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40·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방통심의위원
박경신 방통심의위원 블로그 글 내일 심의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게재가 차단되는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치거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정보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사실상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심의 기준을 묻는 도발적인 문제제기가 현직 방통심의위원에 의해 이뤄져, 인터넷 표현의 자유 논쟁이 일고 있다.
박경신(40·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 방통심의위원은 지난달 14일과 25일 각각 열린 통신심의소위에서 삭제 결정을 받은 인터넷 게시물 2건을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전체 공개’로 올렸다. 두 게시글은 한 누리꾼이 자신의 미니 홈피에 올린 남성 성기 사진과 간단한 화학실험 수준의 화약 제조 관련 정보였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방통심의위원이 음란물을 블로그에 올렸다”며 기사와 사설로 박 위원을 비판했고, 박 위원의 행위가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둘러싸고 열띤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심의위원으로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한 일”이라고 비판했지만, 박 위원의 두 게시글 게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라는 시각이 많다.
두 글이 문제가 되자, 박 위원은 지난달 27일 해당 사진을 내리고 폭발물 제조와 관련된 물질의 정보를 부분 삭제했다. 박 위원은 이튿날 여성의 성기를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1866년 그림 <세상의 근원>을 블로그에 올리고 “방통심의위가 불법적 심의기준을 따르고 있다”며 “내가 올린 문제의 사진들은 지금도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걸려 있는 쿠르베의 그림과 같은 수위의 것이었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는 4일 전체회의를 열어 박 위원이 블로그에 옮겼던 2건의 글에 대해 심의를 할 예정이다. 전체회의가 심의위원의 글옮김 행위에 대한 적절성을 다룰지도 관심이다. 일부 위원들은 박 위원이 문제제기를 한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며 문제를 삼겠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박 위원은 “국민의 정신생활을 규제할 때는 최소한 그 규제의 기준이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심의위원의 직무 중 하나”라고 밝혔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현재의 심의 방식은 어떤 콘텐츠를 대상으로 심의를 했는지 알 수 없는 구조”라며 “방통심의위의 결정이 과연 타당한지를 따져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방통심의위 심의기준의 적절성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는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나 범죄 유발 가능성”을 이유로 묵살돼 왔다는 것이다. 이윤덕 전 방통심의위원도 “1기 때도 표현의 자유를 넓히려는 소수의견이 여러 차례 개진됐으나, 이를 사회적 논쟁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이번 건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대중적 논쟁거리로 만든 문제제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위원도 문제제기 방법이 매끄럽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박 위원은 자신이 공개한 이미지가 화제가 되어 청소년들을 비롯한 많은 방문자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었다고 밝혔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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