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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운명에 대한 질투’는 내가 안고 갈 십자가

등록 2012-10-12 21:12수정 2012-10-12 22:15

“인간이 영물이란 걸 믿는 게요, 영혼이 통하는 걸 느껴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의 자택에서 만난 공지영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오고 가는 상처에 대해 깊이 고민한 듯 보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인간이 영물이란 걸 믿는 게요, 영혼이 통하는 걸 느껴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의 자택에서 만난 공지영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오고 가는 상처에 대해 깊이 고민한 듯 보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소설가 공지영(상)
공지영 소설이 아니라
공지영을 읽고 안티 거는 사람들
시기 질투하는구나 하고 넘어가요
안 그러면 제가 살 수 없어요
밉다는데, 싫다는데 어쩌겠어요

저의 복원력은 딱 하나예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
죽일 년이라고 해도 좋으니
난 ‘의자놀이’를 팔아야겠어
상처 입을 걸 알고 나서면
오히려 다치지 않아요

9개월 전 ‘고백’의 연재를 시작할 때는 인터뷰 대상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우선 개인사가 다 알려진 유명인에게는 더이상 새로운 얘기를 기대할 수 없고, 너무 무명인으로는 독자의 눈길을 끌 수가 없습니다. 너무 유명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대상을 겨우 찾아내면 인터뷰를 거절당하기 일쑤. 물론 인터뷰를 ‘당하고(?)’ 싶어 안달인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제가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매체마다 쟁쟁한 인터뷰어들이 많아서 좋은 인터뷰 대상자를 뺏고 뺏기는 총성 없는 전쟁도 벌어집니다. 완전 ‘레드 오션’입니다.

소설가 공지영 선생은 새로운 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유명인입니다. 198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한 그는 지난 25년 동안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90),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199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 <고등어>(1994), <착한 여자>(1997), <봉순이 언니>(1998),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 <즐거운 나의 집>(2007), <도가니>(2009)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썼습니다. 총판매량이 최근 1000만권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2008)가 따로 존재하는데다가, 트위터에도 수시로 자기 생각을 밝히니 인터뷰 대상으로는 거의 최악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가장 사랑받으면서 동시에 가장 미움받는 작가라는 독특한 위상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 궁금했고, 상처를 딛고 끊임없이 일어서는 ‘복원력’의 근원도 알고 싶었습니다. 최근의 연애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금요일 오후, 폭우를 뚫고, 서초구 서래마을에 있는 공지영 선생의 빌라를 찾았습니다. 멀리서 강연하는 모습은 여러번 보았고,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은 적도 있는 ‘트친’ 관계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최근의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참 밝았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들으면 서운해할 말?

-집 근처의 산책길이 멋지던데 운동은 자주 하시나요?

“움직이는 걸 싫어해요. 과학적으로 여자 몸과 남자 몸이 다르대요. 남자들은 운동하는 족족 살이 빠지지만 여자들은 운동한다고 날씬해지지 않거든요. 근육이 붙으면 예쁘지 않다는 거죠. 가뜩이나 운동을 안 하는데 이제는 안 해도 되는 과학적 근거까지 찾았어요.(웃음) 그래도 지리산, 금강산, 설악산 올라갈 때 제가 처진 적은 없어요. 오히려 저 혼자 쌩쌩할 때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깔때기?(웃음)”

-한 시간짜리 사인회를 마치고 곧바로 ‘응답하라 피디수첩’ 집회에 나타나는 등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던데요?

“그날 공식적으로만 세 탕을 뛰었어요. 낮에는 탁현민과 영화 <맥코리아>의 내레이션까지 녹음했죠.”

-매니저도 없이 그 많은 일정을 어떻게 관리하세요?

“원래는 이렇게 바쁘게 살지 않아요. 휴대전화를 3개 정도 쓰면서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이 거는 것만 켜놓고 다른 건 꺼놓았다가 하루 한번만 확인했죠. 그런데 작년 가을 박원순 시장 선거 때 전화번호가 순식간에 공개되면서 결심했어요. 대선까지는 전화를 하나로 단일화하고 전화를 받겠다! 12월19일까지! 이게 저에게는 일종의 희생입니다.”

-거절할 때도 이유를 대야 하는 우리 사회라 쉽지 않을 텐데요.

“‘여자가 거절하는 법’ 같은 책을 30권은 읽은 것 같아요.(웃음) 근데 소용이 없어요. 요즘은 움직이는 만큼 책이 팔리는데다가, 절절한 명분으로 호소하는 것까지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비행기에서는 비상시에 자기부터 산소마스크를 끼고 아이에게 끼워주라고 교육하잖아요. 그게 많은 걸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살아있고 내 정신이 온전한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모질게 다졌어요. 독일 사람들은 하루에 한 건 이상 약속을 안 잡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비상시국이라 이렇게 사는 거죠. (선거 때까지) 두 달 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버텨요.”

-비상시국이라고 느끼시는군요?

“오셀로의 질투심처럼 영웅을 파국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 결함을 ‘하마르티아’라고 하잖아요. 제가 영웅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보면 꼭 행동해서 도와주고야 마는 약점(?)이 있어요. 트위터 시작하고는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의 문제가 계속 저의 약점을 건드렸죠. 어쨌든 제가 움직이고 참여하면 조금이라도 관심들을 가지니까. 그런데 이렇게 계속 행동하는 것은 저의 본성과도 맞지 않고, 특히 고독해야 하는 작가에게는 치명적이에요. 작가로서 중년의 완숙기에 들어서는 시기라 좋은 작품을 많이 쓰고 싶은데 큰 방해를 받고 있죠. 이 시기가 빨리 끝나는 것만이 저의 살길이라는 점에서 비상시국이에요.”

-단일화 이후에 입장을 정하겠다는 분들도 많은데, 공개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셨더군요.

“안철수 나오기 전에 이미 문재인 지지한다고 말해 놓았기 때문에.(웃음) 안철수와 문재인 두 분의 헌신성을 저는 가슴으로 느껴요. 저보고도 정치하라고 하는데 그것만은 못해요. 그런데 두 분은 자신을 희생해 고된 역경과 수모를 겪고 계시잖아요.”

-이미 지지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만 하면 문 후보 측에서 서운해할 것 같은데요?

“에이, 서운해하지 않을 거예요. 그 양반이 생각보다 통이 크시더라고요. 경선 때 자기에게 불리한 걸 다 받아들였잖아요. 두려움 없는 무연함, 담담함을 봤고, 그래서 존경해요.”

-이런 참여를 통해서 선생님이 얻는 건 뭐죠?

“없어요.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나라에서 살면 개인적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는 하죠. 제가 후일담 작가라는 오명을 쓰고 이를 박박 갈았는데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마음껏 뽐내면서 선보인 게 다 노무현 때였어요. <즐거운 나의 집>, <지리산 행복학교>,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그 전의 제 책들과 색깔이 다르거든요. 엄숙한 문학의 짐을 내려놓아 너무 좋았어요. 그때는 ‘우주, 시간, 마녀,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 탐정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자랑했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 다시 <도가니>, <의자놀이> 이렇게 오게 된 거죠. 너무 싫어요.”

※ 클릭하면 이미지를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트위터가 감정적이었다는 점은 인정

-<의자놀이> 출간하고 토크 콘서트 다니다가 중단하셨죠. 하종강, 이선옥 선생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논란을 어떻게 정리하셨어요?

“논란 아니에요. ‘논란’이라는 표현은 저에게 상처예요. 소란이 맞지 않나요? 전혀 문제될 이유가 없었어요. 저의 트위터가 감정적 대응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요. 제가 많이 약해져 있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죠. 지난 25년 동안 제가 수많은 안티를 무찌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때는 <의자놀이> 쓰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어요. 잠 못 자고, 빙의 된 것 같고, 애들은 아프고, 글을 쓰다 보면 머리 뒤가 서늘해지고, 무서워서 글을 못 쓸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글 쓸 때 성가 틀어놓고, 수도원에서 얻은 촛불들까지 다 켜놓고 난리였어요. 보통은 책이 잘 팔리거나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 즐거움으로 보상을 받아 회복이 되거든요. 25년 만에 처음 듣는 표절이라는 단어에 자존심이 상했고, 화가 났어요. 제가 평소 같으면 잘 넘어갔을 텐데 심신이 약해져 있으니까 히스테릭하게 반응하고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또 트위터를 하면서 폭발적으로 친구가 늘어났는데, 제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몇 분이 내용도 알아보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를 비난하는 대열에 가담하는 걸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어요. 그야말로 ‘기’가 막히면서 보름 동안 6킬로그램이나 몸이 불었죠. 마지막 콘서트 때는 신발이 안 들어가고, 입고 갈 옷도 없는 거예요. 저는 몸과 마음의 소통이 빨라서 둘이 같이 가는 사람이거든요. 위기를 느꼈고 산소마스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 트위터 절필하고 효소단식 하고 사람 안 만나고 술, 커피 다 끊으니 정신이 맑아지고 몸의 부기가 빠지면서 마음이 담담해졌어요. 그러고 많이 울었죠. 그럴 때는 눈물을 흘려야 해요. 내가 헌신한다고 하면서 어느 순간 대가를 바라고 있었구나, 명예욕 같은 게 있었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멸시와 배척을 당하면서도 말없이 고통을 지고 간 예수님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기꺼이 그 일을 한다고 해놓고 수치를 피하려고 하는구나, 깨달았죠.”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는 공지영의 ‘마음’을 담은 책이 나왔다면 그런 반응이 없었을 텐데, 공지영의 첫번째 ‘르포르타주’라고 나오다 보니, ‘진압 당시에는 문제의식도 없었다는 사람이 어떻게 르포를 쓰나, 다른 사람이 조사한 것에 자기 느낌만 덧붙인 것 아닌가, 3일씩 빙의가 되었다는데 현장의 고통을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닌가’ 같은 비판도 나온 게 아닐까요?

“지네들은 아나? 3일 동안 잠을 못 자 봤나? 너무 황당해요. 제가 평생 받아온 공격과 같은 맥락이에요.”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보십니까?

“인용하는 부분의 활자 크기를 다르게 했으면 문제가 아니었는데, 활자가 똑같았어요. 좋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출판사의 간단한 실수였어요. 하지만 그분들은 의도적인 표절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출판사 실수를 대놓고 지적할 수도 없어서 제가 난처했죠. 게다가 초판 전체의 회수는 너무 무리한 요구였어요. 이선옥씨의 기명이 되어 있다는 칼럼의 피디에프(PDF) 파일도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원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아요. 또 저는 사과 요구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사과만 했어도’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제가 입을 다물자고 생각했어요.”

-쌍용차 분들에 대한 서운함은 없었나요?

“엄청 서운했죠. 그분들이 ‘어쩔 수 없고 저희도 난처합니다’라고 하기에 더 말하지 않았어요. 진실이 아무리 잔인해도 진실의 편에 서야 해요. 저는 진실을 위해서라면 친구에게도 ‘넌 나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번 소란의 팩트는 하나예요. 내가 그 사람 이름을 빼먹었다! 하종강이 썼다는 티를 내지 않은 거죠. 다른 무슨 팩트가 있어요. 그다음은 싸움이고.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공 선생님이 가끔 “촌스럽게 구호 외치는 것 그만하자”고 하시는 게 평생 노동운동하신 분들께는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처음 쌍용차 분향소 천막에 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저도 이 일이 아니었으면 쑥스러워서 (천막 안에) 안 들어왔을 수 있다. 무심히 지나다니는 저분들도 마음이 없는 게 절대 아니다. 시끄러운 운동가요, 적이나 투쟁 같은 표현이 울타리를 친다. 저분들이 무서워한다.’ 그 얘기를 농담처럼 한 건데 거기 상처를 받으시더라고요.”

운동판에서 차라리 밥을 날랐다면…

-공지영식 솔직 화법의 부작용 아닌가요?

“제가 평생 너무 편한 사람들하고만 놀았던 결과라고 느껴요. 제가 교제범위가 좁았거든요. 딱 내 수준의 딴따라들, 너무 편한 사람들, 내 말을 빨리 알아듣는 사람들하고만 30년을 만나고, 다른 색깔 사람들을 만난 게 불과 1~2년이에요.

그래서 그분들이 자꾸 상처를 받는데도, 이미 말은 나갔고 다시 하자니 어색하고 촌스럽고 그래서 못하는 게 있어요. 그분들의 불편함도 일리가 있죠.”

-<인간에 대한 예의>(1994) 후기에 이미 “글을 하나 발표하고 나면 나는 씩씩한 투사들에게 비웃음의 표적이 되곤 했다”고 적었더군요.

“제가 2000년 들어서면서는 (운동판에) 관심을 안 가졌어요. 그쪽으로 경계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쫓아낼 일도 없고 표적을 삼을 일도 없었죠. 다시 범위를 그쪽으로 넓히다 보니 옛날 일이 다시 반복된다는 느낌도 있어요.”

-뻔히 알면서 그 판으로 왜 돌아가신 거죠?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덜 힘들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눈앞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읽으면서 가만히 있는 게 저에게는 고문이었어요. 가서 뭐라도 해야 했는데, 그게 마침 글이 된 거죠. 밥을 날라야 한다면 밥을 날랐을 거예요. 밥을 날랐다면 글을 쓴 것처럼 욕을 먹지는 않았겠죠.”

-트위터에서 사라진 지 불과 20일 만에 복귀하셨어요. 놀라운 상처 복원력입니다.

“저의 복원력은 딱 하나예요. 난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 시간이 아까워. 제가 모스크바 가서 호텔에서 남편에게 맞고 나서도 파란 아이섀도 바르고 혼자 박물관에 갔어요. 맞은 것도 억울한데 그것 때문에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번에는 쌍용차 관련한 중요한 일정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 내가 ‘죽일 년’이라도 좋으니 나는 <의자놀이>를 팔아야겠어. 어떻게 욕해도 나는 팔 거야. 추석 전에 도움이 되게 할 거야 생각하고 나왔죠. 매사가 그래요. 상처 입을 걸 알고 나서면 오히려 다치지 않아요. 상처 입지 않으려고 하면 다치더라고요. 강한 에너지는 집착하지 않을 때, 욕심부리지 않을 때 나와요.”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폭넓은 비판을 받고 계신데, 공지영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고 생각하세요?

“생각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겠죠. 정말 잘 모르겠어요. 진보는 저의 부르주아적 배경을, 보수는 여자라는 점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큰 시기와 질투는 운명에 대한 거예요. 운명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거의 살인을 부르는 수준이에요. 막을 수가 없어요. 그 운명에는 성장환경, 재능, 외모, 지금 잘나가는 것, 잘 풀리는 것이 모두 포함돼요. 그거야말로 제가 안고 가야 하는 십자가라고 생각해요. 저의 성장환경이나 부모님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저의 세대에서는 참 드물게 부모님은 저를 진짜 자유롭게 키워주셨어요. 엄마 아빠 앞에서 담배도 피웠으니까요. 두 분이 사이가 좋았고 굉장히 지적이셨고요. 저는 처음에 가난을 각오하고 노동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많은 책을 팔아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됐어요. 세 번이나 이혼한 게 저의 유일한 불쌍함인데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결혼한 사람들 부러워하지 않고 명랑해요. 흔히 말하는 꼬인 사람들에게는, 인생이 힘든 사람에게는 그런 것까지 얼마나 상처가 될까 싶어요.”

-소설가치고는 유난히 안티가 많은 것도 특징인데요.

“공지영 소설이 아니라 공지영을 읽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시기 질투하나 보다 하고 넘어가요. 안 그러면 제가 살 수가 없어요. 밉다는데, 싫다는데 어쩌겠어요?” <다음주에 계속>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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