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걸 <지큐> 편집장은 독자들이 유명인이 아닌 자신의 얼굴을 아침 밥상에서 마주치면 당황해할 것이라며 사진촬영을 두번 했다.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의 두번째 촬영.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 이충걸 ‘GQ 코리아’ 편집장
잡지를 만들다 보면
별의별 권세들과 다 마주쳐요
그걸 콧등으로 웃어넘기는 건
윤리의식보단 자존심 때문이죠
그러려면 책이 뛰어나야 해요
안 그럼 개가 밟고 지나가겠죠 저라는 인간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속물
솔직하지만 정직하진 않아요
솔직한 건 무정한 거니까
정직한 건 피흘리는 거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큐>(GQ)와 <맥심>(MAXIM)을 구분하지 못했던 저는 ‘강남 스타일’은커녕 아예 스타일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촌스런 사람입니다. 글을 쓸 때도 그저 잘 읽히는 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름다움이나 스타일을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저의 눈으로 볼 때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 <지큐> 코리아의 이충걸 편집장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에디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년간 인터뷰, 에세이, 소설, 패션을 넘나들며 한 시대의 스타일을 주도해 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충걸은 <보그>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면서 박정자, 김수현, 김민기, 이외수 등 색깔 넘치는 인물들을 만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터뷰 기사의 새로운 전범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이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인터뷰어의 마음에 비친 이미지를 전달하는 그의 글쓰기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2011년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내놓으며 “나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언어 자체의 문제였다”고 적었을 정도로 언어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집착은 유별납니다. 그래서일까, 매달 실리는 한 쪽짜리 편집장의 글을 읽기 위해 <지큐>를 산다는 독자가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탐미적인 그의 글은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소년의 감수성을 지닌 피터 팬’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요하며 아랫사람을 죽이는 악마’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갈리는 주변의 평가도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지난 2월 <지큐> 편집장실로 우르르 들어서는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숭배자를 기다리는 수줍은 폭군 같았습니다. 45도 각도로 슬쩍 우리를 스캔한 그는 곧바로 그 이미지를 말로 옮겼습니다. “고경태 기자님이 저렇게 미소년일지 몰랐어요. 농구부에 들어갈까 배드민턴 칠까 고민하는 사대부고 학생 같아요. 김두식 선생님은 이렇게 귀엽게 생기셨을 줄 몰랐어요. 제가 예순에 본 아들 같아요.” 약간 들뜬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초면에 던지는 이런 묘한 얘기도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이충걸 자신이야말로 나이가 믿기지 않는 미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용맹스러운 인생의 친구, 어머니 “저희 어머니 말씀이, 사람은 나무와 같아서 겉에서 보면 모르지만 잘라 보면 나이가 다 있다고, 술 처먹고 늦게 다니지 말라고 하셨어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깜짝 놀라요. 걔네들은 중력의 영향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았고, 저는 살짝 그렇진 않거든요. 그래서 서로 비주얼이 주는 쇼크가 큰데다 관심사가 너무너무 달라요. 걔네들은 축첩을 한다거나, 아내 흉을 보고, 2차는 꼭 룸살롱을 가야 하는데, 내가 왜 친한 사람들의 교미의식을 봐야 해요? 저는 그런 게 불편하고 거북해요. 친구들과는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으나 ‘판 이론’처럼 서로 다른 극을 향해 영원히 멀어져버렸어요.” -오늘 입은 스웨터도 멋집니다. “대전에 있는 빈티지 가게에서 5천원 주고 산 건데, 자꾸 빨다 보니 밑이 짧아져서 다른 옷을 이어 붙였어요.” -그것도 명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제가 후지게 입고 다녀도 다 비싼 줄 아니까요. 저는 70년대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나온 것 같은 무늬가 좋았어요. 주변에 돈 써서 오히려 추해지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것 자체가 좋고 예쁜 것은 알겠지만, 모든 룩의 핵심은 얼굴인데 못생겨가지고 그러면 뭐하나 싶고요. 매년 파리나 밀라노에서 열리는 컬렉션에 가면 세계 유수의 편집장들이며 세계 패션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들 맨 앞좌석에 고개 쳐들고 앉아 있어요. 그러나 저는 ‘웃기고 있네’ 그래요. 일단 못생긴데다가 별로 멋있지도 않고… 제가 제일 멋있어요. 책도 제가 제일 잘 만들고요.” -외국 편집장들을 만날 기회도 많죠? “재작년 파리에서 전세계 <지큐> 편집장들이 다 모였는데, 독일 편집장이 제 옆에서 ‘한국 <지큐> 너무 좋아. 스타일 좋고 불가능한 게 없어 보여’라고 하기에 제가 그랬어요. ‘난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독일 <지큐> 안 봐. 넌 한국말부터 배워야 해.’ 이런 자랑 듣기 싫죠? 내가 옷 입고 ‘엄마 나 어때? 멋있어?’ 그러면, 엄마는 ‘오뉴월 수캐 뭐 자랑하듯 지 자랑은’이라고 하세요. 자랑을 침처럼 매달고 다닌다, 이거죠.” -자랑도 자꾸 들으니 괜찮네요. 시계를 특별히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이건 롤렉스 에어킹이라는 모델인데, 엄마는 아직 몰라요. 엄마가 아시면 휴우. 자동차나 오디오처럼 시계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거라서. 제가 가진 시계 값을 계산해 보니 제가 사는 아파트의 3분의 1이에요. 어쨌든 시계는 시침과 분침을 움직여서 시간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시간에 대한 기준을 가르쳐줌으로써 우리에게 불멸과 유한함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해줘요. 시계는 시간을 인지하는 우리의 심상을 드러내는 오브제예요. 사실 남자들은 액세서리랄 게 별로 없잖아요.” 무슨 질문을 하든지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1년 전에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는 책을 낸 사람다웠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추가한 개정판이 곧 나올 예정인데, 그와 어머니의 관계도 변한 게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똑같아요. 엄마는요, 저를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저희 집이 성수동인데 저녁 6~7시에 압구정동으로 술 마시러 나가면 그때마다 ‘이 시간에 어디 가니?’ 하세요. 그러면 저는 ‘엄마, 내가 몇 살인데 이 시간에 왜 못 나가?’라고 하죠. 가끔은 저렇게 근면하고 정직한 여자가 어떻게 나 같은 아들을 낳았을까 경이로워요. 엄마의 용맹스러움을 생각하면 내가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정도예요. 재작년 무릎에 관절경 수술을 받을 땐 그 끔찍한 수술 장면을 모니터로 다 보셨다니까요. 용맹스러운 만큼 유연한 분은 아니지만, 저는 어머니를 엄마로서가 아니라 제 인생의 친구로서 되게 좋아해요.” -어려서는 어떤 아이였나요? “위로 형 둘, 누나 하나인데, 어머니는 ‘위로 셋보다 너 하나 기르는 게 더 힘들었다’고 푸념하세요. 제가 너무나 까다롭다는 거예요.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게, 정확한 의사를 표현하는 게 악덕은 아니잖아요.” <지큐>를 비롯한 패션지의 주 수입원은 명품 브랜드의 광고입니다. 자동차만 하더라도 아우디, 볼보, 캐딜락, 혼다, 벤츠 같은 외제 고급 승용차들의 광고만 주로 실립니다. 대중적인 상표의 광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물건은 더이상 매력적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런 매체의 책임자인 이충걸은 작은 차를 몰면서 누구보다 자주 소비의 죄의식을 얘기합니다. 그의 책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는 아예 한 장을 죄의식에 할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작은 차를 모는 건 단지 그게 예뻐서예요. 작은 차는 도시의 풍경을 만드니까요. 큰 차는 ‘너에게 경제적 박탈감을 줄게, 난 너보다 조금 더 지구를 점유하겠어, 결정적으로 어떤 것과 부딪혔을 때 적어도 나는 죽지 않아’ 이런 암시를 주죠. 적절치 않아요. 사실 한국에 그렇게 과속할 수 있는 도로나 있나요?” -작은 차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편집장의 글과 광고가 안 어울린다 싶을 때도 있는데요. “<지큐>의 메시지는 이걸 사라는 게 아니에요. 현세에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살아있는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안목을 높이고 변별력을 갖추라는 거예요. 잡지의 중요한 기능은 판타지예요. 눈이 즐겁고 우리 마음의 작은 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지큐>는 비싼 것만 다루지 않아요. 한국에서 도외시된 가치, 소외된 것에 대한 사랑은 훨씬 더 커요.” 처음 주례 섰다가 눈물 콧물 쏟은 사연 -소비의 죄의식을 얘기하는 건 일종의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인가요? “저는 아무런 사회적 책무도 빚도 없어요. 제 직업에 가장 중요한 건 저의 개인적인 자존심을 지키는 거예요. 잡지를 만들다 보면 별의별 권세들과 마주하게 돼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누군가를 섭외했는데 연예 매니지먼트가 ‘우리 애는 반나절만 반짝하면 중소기업 하나를 좌우할 수 있어. 뭘 해줄 건데?’ 하고 요구하는 일도 있어요. 그런 걸 콧등으로 날려버리자면 책이 말하려는 바, 또는 책 자체의 품질이 뛰어나야 해요. 책도 후지게 만들면서, 그런 걸 웃긴다 하면, 지나가던 개가 밟아버리겠죠. 개인적 자존심을 지키는 건 <지큐>라는 미디어를 지키는 것과 똑같아요. <지큐>는 저의 또다른 인격이거든요. 자존심을 지키는 저만의 방법은 브랜드와 관계를 맺지 않는 거예요. 친해지면 중립을 지킬 수 없고,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요. 좋게 말하면 정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편협한 건데, 그래서 어떤 배우들은 오히려 ‘<지큐>는 뒷거래가 없어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도 해요. 문화적인 의미로서 ‘지큐적인’이라는 낱말, 합의가 생긴 거죠.” -지큐적인 것은 이충걸의 색깔을 의미하나요? “이충걸의 색깔이라고 말하면 교만이고, 저와 스태프들이 만든 유산일 거예요. 완벽하게 잘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저는 한 인간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자존심을 보여 왔다고 생각해요. 공적인 관계맺음에 대해선 누구도 저처럼 잘할 수 없어요.” -일할 때는 가끔 악마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저는 밖에서 직원들과 따로 술자리 갖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술을 마시면 정서적으로 되게 따뜻해지잖아요. 그래서 ‘두식아, 너 같은 에디터랑 일하는 나는 정말 행복한 편집장이야’라고 말했다가, 다음날 ‘너는 뇌가 없니?’라고 말할 게 뻔하니까요. 그래도 에디터들은 다 저와 일하는 게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요. 전 인간적으로는 정말 부족하고 철이 없지만, 티칭이 정확하고 피드백이 빨라요. 글을 고칠 때도 ‘촌스러워. 다시 써 와’가 아니라 ‘요는 연결형 어미이고, 오는 종결형 어미잖아. 시제가 일치해야 하는데 어긋나잖아!’ 하는 식이니까요.” 이충걸의 말을 받아 적으니 그대로 글이 됐습니다. 말할 때도 그만큼 완결된 문장을 구사했습니다. 얼마 전에 처음 결혼식 주례를 섰다면서 주례사를 소개하는데 “주례사 도중에 고개를 들고 신랑 신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목이 뻣뻣해지고 눈물 콧물이 정신없이 쏟아져서 창피해 혼났다”면서도 우리에게 들려주는 주례사 문장은 단 한 줄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글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언어가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 때문에 말을 후지게 하면 존재 자체가 남루하게 느껴져요. 사실 언어가 예전에는 권세였잖아요. 나라가 망하려면 말부터 망하거든요. 언어는 신령한 거예요. 형체가 없는 음악이 우리 마음을 만지는 것처럼, 언어도 알 수 없는 기호가 합쳐짐으로써 우리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잖아요. 붕대로 싸맸다가 칼로 베었다가. 그만큼 언어는 절대적이죠. 그래서 <지큐 코리아>는 타이포가 미술로 보이는 역할을 할 때나, 스타일, 타이, 택시처럼 한국말로 바꾸기 애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안 써요. 저는 조선의 <지큐>를 만든다는 걸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보그>에서 일할 때는 인터뷰어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인터뷰는 잘해서 한 거지, 좋아서 한 건 아니에요. 기사의 꼴을 갖추기 위해서는 팩트를 전하는 질문이 필요한데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묻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제 인터뷰 방식은 팩트 여부에 달려 있지 않았어요. 어떤 순간에 반응하는 그들의 스피릿이 궁금했어요. 하지만 질문했을 때 들려오는 사람들의 언어가 그다지 아름답진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지요.”
서정적인 댐 무너뜨리는 이충걸식 인터뷰
-객관적인 사실의 전달에는 관심이 없었군요?
“인터뷰하는 순간에 입회한 사람은 저하고 그분밖에 없으니까요. 저의 관점과 필터를 통해서 타전되는 그의 모습이 진짜거든요. 이를테면 ‘강인한 턱을 가진 김두식은 혀를 굴리는 거품이 있는 듯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는 건 순전히 저만 느낀 거잖아요. 제가 내내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본 게 아니라 그 순간 제 인생에 다가온 모습을 전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게 주관적인 듯 보이는 객관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 상대방과 교감을 잘하는 편이었죠?
“저는 강한 분들과 잘 맞았어요. 그런데 제가 인터뷰할 때는 그분들이 자주 울었어요. 그럴 때 제가 무의식적으로 등도 두드려주고 머리도 쓰다듬고 했는데 어른들에게 무례하게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인터뷰의 가치는 듣는 거거든요. 게다가 저는 감정이입이 아주 빨라서 온몸으로 상대의 모든 걸 느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마음을 여는 바람에 서정적인 댐이 무너져서 수문이 흘러넘친 적이 많았어요.”
-80살까지 편집장을 하고 싶다고 하셨던데, 후배들은 영원히 편집장을 못하는 건가요? 후배들의 감각을 못 따라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요?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노년에 글을 썼다고 해서 감수성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오히려 민감해지지 않나요? 에디터(남성지에서 취재와 편집을 전담하는 이들을 칭하는 용어)들은 꼭 편집장을 해야 하나요? 그게 지위가 올라가는 일인가요? 에디터로 평생 글 쓰는 게 남루한 일인가요?”
-스스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속물. 저는 솔직하긴 하지만 정직하지는 않아요. 솔직한 건 무정한 거니까, 정직한 건 피를 흘리는 거니까. 오늘 인터뷰도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부담돼서 하기 싫었는데, 예순에 낳은 아이가 와서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이끌어 줘서….”
서양에서 만들어진 잡지의 한국인 편집장이 외국의 쟁쟁한 동료들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보그>의 애나 윈투어를 모델로 삼았다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생각났습니다. 스노비즘(snobbism)의 상징 같았던 영화 속 메릴 스트립처럼, 상대방을 거만하게 대하고, 자신을 최고로 믿게 하며, 사람을 헷갈리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비를 보이는 태도는 패션지 편집장에게 요구되는 일종의 직업윤리 같았습니다. 스타일이 생명인 직업인에게 겸손하고 소탈한 내면 고백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죠. 스타일과 한참 거리가 멀었던 제가 몇 시간을 그와 보냈다고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할 리도 만무합니다. 어쩌면 지금 저에게 남겨진 이해불가와 혼란의 느낌이야말로 그가 보여주고 싶은 자기 직업의 가장 정확한 이미지인지도 모릅니다. 초현실적인 자화자찬, 속물의 정체성, “솔직하지만 정직하지는 않다”는 주관적인 자기 객관화도 이충걸만이 할 수 있는 기막힌 고백이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문득, 탐미적인 글에 스며 있는 허무의 흔적은 화려한 세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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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별 권세들과 다 마주쳐요
그걸 콧등으로 웃어넘기는 건
윤리의식보단 자존심 때문이죠
그러려면 책이 뛰어나야 해요
안 그럼 개가 밟고 지나가겠죠 저라는 인간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속물
솔직하지만 정직하진 않아요
솔직한 건 무정한 거니까
정직한 건 피흘리는 거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큐>(GQ)와 <맥심>(MAXIM)을 구분하지 못했던 저는 ‘강남 스타일’은커녕 아예 스타일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촌스런 사람입니다. 글을 쓸 때도 그저 잘 읽히는 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름다움이나 스타일을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저의 눈으로 볼 때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 <지큐> 코리아의 이충걸 편집장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에디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년간 인터뷰, 에세이, 소설, 패션을 넘나들며 한 시대의 스타일을 주도해 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충걸은 <보그>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면서 박정자, 김수현, 김민기, 이외수 등 색깔 넘치는 인물들을 만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터뷰 기사의 새로운 전범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이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인터뷰어의 마음에 비친 이미지를 전달하는 그의 글쓰기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2011년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내놓으며 “나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언어 자체의 문제였다”고 적었을 정도로 언어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집착은 유별납니다. 그래서일까, 매달 실리는 한 쪽짜리 편집장의 글을 읽기 위해 <지큐>를 산다는 독자가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탐미적인 그의 글은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소년의 감수성을 지닌 피터 팬’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요하며 아랫사람을 죽이는 악마’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갈리는 주변의 평가도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지난 2월 <지큐> 편집장실로 우르르 들어서는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숭배자를 기다리는 수줍은 폭군 같았습니다. 45도 각도로 슬쩍 우리를 스캔한 그는 곧바로 그 이미지를 말로 옮겼습니다. “고경태 기자님이 저렇게 미소년일지 몰랐어요. 농구부에 들어갈까 배드민턴 칠까 고민하는 사대부고 학생 같아요. 김두식 선생님은 이렇게 귀엽게 생기셨을 줄 몰랐어요. 제가 예순에 본 아들 같아요.” 약간 들뜬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초면에 던지는 이런 묘한 얘기도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이충걸 자신이야말로 나이가 믿기지 않는 미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용맹스러운 인생의 친구, 어머니 “저희 어머니 말씀이, 사람은 나무와 같아서 겉에서 보면 모르지만 잘라 보면 나이가 다 있다고, 술 처먹고 늦게 다니지 말라고 하셨어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깜짝 놀라요. 걔네들은 중력의 영향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았고, 저는 살짝 그렇진 않거든요. 그래서 서로 비주얼이 주는 쇼크가 큰데다 관심사가 너무너무 달라요. 걔네들은 축첩을 한다거나, 아내 흉을 보고, 2차는 꼭 룸살롱을 가야 하는데, 내가 왜 친한 사람들의 교미의식을 봐야 해요? 저는 그런 게 불편하고 거북해요. 친구들과는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으나 ‘판 이론’처럼 서로 다른 극을 향해 영원히 멀어져버렸어요.” -오늘 입은 스웨터도 멋집니다. “대전에 있는 빈티지 가게에서 5천원 주고 산 건데, 자꾸 빨다 보니 밑이 짧아져서 다른 옷을 이어 붙였어요.” -그것도 명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제가 후지게 입고 다녀도 다 비싼 줄 아니까요. 저는 70년대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나온 것 같은 무늬가 좋았어요. 주변에 돈 써서 오히려 추해지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것 자체가 좋고 예쁜 것은 알겠지만, 모든 룩의 핵심은 얼굴인데 못생겨가지고 그러면 뭐하나 싶고요. 매년 파리나 밀라노에서 열리는 컬렉션에 가면 세계 유수의 편집장들이며 세계 패션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들 맨 앞좌석에 고개 쳐들고 앉아 있어요. 그러나 저는 ‘웃기고 있네’ 그래요. 일단 못생긴데다가 별로 멋있지도 않고… 제가 제일 멋있어요. 책도 제가 제일 잘 만들고요.” -외국 편집장들을 만날 기회도 많죠? “재작년 파리에서 전세계 <지큐> 편집장들이 다 모였는데, 독일 편집장이 제 옆에서 ‘한국 <지큐> 너무 좋아. 스타일 좋고 불가능한 게 없어 보여’라고 하기에 제가 그랬어요. ‘난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독일 <지큐> 안 봐. 넌 한국말부터 배워야 해.’ 이런 자랑 듣기 싫죠? 내가 옷 입고 ‘엄마 나 어때? 멋있어?’ 그러면, 엄마는 ‘오뉴월 수캐 뭐 자랑하듯 지 자랑은’이라고 하세요. 자랑을 침처럼 매달고 다닌다, 이거죠.” -자랑도 자꾸 들으니 괜찮네요. 시계를 특별히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이건 롤렉스 에어킹이라는 모델인데, 엄마는 아직 몰라요. 엄마가 아시면 휴우. 자동차나 오디오처럼 시계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거라서. 제가 가진 시계 값을 계산해 보니 제가 사는 아파트의 3분의 1이에요. 어쨌든 시계는 시침과 분침을 움직여서 시간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시간에 대한 기준을 가르쳐줌으로써 우리에게 불멸과 유한함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해줘요. 시계는 시간을 인지하는 우리의 심상을 드러내는 오브제예요. 사실 남자들은 액세서리랄 게 별로 없잖아요.” 무슨 질문을 하든지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1년 전에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는 책을 낸 사람다웠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추가한 개정판이 곧 나올 예정인데, 그와 어머니의 관계도 변한 게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똑같아요. 엄마는요, 저를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저희 집이 성수동인데 저녁 6~7시에 압구정동으로 술 마시러 나가면 그때마다 ‘이 시간에 어디 가니?’ 하세요. 그러면 저는 ‘엄마, 내가 몇 살인데 이 시간에 왜 못 나가?’라고 하죠. 가끔은 저렇게 근면하고 정직한 여자가 어떻게 나 같은 아들을 낳았을까 경이로워요. 엄마의 용맹스러움을 생각하면 내가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정도예요. 재작년 무릎에 관절경 수술을 받을 땐 그 끔찍한 수술 장면을 모니터로 다 보셨다니까요. 용맹스러운 만큼 유연한 분은 아니지만, 저는 어머니를 엄마로서가 아니라 제 인생의 친구로서 되게 좋아해요.” -어려서는 어떤 아이였나요? “위로 형 둘, 누나 하나인데, 어머니는 ‘위로 셋보다 너 하나 기르는 게 더 힘들었다’고 푸념하세요. 제가 너무나 까다롭다는 거예요.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게, 정확한 의사를 표현하는 게 악덕은 아니잖아요.” <지큐>를 비롯한 패션지의 주 수입원은 명품 브랜드의 광고입니다. 자동차만 하더라도 아우디, 볼보, 캐딜락, 혼다, 벤츠 같은 외제 고급 승용차들의 광고만 주로 실립니다. 대중적인 상표의 광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물건은 더이상 매력적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런 매체의 책임자인 이충걸은 작은 차를 몰면서 누구보다 자주 소비의 죄의식을 얘기합니다. 그의 책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는 아예 한 장을 죄의식에 할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작은 차를 모는 건 단지 그게 예뻐서예요. 작은 차는 도시의 풍경을 만드니까요. 큰 차는 ‘너에게 경제적 박탈감을 줄게, 난 너보다 조금 더 지구를 점유하겠어, 결정적으로 어떤 것과 부딪혔을 때 적어도 나는 죽지 않아’ 이런 암시를 주죠. 적절치 않아요. 사실 한국에 그렇게 과속할 수 있는 도로나 있나요?” -작은 차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편집장의 글과 광고가 안 어울린다 싶을 때도 있는데요. “<지큐>의 메시지는 이걸 사라는 게 아니에요. 현세에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살아있는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안목을 높이고 변별력을 갖추라는 거예요. 잡지의 중요한 기능은 판타지예요. 눈이 즐겁고 우리 마음의 작은 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지큐>는 비싼 것만 다루지 않아요. 한국에서 도외시된 가치, 소외된 것에 대한 사랑은 훨씬 더 커요.” 처음 주례 섰다가 눈물 콧물 쏟은 사연 -소비의 죄의식을 얘기하는 건 일종의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인가요? “저는 아무런 사회적 책무도 빚도 없어요. 제 직업에 가장 중요한 건 저의 개인적인 자존심을 지키는 거예요. 잡지를 만들다 보면 별의별 권세들과 마주하게 돼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누군가를 섭외했는데 연예 매니지먼트가 ‘우리 애는 반나절만 반짝하면 중소기업 하나를 좌우할 수 있어. 뭘 해줄 건데?’ 하고 요구하는 일도 있어요. 그런 걸 콧등으로 날려버리자면 책이 말하려는 바, 또는 책 자체의 품질이 뛰어나야 해요. 책도 후지게 만들면서, 그런 걸 웃긴다 하면, 지나가던 개가 밟아버리겠죠. 개인적 자존심을 지키는 건 <지큐>라는 미디어를 지키는 것과 똑같아요. <지큐>는 저의 또다른 인격이거든요. 자존심을 지키는 저만의 방법은 브랜드와 관계를 맺지 않는 거예요. 친해지면 중립을 지킬 수 없고,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요. 좋게 말하면 정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편협한 건데, 그래서 어떤 배우들은 오히려 ‘<지큐>는 뒷거래가 없어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도 해요. 문화적인 의미로서 ‘지큐적인’이라는 낱말, 합의가 생긴 거죠.” -지큐적인 것은 이충걸의 색깔을 의미하나요? “이충걸의 색깔이라고 말하면 교만이고, 저와 스태프들이 만든 유산일 거예요. 완벽하게 잘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저는 한 인간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자존심을 보여 왔다고 생각해요. 공적인 관계맺음에 대해선 누구도 저처럼 잘할 수 없어요.” -일할 때는 가끔 악마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저는 밖에서 직원들과 따로 술자리 갖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술을 마시면 정서적으로 되게 따뜻해지잖아요. 그래서 ‘두식아, 너 같은 에디터랑 일하는 나는 정말 행복한 편집장이야’라고 말했다가, 다음날 ‘너는 뇌가 없니?’라고 말할 게 뻔하니까요. 그래도 에디터들은 다 저와 일하는 게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요. 전 인간적으로는 정말 부족하고 철이 없지만, 티칭이 정확하고 피드백이 빨라요. 글을 고칠 때도 ‘촌스러워. 다시 써 와’가 아니라 ‘요는 연결형 어미이고, 오는 종결형 어미잖아. 시제가 일치해야 하는데 어긋나잖아!’ 하는 식이니까요.” 이충걸의 말을 받아 적으니 그대로 글이 됐습니다. 말할 때도 그만큼 완결된 문장을 구사했습니다. 얼마 전에 처음 결혼식 주례를 섰다면서 주례사를 소개하는데 “주례사 도중에 고개를 들고 신랑 신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목이 뻣뻣해지고 눈물 콧물이 정신없이 쏟아져서 창피해 혼났다”면서도 우리에게 들려주는 주례사 문장은 단 한 줄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글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언어가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 때문에 말을 후지게 하면 존재 자체가 남루하게 느껴져요. 사실 언어가 예전에는 권세였잖아요. 나라가 망하려면 말부터 망하거든요. 언어는 신령한 거예요. 형체가 없는 음악이 우리 마음을 만지는 것처럼, 언어도 알 수 없는 기호가 합쳐짐으로써 우리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잖아요. 붕대로 싸맸다가 칼로 베었다가. 그만큼 언어는 절대적이죠. 그래서 <지큐 코리아>는 타이포가 미술로 보이는 역할을 할 때나, 스타일, 타이, 택시처럼 한국말로 바꾸기 애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안 써요. 저는 조선의 <지큐>를 만든다는 걸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보그>에서 일할 때는 인터뷰어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인터뷰는 잘해서 한 거지, 좋아서 한 건 아니에요. 기사의 꼴을 갖추기 위해서는 팩트를 전하는 질문이 필요한데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묻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제 인터뷰 방식은 팩트 여부에 달려 있지 않았어요. 어떤 순간에 반응하는 그들의 스피릿이 궁금했어요. 하지만 질문했을 때 들려오는 사람들의 언어가 그다지 아름답진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지요.”
얼굴이 크게 나올까 걱정하는 이충걸 편집장을 위해 김두식 교수가 한발 앞으로 나서다 제지당하는 모습. 2월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지큐> 사무실 입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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