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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고개만 숙이면 아주 작은 도화지가 10개

등록 2013-10-25 19:38수정 2013-10-27 15:00

손톱은 네일 아티스트 지요씨에게 작은 도화지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지요씨만의 색깔 옷을 손톱에 입힌다. 손톱에 입힌 색깔 하나로 우울했던 사람도 웃게 만든다. 서울시 강남구 자신의 네일숍에서 인터뷰에 응한 지요씨가 치장한 자신의 손톱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손톱은 네일 아티스트 지요씨에게 작은 도화지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지요씨만의 색깔 옷을 손톱에 입힌다. 손톱에 입힌 색깔 하나로 우울했던 사람도 웃게 만든다. 서울시 강남구 자신의 네일숍에서 인터뷰에 응한 지요씨가 치장한 자신의 손톱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몸] 나의 몸 
⑪ 네일아티스트 지요의 손톱
▶ 손톱이 없다는 상상을 해보셨나요?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손톱이지만, 막상 없다면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기 어려워집니다. 우리 몸의 작은 부분이지만 다 쓸모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손톱은 또다른 기능으로 각광을 받습니다. 손톱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예술을 실현하기도 하는데요. ‘네일 아티스트’ 지요씨를 만나 손톱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손톱은 피부가 변해 딱딱해진 단백질 조직이다. 손끝에 굳이 딱딱한 조직이 왜 달리게 됐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전문가들은 손가락 끝을 보호하며 물건을 잘 잡을 수 있도록 피부가 진화한 결과물로 추정한다. 손톱이 있어 피부를 긁을 때 시원함도 느낄 수 있다. 평소 존재감은 없지만, 없으면 무척 불편한 게 손톱이다.

손톱은 그러나 인류에게 기능적인 공간만은 아니었다. 오랜 역사 동안 지배계급은 여러 액세서리와 옷으로 자신이 피지배계급과 다른 존재임을 과시해왔다. 손톱은 지배계급의 존엄을 표현하는 공간이었다.

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인들은 손톱의 색상으로 신분을 구분했다. 왕과 왕비는 진한 적색, 그 이하 계급으로 갈수록 색이 옅어졌다. 15세기 명나라 왕조의 귀족들은 손톱에 빨강·검은색을 칠했다고 한다. 손톱을 길게 기르는 것도 하나의 표현 수단이었는데 17세기 중국 상류층은 5인치(12.7㎝) 정도 손톱을 기르고 다니기도 했다.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손톱 관리는 대중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손톱에 파우더 등을 바르며 윤기가 나도록 관리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아예 손톱 관리 산업이 성장해 붐을 이루었다. 이 시기 착안된 손톱 관리 기구들은 매니큐어 제조회사에 판매되며 ‘네일아트’(손톱예술)가 싹트는 기반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현재 머리방보다 흔한 곳이 ‘네일숍’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네일숍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손톱은 일주일에 한번씩 다듬으면 되는 평범한 신체 일부가 아니라 관리와 예술의 대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가수 손담비도, 배우 김사랑도…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네일숍(아쥬레)에서 인터뷰에 응한 ‘네일 아티스트’ 지요(예명)씨는 한국에서 손톱 관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지요씨의 열 손가락 손톱에는 한편의 추상화 같은 독특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엄지손톱에는 높이 0.2㎜ 금색 뿔이 달려 있었다. 지요씨만의 작품이었다.

“핼러윈데이(10월31일) 맞아서 손톱 장식을 해본 거예요. 손톱은 저에게는 작은 도화지예요. 내 개성을 표출하고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 지금 기분이 어떤지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지요. 또 손톱은 귀걸이와 목걸이처럼 나를 표현하는 액세서리이기도 해요.”

지요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네일 아티스트다. 연예인 고객들이 많다. 가수 손담비씨는 1~2주에 한번씩 지요씨에게 손톱 관리를 맡긴다. 무대에 서는 날은 좀 강하고 화려한 색깔로, 평범한 날은 도회적이고 차분한 색깔로 옷을 입는다. 박은지 기상캐스터도 지요씨를 자주 찾는다. 시청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깔끔한 색깔로 손톱을 꾸민다. 가끔은 손톱의 색깔만 봐도 그가 대충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록밴드 베이시스트 그만두고
일본 가서 네일아트를 배웠다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
기분을 보여줄 수 있는
손톱이란 공간에 빠져들었다 

손톱은 몸을 비추는 거울
색깔이 하얘지면 빈혈
세로선이 생기면 노화…
반대로 손톱 손질 한번으로
마음 상처 보듬을 때도 있어

지요씨가 손톱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가장 가깝고 쉽게 눈에 띄는 도화지가 손톱이어서다. 머리와 얼굴은 거울을 들여다보아야만 만질 수 있지만 손톱은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기만 하면 된다. ‘쉽고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 색깔을 입히면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호기심이 그를 지금의 네일아트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지요씨는 20대 중반까지 원래 록밴드 ‘스키조’의 베이시스트였다. 가수 신해철이 운영하는 소속사의 관리를 받는 밴드였다. 하지만 2007년 음악인으로서의 미래에 갑자기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밴드를 탈퇴한 지요씨는 일본으로 네일아트를 배우러 훌쩍 떠났다. 일본의 네일아트는 디자인이 뛰어난 편이었고 아직 한국에 정착하지 않은 ‘젤 네일’ 시술이 발달돼 있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음악 외에도 ‘색깔’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손톱에 색깔을 입히면 내가 즐겁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일본의 네일아트가 앞서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일본의 권위 있는 네일 학교 ‘프린세스’에 입학해 공부를 했어요.”

2009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와 유명 네일숍의 매니저 생활을 하던 지요씨는 독창적인 자신만의 네일아트로 곧 인정받게 되었고 2011년 5월 네일숍을 차렸다. 입소문이 퍼져 유명인사와 연예인들이 지요씨의 숍으로 매일같이 찾아와 관리를 받았다.

첫인상을 볼 때 손톱까지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일단 눈을 볼 것이다. 이어 얼굴의 전체적 윤곽과 머리 모양, 옷차림 등을 살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입사 면접 같은 아주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러 가는 날이라면? 그런 날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속옷마저 신중하게 고르게 된다. 손톱 관리도 필수다.

지요씨의 숍을 찾는 손님들은 특별한 손톱 관리 덕분에 중요한 날을 잘 넘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배우 김사랑씨가 지난해 토리버치(유명 디자이너) 뉴욕 컬렉션에 참가했을 때 손톱에 토리버치 마크를 그려 갔어요. 토리버치가 그걸 보고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말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해요. 손톱 하나로 어색한 관계도 금방 극복할 수 있지요.”

“저희 숍에서 손톱 관리를 받은 어떤 외국인은 실수로 마트에서 병을 깼는데 직원이 ‘손톱이 너무 예쁘다’며 그냥 가라고 했다고 해요. 손톱 덕분에 실수를 만회하기도 합니다.”

올가을 유행 색깔은 ‘와인빛 버건디’

그러나 아직 네일아트는 국내에서 하나의 독립된 예술 영역으로 자리잡지 못한 편이다. 지요씨가 가장 아쉬워하는 점이다. 지요씨의 숍에는 손톱 외에 머리를 관리하는 공간이 함께 있다. 법적으로 지요씨의 숍은 네일숍이 아니라 머리방인 셈이다.

국내에서 네일숍을 차리려면 반드시 미용사자격증을 따야 한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은 네일 미용업을 머리 손질 등과 분류하지 않고 있다. 머리 손질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없는 네일 미용업 종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미용사자격증을 따왔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는 최근 일반미용업에서 ‘손톱과 발톱의 손질 및 화장’ 문구를 삭제해 이를 네일 미용업의 고유 업무로 구분하는 새로운 공중위생관리법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매니큐어는 라틴어 ‘Manus’(손·hand)와 ‘Cure’(보호·care)의 뜻을 담은 합성어다. 지요씨는 그래서 매니큐어를 바를 때 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손님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손톱의 성분은 90% 이상이 단백질이다. 머리칼과 같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겉으로 신호가 온다. 손톱은 몸이라는 복잡한 우주를 비추는 거울이다.

손톱은 분홍색에 광택이 나야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손톱이 분홍색인 이유는 손톱 밑에 가득 분포하고 있는 혈관 때문이다. 피가 부족하거나 다른 병이 있으면 손톱의 색에도 영향을 준다. 손톱이 하얘지면 빈혈, 청백색이면 심장이나 폐에 이상이 있음을 의심해보면 된다.

가끔 손톱에 선이 그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세로로 솟아오른 선이 생기면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다. 가로로 선이 생기면 건강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병이 생기면 손톱 성장이 억제됐다가 다시 자라곤 하는데 이때 손톱에 가로선이 생기게 된다. 손톱에 보이는 반달 모양의 무늬가 너무 엷어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신호다.

손톱이 자라는 모양을 살펴봐도 건강상태를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손톱 가운데가 움푹 파여 숟가락 모양처럼 자라고 있으면 빈혈, 곤봉 모양으로 양옆이 퍼지면서 손톱이 자라면 심장이나 간 질환을 의심해볼 만하다.

손톱 손질 한번으로도 가슴속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지요씨는 말한다.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며 기분을 전환하듯 손톱 손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 방송작가가 며칠 전 손톱 손질을 받고 난 뒤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왔어요. 손톱을 예쁘게 꾸미고 나니 복잡했던 마음도 정리되고 잠까지 잘 잤다고 하더군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저 역시 ‘힐링’ 되는 느낌입니다.”

지요씨는 올가을 유행 손톱 색깔로 ‘와인빛 버건디’(Burgundy·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적포도주의 이름. 청색 기미가 있는 적색)색과 짙은 보라색, 또는 금색을 추천했다. 우울해지기 쉬운 가을에 예쁜 색으로 손톱에 옷을 입혀 기분 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끔은 손톱으로 그 사람의 인품을 살펴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젤 네일로 관리받은 손톱의 상태는 3주 정도 유지되는데 그 기간이 미처 못 되어 숍을 찾아오는 분이 있어요. 성격이 급한 분들임을 알 수 있지요. 또 손톱에 미세한 금만 가도 숍을 찾아오는 분은 섬세한 분이고, 손톱이 부러진 채로 다니는 분들은 털털한 경우라고 볼 수 있지요.”

여자 7 남자 3의 비율로 매장 찾아와

1~2년 전부터는 우리나라도 매니큐어 대신 ‘젤 네일’을 바르는 게 유행이다. 젤 네일도 일종의 매니큐어인데 성분과 사용법이 다르다. 끈적이는 젤 성분을 손톱에 바른 뒤 엘이디(LED) 램프 등의 장비로 손톱을 굽는 과정을 거친다.

젤 네일의 가장 큰 장점은 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시술이 끝나면 5분이 안 돼 마른다. 손톱의 광택이 좋아지고 색깔이 오래간다. 일반 매니큐어는 바른 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떨어지고 지워지지만 젤 네일은 길게는 한달까지 유지된다. 공들여 손톱에 그린 그림들이 일주일 이상 선명하게 살아 숨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젤 네일을 찾고 있다. 대신 전문 네일숍에서 젤 네일 시술을 받으려면 30만~40만원의 가격을 예상해야 한다.

다만 너무 잦은 손톱 관리는 오히려 손톱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매니큐어를 지울 때 아세톤을 사용하게 되는데 아세톤은 손톱의 수분을 빨아들인다. 아세톤 처리 뒤 손톱 주변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많이들 봤을 것이다. 피부의 단백질이 타서 증발해 버린 징후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아세톤 사용은 괜찮지만 하루에 몇 차례씩 사용하면 손톱은 사라진 수분을 그리워하며 약해지고 있을 것이다.

지요씨가 취재를 온 김에 손톱 관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기자는 전날 바다 한가운데에서 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시간을 보내다 온 탓에 손톱 상태는 재난의 수준이었다. 때가 많이 끼어 있고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남자도 손톱 손질을 많이 받느냐’고 묻자 “여자가 7 남자가 3의 비율로 찾아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손을 많이 쓰는 운동선수들도 깨끗한 인상을 주기 위해 네일숍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먼저 손톱을 가지런히 깎았다. 손톱깎이로 손톱을 자를 때도 유의해야 한다. 손톱은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거칠게 손톱을 깎다 보면 민감하고 여린 손톱 층이 갈라질 수 있다. 손톱을 깎는 것 대신 손톱 파일을 사용해 손톱을 가는 것도 방법이다.

손톱을 깎은 뒤 ‘큐티클’ 정리를 시작했다. 큐티클은 몸 표면에서 세포가 분비하는 물질이 굳어서 이루어진 막 모양의 층을 말하는데 손톱 주변에도 조금 자란다. 니퍼 모양의 큐티클 제거기로 큐티클을 제거하자 손톱이 이전보다 좀 길어 보였다.

이어 단백질 성분의 오일을 손톱에 발랐다. 손톱도 일종의 피부이기 때문에 보습에 신경쓰는 게 좋다. 머리가 부스스하게 떴을 때 오일을 발라 영양을 보충해주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달걀과 치즈 등을 섭취해 손톱 구성에 필요한 단백질을 몸에 충분히 공급해주는 것도 손톱 관리를 위해 좋다.

손톱 관리를 받아보니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톱에서 광택이 났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담은 색을 입혀 손톱을 치장하면 마치 새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좋은 옷을 입으면 자신감도 함께 입게 되듯 잘 관리한 손톱은 일상생활에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반신반의하며 찾아오는 남성 고객들도 한번 네일 관리를 받아보면 왜 여성들이 네일숍을 자주 찾게 되는지 금방 이해하게 됩니다.” 큐티클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오일을 바르는 기본적인 손톱 관리 비용은 1만~2만원 정도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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