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박미향 기자는 10여년 동안 음식·요리·맛 담당 기자를 했다. 맛집 취재하면서 어떤 날은 하루 내내 열집이 넘는 식당을 들러 음식을 먹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맛집도 취재했다. 10여년 동안 건강밥상에 대한 식견은 늘었지만, 몸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런 그에게 남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무엇이냐?”다. 10년 동안 수만 가지 음식을 먹어본 그의 혀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5월31일 서울서 마포구 시청각실에서 열린 ‘한겨레-마포구 부모특강’ 여섯번째 강좌 주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밥상’이었다. 강연자로 나선 박 기자는 이날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두 가지를 소개했다. 바로 성북구 삼선동 정각사 불탑회 현산 스님이 만든 음식과 남해군 미조항 멸치잡이배서 먹은 음식이다.
현산 스님은 “화가 나서 만든 음식은 독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 때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들라 한다. 박 기자는 “현산 스님이 만든 집된장으로 무친 나물, 당면 색이 살아있는 잡채, 고구마·당근·버섯무침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맛으로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산 스님의 음식은 사찰음식이라 인공조미료를 안 넣고 튀기는 방식도 피한다. 오신채(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도 안 넣는다. 짠맛은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으로 내고, 단맛은 꿀이나 조청을 활용한다. 매운 맛은 생강, 고춧가루, 초피가루, 후추, 겨자로 내고, 신맛은 식초로, 고소한 맛은 참깨, 들깨,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으로 낸다. 날콩가루, 다시마가루, 들깨가루, 생강가루, 솔잎가루, 표고버섯가루도 활용한다. 양도 적고 반찬 가짓수도 적다. 불탑회 한 회원은 위궤양에 시달렸는데 이 사찰음식을 접하고 난 뒤 위궤양이 말끔히 사라졌고, 다른 회원은 아토피를 고치기도 했다.
박미향 기자가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멸치잡이배서 먹은 찌개.
두번째 음식은 남해군 미조항 멸치잡이배 명양호에서 먹은 막 잡은 멸치로 끓인 찌개다. 특별한 조리법도 없었다.
박 기자는 “내 생애 최고 음식의 공통점은 모두 조리법이 몇 단계를 거치지 않은 음식이며, 식재료 본연의 맛과 성질이 살아있는 음식”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러한 건강한 음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알아보는 음식교육, 미식 훈련을 하면 보다 많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보통 어릴 때부터 미식교육, 식문화 교육을 한다. 박 기자는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식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식문화 교육과정이 있다”며 “식문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재료 자체의 성질에 대한 교육”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오이와 멜론을 비교해보게 한다. 두 개는 비슷한 향이 나지만 맛과 식감이 다르다. 오이는 멜론과 비슷한 색깔이지만 먹어보면 오이 맛은 약간 비리고, 멜론은 달콤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또 피망을 잘라서 거기에 물감을 묻혀 도장도 찍어보고, 고추에 물감을 묻혀 엄마 얼굴에 점도 찍어보게 한다. 이렇게 식재료 자체에 대해 친근해지고 관심을 갖게 되면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것은 건강한 식문화로 연결된다. 또 음식을 관찰하고, 주방 도구를 활용하다보면 집중력과 관찰력이 높아진다. 또 전문가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먹으면 아이들의 공격적인 성향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박 기자는 식문화 교육의 중요성의 예로 유명 음식 칼럼니스트 강지영씨와 그의 딸 강하나 양의 경우를 소개했다. 매우 예민한 기질의 하나양을 키울 때 강지영씨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식문화 교육이었다. 기어다닐 때부터 강씨는 딸을 데리고 먹거리 탐험을 했다. 특히 재래시장은 반드시 들러 딸에게 식재료에 대해 알려주고 맛보게 했다. 마트 시식코너에 가서도 올리브, 치즈를 먹게하고 생선이나 뿌리채소도 직접 만져보게 했다. 또 향을 맡아보게 하고 맛보게 했고, 집에 돌아오면 사 온 식재료를 씻고 썰어보게 했다. 박 기자는 “하나양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무엇이 싱싱하고 좋은지 알게 돼 음식을 사랑하는 감정을 갖게 됐다”며 “강씨와 같은 식문화 교육이 아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설명했다. 박 기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텃밭을 가꾸고 딸기 체험 같은 식재료 체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급식에서 가장 싫어하는 반찬은 무엇일까? 나물이나 채소다. 박 기자는 “아이들의 미각은 어른들의 미각보다 훨씬 예민해서 쓴맛도 더 잘 느낀다”며 “아이들은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니 그런 소스를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청이가 꿀을 넣어 나물을 무치면 나물을 전혀 먹지 않던 아이들도 먹게 된다고 한다. 박 기자는 “부모가 조금 고생해서 아이 먹는 것에 좀 더 신경쓰면 아이가 평생 몸에 좋은 것을 알아서 찾아 먹게돼 약값이 덜 든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법, 좋아하는 맛, 좋아하는 모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했다. 시금치를 안먹는 아이에게는 계란찜에 시금치 아주 잘게 썰어 보이지도 않게 해서 먹이다 다른 음식에는 조금 시금치가 보이게 그 크기를 점점 키워가는 방법이 그 예다. 또 아이들은 형형색색 비빔밥은 좋아하니 비빔밥을 자주 해주고, 버거를 두부로 만들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사찰 음식 인기가 많아요. 제가 아는 스님 중에 대전 서구 영선사에 계시는 법송 스님이 있습니다. 이 스님은 울진이 고향인데 어릴 때부터 들과 산에서 자란 나물을 맛보며 자랐어요. 식재료 공부를 어릴 때부터 한거죠. 그런데 이 스님이 만든 나물 먹어보면 뭔가 달라요. 왜냐하면 음식에 이 스님 손길 하나하가 들어갔거든요. 스님은 직접 나물을 햇빛에 말려요. 그냥 대충 말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나물을 비벼주면서 말립니다. 나물은 습기 차기가 쉬운데, 습기가 차지 않도록 만져주는거죠. 나물을 볶을 땐 꼭 들기름을 써요. 들기름도 직접 만드는데, 볶지 않고 짜요. 가열하면 영양소가 반으로 줄어드니까요. 영선사의 인기 간식은 쑥개떡입니다. 특이한 게 파릇한 색이 아니예요. 시커멓기까지 해서 보기는 안좋은데 맛은 으뜸이예요. 보통 쑥을 데칠 때 색깔을 선명하게 하려고 소금이나 소다를 넣어요. 그런데 스님은 안 넣어요. 대신 1시간30분 이상 반죽을 합니다. 독성이 없는 단오 전에 채취한 쑥을 사용해서 쌀가루보다 쑥을 더 많이 넣어요. 다 이런 정성이 음식의 맛을 결정하더군요. 그런 정성은 식재료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요. 법송 스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고요. 건강밥상 차리시는 분들 보면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조리법이 간단하다는 것, 양념은 불편하지만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먹는다는 것, 음식은 즐겁게 만든다는 것,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 아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밥상을 차리고자 한다면 이 원칙들을 꼭 기억해두세요.”
박 기자는 건강 밥상의 4가지 원칙을 콕콕 짚어주며 강의를 끝냈다. 박 기자는 시종일관 재치있는 언변과 툭툭 던지는 농담으로 청중을 사로잡았고, 지금까지 진행된 강의 가운데 청중들의 웃음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정리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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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향 기자가 전하는 건강밥상 3인 이모저모
■ <자연 그대로 먹어라> 장영란 선생과 <열두달 토끼밥상> 만화책 그린 김정현양
건강밥상 관련 책 3권 내신 장영란 선생은 남편 김광화씨와 귀농 1세대다. 부부는 자식을 홈스쿨링을 통해 키웠다. 모든 먹거리는 자급자족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끼는 아이들끼리 해먹었다. 김정현씨는 10대인데도 자기가 요리한 것들을 모아 <열두달 토기밥상>이라는 책을 냈다.
이 집 아이들은 독립심이 강하다.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박 기자가 정현씨에게 “대학 한 가고 싶냐?”고 묻자 정현씨는 “생각 없다. 만화 계속 배우고 그리고 싶고 문화콘텐츠 관련한 일 하고 싶다”며 자신 인생설계를 스스로 했다고 한다. 아들은 <식객> 보고 가양주를 자기가 만들어본다.
이 집 밥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다르다. 바로 호두밥이다. 멥쌀과 찹쌀을 약 9 대 1의 비율로 섞고 물을 붓는다. 간장이 뿌려지고 그 사이로 고소한 호두 부스러기가 투하된다. 간장 맛도 독특하다. 서리태 1컵, 다시마 2~3장, 물에 불린 표고버섯 4~5장을 함께 끓인 물에 집에서 담근 간장을 섞어 1번 정도 더 끓였다가 식히면 완성이다.
■ 친환경 음식점‘에코밥상’대표 김경애씨
‘에코밥상’은 2007년에 현재 대표인 김경애씨와 27명이 공동출자한 친환경 음식점이다. 식재료는 ‘환경연합 에코생협’ 등에서 구입하고, 주방용기는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수 있는 플라스틱 용품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대형마트나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지 않고 생협만 찾는다.
김경애 대표는 “내가 먹는 것을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고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협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100% 활용한다. 쌀 씻은 물조차 버리지 않고 된장국이나 찌개에 사용한다. 심지어 생선이나 그릇을 씻는 물 또는 화분에 주는 물로도 사용한다. 음식을 만들고 남은 파 조각도 잘 다듬어 육수를 내는 데 쓴다. 그렇게 식재료를 아낀다. 박 기자는 “생협 식재료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가격이 좀 비싼 것이 항상 딜레마”인데 “해결책은 생협의 식재료를 이용하되 아주 실용적으로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치 명인 강순의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김치명인으로 이름난 강순의씨. 강씨는 나주 나씨 반계공파 25대 종부다. 충청도 당진이 고향인 강씨는 21살에 나도균(68)씨와 결혼해서 힘들게 살았다. 시증조모 밥상까지 끼니때마다 “어른들 밥상과 간식”을 차렸다.
제철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남편이 사업이 망해 생계를 책임지게 된 강씨는 폐백 이바지 음식을 시작했다. 폐백 음식을 보낼 때 강씨는 본인이 직접 담근 백김치를 함께 보냈는데 백김치가 대박이 났다. 그래서 그는 김치 명인이 됐다.
강씨의 나물전도 일품인데 그 비결은 다시마육수다. 감태, 달래, 갯나물, 봄동을 모두 전으로 부치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 밀가루에 붓는 다시마육수에는 자연재료에서 얻을 수 없는 감칠맛이 난다. 전에는 고기 대신 마른 새우가 들어간다. 강씨 나물전의 으뜸은 역시 봄동전이다. 봄동은 일년 중에 딱 봄 한철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가을배추보다 조금 두꺼운 봄동은 노지에서 제멋대로 자라 ‘떡배추’라고도 부른다. 봄 동 두장을 맞붙여 지진다.
정리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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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향 기자가 추천하는 건강밥상 관련 책
<잘못된 간식 우리아이 해친다>
<친환경음식백과>
# 박미향 기자가 추천하는 안전한 먹거리 선택할 수 있는 곳
한살림, 아이쿱생협, 여성민우회생협 등 생협에서 운영하는 식재료 판매장
생협 이용이 불편하다면 건강 직거래 장터들도 권유
언니네텃밭(www.we-tutbat.org): 다품종 생산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 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가꾸는 공동체. 소비자 회원이 월 10만원을 회비로 내면 생산자는 월 4회 제철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준다.
농부로부터(www.fromfarmers.co.kr) :‘흙살림’과 ‘쌈지농부’가 운영하는 곳. 매주 또는 격주, 소비자에게 친환경 농산물과, 식품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가공품을 보내주는 곳. 친환경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하는 것이 장점.
정리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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