분위기가 없는 창조경제는 윤활유 없이 온 힘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있는 녹슨 기계와 같다.
방송 분야 창조경제론인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도 소통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 대신 ‘경쟁력’, ‘시장’, ‘매출’, ‘성장’ 등만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개입하여 창조 인재를 육성하고, 콘텐츠 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회 및 개별 조직 내에서 자유로운 소통 분위기가 없다면 이러한 정책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은 정권에 예속되어 있고 주류 신문과 이것들이 운영하는 종합편성채널이 ‘있는 것을 지키자’는 보수 일색인 상황에서 창조경제를 말하기는 무색하다. 한국 최초 민영방송으로서 5공화국 시절 이외는 뉴스를 해온 <기독교방송>(CBS)에 “종교방송이니까 뉴스를 해선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을 하는 정책 당국이 창조적 미디어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을지 의심도 든다.
경제적 측면 이전에 사회적 차원에서도 소통 문제는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세대간, 계층간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 통합은 개론서에 나오는 미디어의 기본 기능이지만 현 미디어는 전체 구도상으로, 또한 개별 미디어의 행태상으로도 통합은커녕 분열을 조장한다. 미디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청이 파편화하는 만큼 시민들이 자신의 선호 및 취향과 다른 세계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개별 미디어도 소수 시청자나마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목표 수용자층을 좁히고 취향이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예능·교양·드라마와 같은 채널들이 특정 수용자들에게만 봉사할 때 문화적 단절이 생긴다. 종합편성채널과 같은 보도 미디어의 정치적 편향성은 사회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게 되니 더 문제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노년층은 보수신문·지상파방송·종편채널을 통해, 청년층은 인터넷을 통해 각각 다른 해석에 노출되면서 세대간 간극은 더 커지고 있다.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미디어의 소통 기능 회복은 시급한 문제다. 미디어 관련 정부 부서들이 산업적 측면만 앞다퉈 다루려 하지 말고 소통 문제에 우선적으로 나서야 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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