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김치 역사 3000년…김장은 ‘공동체 나눔문화’

등록 2013-12-05 20:15수정 2013-12-06 13:23

인류무형유산 지정된 ‘김장’

고려시대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무장아찌와 소금 절임 기록 등장
‘농가월령가’ 10월편에 김장 묘사

70년대 직장인에게 ‘김장보너스’
2000년대 저소득층 나눔행사로
“김장은 공동체 배려·소통의 장”
출판사 어크로스 대표 김형보(41)씨는 이맘때가 되면 준비하는 날이 있다. 김씨는 ‘김장절’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차에 가득 싣고 강원도 춘천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간다. 누이는 무채, 굴, 젓갈 등 갖은 양념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부산에 사는 어머니까지 도착하면 본격적인 김장행사가 진행된다. “오랜만에 조카도 보고 수육을 배추에 싸먹는 이날이 축제처럼 즐겁다”고 한다. 들고 온 빈 통에는 김치가 차곡차곡 쌓였다. 채소를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식품은 다른 나라 문화권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족이나 이웃 등 공동체를 중심으로 비슷한 시기에 대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은 드물다. 5일 유네스코가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학자들은 대략 3000년 전부터 김치가 있었다고 본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는 순무장아찌와 소금 절임 관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이전의 김치는 각종 채소류를 절인 정도의 식품이었다. 고추가 들어온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의 흔적이 보인다. 18세기 중반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는 배추김치를 ‘숭침저’라 하고 무려 34가지의 절임채소류와 오늘날 같은 빨간 김치에 관한 기록이 있다.

<농가월령가>의 10월 편에는 김장하는 모습이 세세히 기록되어있다. ‘무, 배추 캐어들어/김장을 하오리라/앞 냇물에 정히 씻어/함담을 막게 하소/양지에 가가(假家)짓고/짚에 싸 깊이 묻고.’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불을 덜 사용했던 우리는 튀기는 요리보다 채소 절임요리가 발달했고, 땔감도 귀해서 한 번 담가두면 간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중요한 양식이 됐다.

세계김치연구소의 박채린 박사는 “김장은 품앗이와 나눔 문화를 형성했는데, 우리 밥상에서 밥, 국과 함께 김치가 주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길게는 1년, 최소 3개월 이상 먹어야하는 많은 양의 김치를 추운 11월께 3~4일 만에 한꺼번에 담가야했다”면서 마을공동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부엌살림을 책임지는 부녀자 혼자 치러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큰일이었다는 것이다.

노동력을 제공한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식사를 대접하고 김장김치를 나눠주었다. 김장은 또한 가장의 경제력을 검증받는 일이었다. 70~90년대 직장인들이 받던 ‘김장 보너스’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신용카드 사용도 쉽지 않던 시절 3~4개월치 월급과 맞먹는 비용이 김장에 들어갔다. 70년대 한 일간지는 남편의 김장 보너스를 기다리는 주부의 심정을 보도했다. ‘김장용 고추가 질이 좋고 싸다고 어제 1관을 시장에서 들여왔으나 도저히 엄두를 못 내고 아빠의 김장 보너스가 나오면 값이 비싸더라도 그때 사두어야 할까 보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궁중음식 연구원 회원들이 충청도의 한 궁중음식 이수자의 식문화 체험관에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궁중음식연구원 제공
지난달 궁중음식 연구원 회원들이 충청도의 한 궁중음식 이수자의 식문화 체험관에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궁중음식연구원 제공

요즘 기업들은 김장 보너스 대신 김장 체험행사나 대규모 김장 나눔 행사를 한다. 동원에프앤비는 참가비 8만원을 받고 김치 10㎏을 제공하는 ‘동원 양반김치 김장투어’를 한다. 2004년부터 매년 한국야쿠르트는 서울 시청광장 등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와 임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김장을 하고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해왔다. 올해는 6만5000포기를 전국 2만5000여 가구에 10㎏씩 전달했다. 전통을 이은 김장문화의 진화다.

2000년대 김장은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예전처럼 마을공동체가 나서는 경우는 줄었지만 흩어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로 변모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여명의 연구원들이 모여 김장을 한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원장은 “김장 풍속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눔과 배려라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는 활동”이라면서 이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에 대해 “세계인들도 우리 김장문화를 공유하고 소통하자는 차원이기에 기쁘다”고 말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