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교수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 활동 시한이 이달 말로 다가왔다. 방송공정성특위는 올해 초 정부조직법안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다가 타협책으로 등장한 한시 기구이다. 원래는 지난 9월 말에 이미 끝나는 것이었지만 그때까지도 별 성과를 못 내자 2개월간 연장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렇다 할 초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어 아쉬울 게 없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회의 출석 등 특위 활동 자체에 미온적이라고 한다.
공정성특위의 목적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 장치 마련이다. 이 중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지난 9월 말에는 여야 동수로 추천한 산하 자문위원회가 몇 가지 합의안을 낸 바 있다. 그러나 특위에 소속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추천한 학자들도 뜻을 함께한 ‘특별다수제’와 ‘공영방송 이사 증원’에 반대하였다. 특별다수제란 공영방송사 사장 선임 때 이사들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의 의결정족수가 필요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공영방송사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다수인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만이 아니라 야당 추천 이사 일부의 동의도 필요하도록 하는 안이다. 공영방송 이사 증원은 현재 공영방송 이사 수가 여권에 너무 편중되어 있으므로 야권 수를 조금 늘려 보정하자는 것이다.(여야 비율이 <한국방송>(KBS)은 7대4, <문화방송>(MBC)은 6대3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전문가들은 한국 공영방송의 불공정성은 주요 관련 직위들이 정파적으로 뽑히는 데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아왔다. 우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여권에서 3명, 야권에서 2명을 임명함으로써 여권은 안정적 의결정족수를 확보한다. 이들이 한국방송 이사들과 문화방송 소유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을 여권 편향적으로 임명한다. 여권 추천 다수 이사들은 다시 정권의 뜻에 맞는 사장을 뽑는다. “추천의 빚”을 잊지 않는 한국의 후견주의 정치 문화는 공영방송 불공정성의 근인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공영방송의 중립을 위해 가장 폭넓은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방안이 바로 특별다수제이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과 민주당 전병헌 의원도 같은 뜻을 담은 법률안을 각각 낸 바 있다.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장을 뽑는다. 물론 합의가 안 될 경우 선임 지연의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일방적이지 않은 합의를 해내라는 게 이 방식의 정신이다. 일부에서 국회선진화법의 예를 들면서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이라며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다수제는 사장을 뽑을 때만 적용하므로 “아무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
사실, 이밖에도 필요한 방안들이 더 있다. 앞서 언급한 이사 증원과 더불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치 심의 타파, 회의록 공개, 해직 방송인 복직 등등이 그것들이다. 물론, 이 모두를 실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공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보았듯이 당대 정권이 맘에 안 들면 각종 탈법과 편법을 동원해 누구든 잘라낼 수 있다. 또한 제도의 취지를 뛰어넘는 정파성의 역학도 여전히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가장 최소한으로,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그나마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것이 특별다수제인 것이다. 여당이 이것마저 거부하면 공정성 확보를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대선 공약은 파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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