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민족음악박물관 카를로스 블랑코 파돌(66) 관장
100개국 돌며 민족악기 복원 매진
‘실크로드 통한 전파’ 사실도 입증
‘실크로드 통한 전파’ 사실도 입증
“이건 볼리비아, 저건 터키 민족악기예요. 어떤 걸 연주해볼까요?”
세계 유일의 민족악기 박물관으로 알려진 스페인 민족음악박물관 카를로스 블랑코 파돌(66·사진) 관장은 들고온 악기 가방에서 여러 나라 민족악기들을 꺼내어 자유자재로 연주해 보였다. 지난 18일 한국에 온 그는 “한국의 민족음악 전문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류 사업을 진행하려고 왔다”고 했다.
30여년간 10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각 나라 전통 악기를 수집, 연구해온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 민족 악기에도 관심이 깊었다. 최근 그의 박물관에는 올해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을 맞아 국립국악원이 기증한 가야금, 거문고, 태평소 등 우리 전통악기 9점이 별도 전시 공간이 들어섰다.
파돌 관장은 “민족음악은 언어처럼 그 민족의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며 “민족 악기를 보존하는 것은, 그 민족의 문화와 영혼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 박물관에 소장된 4500개의 민족악기 중 70%는 이미 그 민족에게서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이예요. 그래서 제 작업은 단순히 수집에 머물지 않고, 악기를 복원해 제작하고 민족들에게 다시 전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평생을 민족악기 수집·연구에 바치다보니, 인류 문화에 대한 경이와 감동으로 가슴 벅찬 순간들도 많았다고 한다. 4년 전 그는 남미 아마존에서 한 부족을 만나 소멸된 전통악기에 대해 듣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그 악기가 자신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었던 것. 그는 스페인에 돌아가 그 악기의 제조 방법과 연주법을 복원해 2년만에 아마존을 다시 찾아갔고, 부족들은 잊혀졌던 민족 악기를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그는 민속악기의 국가간 유사성에 관심을 갖고 기원을 추적하다가, 악기 전래 방향이 실크로드의 진행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비슷한 악기가 발견된 지역을 지도 위에 점찍어 봤더니 그게 바로 실크로드였어요. 실크로드를 따라 악기도 같이 운반된 거죠. 중앙아시아 민속악기가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으로 건너가면서 유럽에 전해지고, 다시 선교사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고…, 흥미롭죠?”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민족악기 백과사전도 편찬했는데, 한국어판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전한다. 한국에서 민족악기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파돌 관장은 “앞으로 한국에 민족악기 박물관을 설립할 수 있을지 정부관계자들과 계속 논의하고 싶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24일 한국을 떠났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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