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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5년 전 그, 결혼 않고 헤어져서 좋았어요

등록 2012-10-26 19:34수정 2012-10-26 21:04

깊이 생각할수록 단순해진다는 공 작가와 인터뷰를 시작하며. 강재훈 선임기자
깊이 생각할수록 단순해진다는 공 작가와 인터뷰를 시작하며. 강재훈 선임기자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소설가 공지영(하)
(상) ‘운명에 대한 질투’는 내가 안고 갈 십자가 보러가기

“뜻밖에도 그와 만나면서
지난 결혼에 대해 반성했어요
이 사람만큼 내가 좋아했다면
남편들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좀 미안했어요”

“유기견 두마리 데려다 키워요
쟤들 때문에 사랑을 알았어요
털도 많고 가끔 나를 물지만
이왕 왔으니 행복했으면 해요
그게 사랑이에요”

공지영 선생은 좌우 양쪽의 지속적인 비판을 “운명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받아들이고 넘어갔습니다. 고깝게 들을 수도 있지만,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었다”는 설명에서 저는 그의 절박함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유복한 성장환경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1963년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난 공지영은 주로 여의도 아파트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아버지는 70년대 초반에 이미 주 5일제를 시행하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주말이면 손수 운전하는 외제 승용차에 가족을 태우고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매일 아침 공지영을 승용차로 등교시켰을 정도로 아버지의 딸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특별한 노력 없이 공부와 소설 창작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그의 운명이라면 운명입니다. ‘사소설’이라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중산층 또는 중상층 여성을 1인칭 화자로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나는 욕 안 먹는 곳이 없구나. 올라운드 플레이어네. 하하하.” 공지영 작가는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한다며 웃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공 작가 집에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는 욕 안 먹는 곳이 없구나. 올라운드 플레이어네. 하하하.” 공지영 작가는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한다며 웃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공 작가 집에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어렸을 때 받은 순결교육의 영향

“그게 편안해서요.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서 그렇게 쓰는 거죠. <즐거운 나의 집>은 정말 자기 이야기라고 표방한 첫번째 책인데, 만약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 씩씩하게 사는 여자가 있다면 제가 취재를 갔을 거예요. 마침 그게 저라서 편하게 쓴 것뿐이에요. 주인공이 시대와 어떤 연관을 맺는지가 중요한데, 제가 나름대로 시대의 한복판에 산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 거죠. 구매력 있는 독자 중에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잖아요. 저는 남의 소설을 읽을 때도 감정이입이 잘되는 1인칭이 편한데, 독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90년대 초부터 저는 공 선생님의 고백적인 소설을 읽으며 중산층 남성의 한계를 반성했습니다. 저 같은 독자들도 많은데, 저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비판을 주로 의식하게 되죠?

“사람이 다 그렇죠.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피고인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글을 읽고 제 인생을 바꿨어요. 물론 아직도 기억하는 비판이 있어요. 뒤끝 작렬하며.(웃음)”

-제 주변의 60년대 초반 태생 여성 중에는 유난히 이혼한 분들이 많습니다. 남녀평등 사상의 첫 세례를 받았지만, 현실에서 가장 먼저 부딪힌 세대 아닌가 싶은데요.

“저는 결혼하고 완전 경악했어요. 명절 때 나는 전을 부치는데 왜 저 사람들은 고스톱을 치지? 내가 열 달간 술 담배도 못하고 애를 낳았는데 왜 남편 성을 붙여야 하는데? 나보고 모성애가 없다고 하는데 진짜 없는 걸 어쩌라고? 그런 걸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한완상 교수님께서 언젠가 그러시더군요. ‘당신들 세대가 이상하다. 저 여자 괜찮다 싶으면 다 이혼을 했더라. 그걸 보고 사회학자로서 우리나라 결혼제도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신물 날 법한데도 굳이 제도로서의 결혼에 여러번 들어가신 이유는 뭔가요?

“연애하는 남자들이 결혼하자고 하니까. 저는 세번 연애해서 세번 결혼했어요. 다른 연애 경험이 없었어요. 결혼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 이상할 뿐이라고 생각했죠. 창피하지만 어렸을 때 받은 순결교육의 영향도 컸어요. 잠을 자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해야 잠을 잔다고 생각한 거죠.(웃음) 5년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두번째 이혼 이후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셨죠?

“지금은 돌아가신 분(두번째 남편)이 95년 영화에 실패해서 제가 그 당시 전 재산 10억원을 다 날렸어요. 제작을 도왔던 깡패 같은 사람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두번 이혼녀가 애도 하나 데리고 엄마 집에 방 한 칸 얻어 살자니 너무 힘들었어요. 94년에 갑자기 유명해진 것도 그때는 재앙이었죠. 여성지에 나고, 문단에서는 욕하고, 돈 많다고 소문났는데 돈은 없고. 무엇보다 힘든 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정신과를 찾아갔고, 큰 도움을 받았어요.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알았죠. 정신과 선생님은 제가 말을 안 하면 어쩌나 걱정하셨다는데,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어떤 환자보다도 전향적으로 협조해서 치료효과도 많았다고 해요.(웃음)”

-거듭되는 이혼도 일종의 운명인가요?

“제가 성격적으로 이상해서 특이한 남자들을 찾아다닌 건 아닌지 자책하고, 정신분석도 공부했어요. 결혼생활 내내 거의 사슬에 묶여 살면서도 그걸 감내했거든요. 귀가시간을 계속 체크당하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꼭 얘기해야 하고. 남자들이 모두 그랬어요. 마지막 결혼 때는 7년 동안 저녁 약속 한번 못 잡고 거의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들에게 제가 힘든 사람이었다는 것도 이해가 돼요. 제가 어느 날 태연한 얼굴로 ‘다른 사람이 좋아졌어. 결혼할래. 이혼해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들도 정확히 알았죠.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 제가 그런 사람인 건 사실이에요. 남의 이목이 두려워 자기 진심을 희생하는 법이 없는, 일종의 ‘진심주의자’인데, 자기 내면에 충실한 그런 사람은 위험한 존재죠. 그 남자들이 모른 건 제가 내면에 충실한 사람이지만 그 내면이 자주 바뀌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어쨌든 남자들이 많이 불안해했던 것 같아요.”

“교양과 폭력성은 별개인 걸 알았어요”

-남자 보는 눈이 없었던 건 아닌가요?

“저는 성장하면서 때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두번째 남편에게 맞았지만 그때는 남편이 딴따라인데다가 운동권도 아니라서 그냥 제가 잘못 결혼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찾고 찾은 게 좋은 학교를 나와서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남녀평등 얘기를 많이 하고 제 둘째 아이도 흔쾌히 받아줬고요. 결혼 전에는 얼마나 잘해줬는지, 정말 영원히 행복하리라 생각했죠.(웃음) 제가 주변에서 폭력적인 사람을 보고 자랐으면 경계심이 있었을 텐데, 교양 있는 사람은 그럴 리 없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지금은 교양과 폭력성이 별개인 걸 알아요.”

-‘다른 사람이 좋아졌어. 결혼할래. 이혼해줘’라고 태연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폭력을 감내할 수 있죠?

“이혼 전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여성지였어요. 실제로 상대방이 여성지 얘기를 하면서 협박하기도 했고요. 세번 이혼하고 성이 다른 세 아이 키우는 건 제가 밥벌이도 못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것도 싫었죠. 그래서 억지로 버텼어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 유형이 있다면?

“폭력적인 사람, 구속하는 사람. 아, 구속도 일종의 폭력이죠. 어디 가냐, 왜 만나냐, 왜 이 시간까지 있어야 하나? 이런 거요. 아니, 그거야 내 맘이지, 내가 만날 만하니까 만나는 거지. 내가 말할 때까지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세번째 이혼 이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셨죠. 저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 폐지에 헌법학자, 형사법학자 수백명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행시> 때는 제가 사형수들 만나 울고 깨지면서 그 사람들을 통해 거꾸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배웠어요. 인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낙관도 생겼고요. 사회적 영향 면에서는 <도가니>가 더 컸어요. 관련된 분들이 완전히 졌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 저의 취재가 시작되었거든요. <도가니>는 소설보다 영화가 더 큰 걸 해냈죠.”

-결혼과 섹스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운 보수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나요?

“기독교적 영향도 있고. 엄마 아빠가 13살, 17살에 첫사랑으로 만나 결혼한 분들이에요. 보는 순간 하늘이 내려준 줄 알았대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첫사랑의 신화가 숨쉬고 있어요. 언니, 오빠도 비슷해요. 심리학에서는 남들이 생각하기에 연애를 많이 할 것 같은 여자들이 가진 공포심이 있다고 하죠. 많은 사람들이 대시하니까 항상 몸을 사리고, 결혼을 통해서 그걸 차단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예요. 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가 집까지 쫓아오는 게 두려웠고 모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결혼해서 빨리 그런 남자들을 무찌르고 싶었어요.(웃음)”

-5년 전에 그런 생각이 바뀐 거군요?

“네. 5년 전 처음으로 결혼과 연결되지 않는 연애를 해 봤어요. 평생 처음, 길거리에서 보고 제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즐거운 나의 집>의 서점 아저씨 비슷한 얘기인가요?

“그런 거예요. 결혼을 내려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그냥 가서 얘기해 봤고, 좋았어요. 결혼하지 않고 헤어져서 좋았어요. 남자랑 여자랑 사랑하는 게 이런 거구나. (잠시 망설이다가) 뜻밖에도 그와 만나면서 지난 결혼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어요. 이 사람만큼 내가 좋아했다면 남편들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좀 미안했어요. <한겨레>에서 이런 거 말해도 되나?(웃음) 즐겁고 아프게 사랑했어요.”

마지막 명예욕의 함정, 한 뼘은 놓았다

-사랑하면서 아픈 건 뭐였어요?

“사랑은 다 아프잖아요.(웃음)”

-이런 사랑을 처음에 했어야 하는 건데, 순서가 바뀐 것 아닌가요?

“순서가 반대였으면 큰일이죠. 일찍 만났다면 이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제가 몰랐겠죠. 사랑에서는 ‘시기’가 거의 모든 것이에요. 그 사람이 내게 최고인지와 상관없이 대부분 결혼 적령기에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잖아요.”

-요즘은 연애를 안 하시는군요?

“이렇게 남자 없이 오래 지낸 건 내 평생 처음이에요.(웃음)”

-안타깝네요.

“뭐가 안타까워요? (옆에 있는 2개월 된 개를 안으면서) 그래도 새로 입양한 강아지가 수놈이잖아요.(웃음)”

-거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때를 꼽는다면?

“요즘이요.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나머지는 덤이니까 너무 자유로워요. 연애도 안 해서 좋아요. 그것도 짐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 쌍용차 일을 겪으면서 한 뼘 더 자유로워졌어요. 다른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 마지막 함정이 명예욕인데, 물론 지금도 남아 있지만, 그래도 한 뼘은 놓았거든요. 육체의 젊음이 사라지는 걸 느끼는 것, 나이 먹는 것도 좋아요.”

-공지영에게 사랑은 뭔가요?

“지금까지 쓴 책 19권에서 365개의 문장을 모아 새로 책을 냈어요. 나이 50살, 소설 쓰기 시작한 지 25년, 1000만권 판매를 기념한 책인데, 제목이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예요. 상처를 입는 것도 당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 상처 주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제가 유기견 두마리를 데려다 키우면서 사랑을 알았어요. 이번에 마당 있는 집을 찾아 이사하는 것도 쟤들 때문인데요. 쟤들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털도 많고 신경도 쓰이고 가끔 나를 물기도 하지만, 이왕 내가 데려왔으니 여기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사랑이에요.”

워낙 질문을 빨리 이해하고 거침없는 답변을 즉각 내놓아서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양의 녹취록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를 어떻게 믿고 저런 이야기를 툭툭 던지나 싶은 ‘오프 더 레코드’도 많았습니다. 남을 쉽게 신뢰하고, 일단 신뢰하면 전폭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스타일 같았습니다. 통하는 상대방을 만나면 상호간의 에너지를 증폭시켜 당장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힘도 있었습니다. 다만 남들도 자신처럼 다 그럴 것이라는 다소 순진한 믿음과 약간의 자기중심성은 주변의 오해를 부르기 쉽겠다 싶었습니다.

운명을 비추는 빛이 강할수록 그늘도 깊기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운명의 그늘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이, 아마도 공지영이 말하는, 상처를 허락하는 사랑의 마음이겠죠. 그의 새로운 깨달음이 오랜 비판자들에게도 오해 없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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